주경림/한바탕 굿판 벌이기
무당이 굿을 할 때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부정을 가린다고 한다. 금줄을 친다는 것은 세속의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내가 시를 쓰는 일도 한바탕의 굿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금줄을 치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하는 몰입의 과정이 필요하다. 몰입의 과정을 통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기, 꿰뚫어보기, 다시 뒤집어 보기가 가능해진다.
시를 주관하는 신 앞에 나의 감성과 이성을 제물로 바치고 금줄 안으로 신을 청해(請神過程), 언어의 음률이 주는 노래와 언어의 의미가 주는 몸짓의 춤으로 즐겁게 해준다.(歌舞娛神過程) 초청된 신이 흥에 겨워 나에게 특별한 의미의 신탁을 준다.(神意聽取過程) 신탁을 받아 사물의 내면의 풍경을 그려내는 일을 끝내면 초청한 신을 돌려보내고(送神過程), 탈속에서 다시 세속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나는 아직 선무당인 보살이나 칠성할멈의 경지에도 미치지 못하니 굿판을 성공적으로 끝내기는 역부족이다. 그저 손을 비벼 치성을 드리거나 방울을 흔들 뿐이다. 제풀에 겨워 굿판을 어지럽히다가 운이 좋으면 어쩌다 한번씩은 청해온 물신(物神)들과 동체감을 느끼는 아뜩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 체험이란 으레 고통과 함께 오는데 고통의 과정을 거치면 마음 속에 뭉쳐 있던 단단한 결정체들이 탈골되어 해체되는 자유스러움을 맛보게 된다. 나는 그 자유를 위해 시를 쓴다.
전시장에서 우연히 청동 조각인 명태 한 마리가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지난 겨울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덕장에서 보았던, 해동과 건조 과정을 거치고 있는 수천 마리의 명태들의 열병식하는 모습이 청동 조각품인 명태에 오버 랩되었다. 전시장의 명태는 어느 새 해발 800m의 고산에서 북풍 한설을 맞고 있었다. 명태가 담백하고 구수한 맛을 내는 황태가 되기 위한 시련이라면 한 곳에 몰두해서 맑은 마음을 얻는 ‘참선’의 이미지와 잘 부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아름다운 인연이 되는 것이다.
참선하다
전시장에서 조각가 이영학의 설치작업 ‘명태’가
청동의 나무에 걸려 명상에 잠겨 있다1)
벽에 걸린 자신의 그림자를 흔들어가며2)
용대리 내설악 덕장의 꿈을 꾼다
수천 마리의 명태들이 턱을 꿰고 나란히 걸려 있던 덕장에서
겨울의 여린 햇살에 끄덕끄덕 졸기도하다가
덕대를 흔들어 놓고 가는 매서운 바람에 다시 깨어나3)
꾸덕꾸덕 마르기를 계속한다
덕대에 매달려 시선을 한 곳에 모으면4)
머리와 가슴에 몰려 있는 기(氣)가 배꼽 아래 단전에 모인다
눈, 비를 맞는 대로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하면서5)
명태들은 홀쭉해진다6)
거무스럼하던 몸체는 군데군데 노란색을 띠기도 하면서7)
나는 더 이상 내 안에 있지 않고
너는 더 이상 내 밖에 있지도 않게 되어
꼬리를 꺾으면 ‘딱’ 소리로 부러져
맑고 구수한 맛을 우려낸다8)
우선 이렇게 단숨에 써 놓고 보니 덕장의 명태가 해동 건조되는 모습에만 치중한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의 전달에만 그치는 밋밋한 글이 되고 말았다. 첫째 연 둘째 행 1)명상에 잠겨 있다는 청동 조각품 명태에게 붙이기에는 관념적으로 시의 첫머리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 그 구절을 빼고 2)자신의 그림자에게 ‘나는 누구인가’ 묻는 형식으로 첫 연을 부드럽게 풀어가기로 한다. 진부한 질문이지만 존재의 뿌리를 슬쩍 건드려 보며 참선의 화두로 시의 첫머리를 열어본다. 둘째 연의 3)매서운 바람에서 형용사를 많이 쓰면 시의 격이 떨어지고 산만해지므로 매서운은 빼기로 한다. 4)시선을 한 곳에 모은다는 내용도 자의식이 너무 강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뜨릴까 염려가 된다.
눈을 반쯤 뜨고 허공을 응시하면으로 대치하면 기가 배꼽 아래 단전에 모인다로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쯤되면 명태도 노란색을 띠고 살도 연하게 부풀어올라 담백한 맛을 우러내는 노랑태로 불리우게 된다. 변신은 조용한 가운데 이루어지지만 시가 벌써 2/3 이상 진행되었으므로 좀더 드라마틱한 연출법으로 읽는 재미도 주고 의미도 분명히 해야 한다. 5)되풀이하면서, 6)명태들은 홀쭉해진다, 7)노란색을 띠기도 하면서 등의 표현들은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평면적이다. 덕장에서 눈, 비 맞아 홀쭉해진다는 내용을 빼고 ‘노란색’을 ‘황금빛’으로 바꾸면 ‘딱’ 소리로 황금빛 부활을 꿈꾼 변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8)맑고 구수한 맛을 우려낸다는 전시장의 조각품인 명태로 시작해서 덕장의 명태로 끝맺음을 하게 되니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다시 전시장의 명태로 돌아가 앞머리에서 생략했던 ‘명상’이라는 낱말을 살려 ‘나는 누구인가’의 물음에 화답하는 내용인 ‘청정한 겨울 바다 속에서 뛰어드는가 보다’로 끝을 맺어 본다.
전시장에는 조각가 이영학의 설치 작업 ‘명태’가
청동의 나무에 매달려
벽에 걸린 자신의 그림자에게 ‘나는 누구인가’ 묻기도 하면서
용대리 내설악 덕장의 꿈을 꾼다
수천 마리의 명태들이 턱을 괴고 나란히 걸려 있던 덕장에서
겨울의 여린 햇살에 끄덕끄덕 졸기도 하다가
덕대를 흔들어 놓고 가는 바람에 다시 깨어나
꾸덕꾸덕 마르기를 계속한다
눈을 반쯤 뜨고 허공을 응시하면
머리와 가슴에 몰려 있는 기(氣)가 배꼽 아래 단전에 모인다
눈, 비 맞는 대로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거무스럼하던 몸체는 황금빛을 띠기 시작한다
나는 더 이상 내 안에 있지 않고
너는 더 이상 내 밖에 있지도 않게 된다
‘딱’ 소리로 부러지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
이제, ‘명태’라는 생각조차 잊어버린다
문득 명상에 잠겼던 명태가
꼿꼿했던 몸체를 갑자기 부르르 떤다
청정한 겨울 바다속으로 뛰어드는가 보다
이렇게 고쳐 쓰고 나니 글의 흐름은 자연스러워지고 시를 쓴 의도도 분명해진 것 같은데 좀더 생생한 표현으로 읽는 재미가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나는 더 이상 내 안에 있지 않고/ 너는 더이상 내 밖에 있지 않다’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참선의 목적이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어 안과 밖, 너와 나의 경계가 없어지는 경지를 이름인데 깊은 산 속 샘물처럼 찡하게 시원한 산뜻한 표현이 없을까.
무당은 신과 교통하여 신의 의사를 인간에게 전하고 또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고하는 영적인 존재라고 한다. 언어의 춤과 노래로 삼라만상의 영혼과 교감하여 한바탕 굿판을 벌이는 시인의 역할도 무당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장군신이 실리면 무당이 작두 위에 맨발로 올라 춤을 추는데 날이 예리할수록 발이 베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예리한 작두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의 춤을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을 명심하며 마음의 칼을 부지런히 가는 수밖에 없겠다.◑
쭑주경림 이화여대 사학과 졸. 92년 『자유문학』 등단. 시집 『씨줄과 날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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