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
나 태 주
가슴 가득 태양을
안았다 하자
두 눈엔 함초롬 불꽃을
물었다 하자
얼어붙은 청동의 하늘에
흩어 뿌린 메밀꽃밭 은하수를
네게 주리니
눈 속에서도 파아란 보리밭의
사래 긴 보리밭 이랑 순정을
네게 주리니
가슴 가득 출렁이는 산맥을
품었다 하자
한반도의 강물이
서럽게 서럽게 흘렀다 하자
이렇게 써 본다. '시인이란 다름 아닌 평생 식지 않는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사는 사람, 이라는 당연한 생각. 그 자유 정신. 그 '집중'이라는, '명상'이라는 '思無邪'의 상태를, 그 '성찰'의 상태를 언어로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사람. 그걸 집약된 금강석 같이 단단한 언어의 결정체로 만드는 사람.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빛과 소리를 내 안에 가져오는 일'이라고.
시단에 羅씨가 여럿 있다. 나태주, 나해철, 나종영, 나호열, 나영자.... .그 중 활동 면에서 나태주는 단연 으뜸이다.
낡은 스크랩을 꺼내든다. 1970년대 초의 신춘문예 당선작 스크랩이다. 1970년 중앙일보 시 당선작인 석지현의 '점화'를 비롯하여 71년 서울신문 당선작인 나태주의 '대숲 아래 서서', 임영조의 중앙일보 당선작 '목수의 노래', 73년 동아일보의 이동순, 대한일보의 정호승, 중앙일보의 김명인, 경향신문의 김승희, 조선일보의 강경희 등... .
그 중 나태주의 작품이 내겐 제일 가까이 다가왔다.
71년이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어떻게 이 시를 스크랩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그슬린 등피에 네 얼굴이 어리고/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바람소리//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어제 밤 꿈엔 너를 안고 쓰러져 울었다... '
이렇게 이어지는 이 시는 당시 스무 살 내 가슴에 흠뻑 다가왔다. 대숲 아래서 한 사람을 애타게 그리는 절규의 목소리.
시인은 이 때부터 '사랑의 시'를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사랑의 시'가 1987년 나온 그의 시집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여자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44편의 연작시이다.
시인은 이 시들이 어떤 술집 여자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고 어디선가 쓰고 있다. 소외 되고 서러운 술집 여자들 중 시인의 눈에 들어온 '하나도 이쁠 것도/잘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계집애를 하느님 허락도 없이/ 사랑한' 그런 여자였나 보다. 시인의 그 여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은 너무도 절절하다. 그리고 그것을 참으로 다양하게 노래한다. 그리움이 빚어낸 저 밤하늘의 별들과 같은 시들이다.
그리하여 이 시들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노래로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시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20'은 그 마흔 네 개 별들 중 하나이다. 눈물 머금은 별이다. 나태주 는 천부적인 사랑의 시인 같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이런 가슴을 가질 줄 아는 이가 시인인 것이다. 나도 눈감는 날까지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그런 사랑의 시를 무수히 쓰고 싶다.
*나태주(1945-) 충남 서천 출생. 공주사범학교 졸.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대숲 아래서',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아버지를 찿습니다'등 10여권. 현재 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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