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송의 자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어흘리 대관령 자연휴양림. 이곳 솔숲 여행에서 체험한 소나무와 하나 되는 특별한 경험.  소나무를 벨 때도 그냥 베어내는 게 아니지. 다 그에 맞는 법도가 있는 거야. 도끼를 든 벌목꾼이 먼저 ‘어명이오~’하고 크게 외치고 나서 소나무 밑둥치를 힘껏 내리치는 거지. 그렇게 세 번을 외치고, 세 번 도끼질을 하면 벌목 의식이 끝나. 그러고는 궁궐의 재목으로 쓸 큰 소나무를 베어내는 거야.”
일대에서 가장 큰,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내는 일은 오랫동안 산판일을 해왔던 벌목꾼에게도 개운치 않은 일이었다. 조촐한 제수를 차려놓고 산신께 고사를 지내고는, 하늘과도 같은 임금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나무를 벨 수밖에 없는 형편임을 ‘어명이오’라는 외침으로 나무에 알렸다.  도편수 신응수 씨의 소나무 사랑
비를 잔뜩 머금은 거대한 구름은 세찬 골바람에 밀려 계곡 깊숙이 몸을 엎드렸다. 조금 전 대관령을 넘어오던 중 시야에 들어오던 구름과 안개로 뒤덮인 솔숲의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주친 어흘리 대관령자연휴양림의 소나무 숲.
우리를 맞아주는 안개 속의 대관령 소나무들은 그지없이 당당했다. 비탈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몸을 세운 튼튼한 소나무는 대관령을 넘어오는 거친 바람에 당당하게 맞서 있었다. 어느 나무 한 그루도 굽힘 없이 당찬 그 모습은 한순간 충격을 주었고, 잠시 후 충격은 감격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에도 가서 봤는데 참 잘 자라고 있더구먼. 어흘리 소나무는 아직 베면 안 돼. 큰일나지. 목재로 쓰려면 250년 이상은 돼야 하거든. 그렇게 단단하게 잘 기르면 좋은 재목으로 사용할 수 있지.”
대목장 신응수 씨(63)는 어흘리의 솔숲을 자랑스러워했다. 이광규 등에게 대목 기능을 전수받아 1970년 부편수로 불국사를 복원한 그는 1975년부터는 도편수로 활동하면서 창덕궁 연경당 본채와 행랑채를, 1978년에는 수원 성곽을 복원했고 요즘에는 경복궁 태원전과 건청궁 복원 공사를 지휘하고 있다.  도편수는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궁궐의 복원 공사에 건축재로 소나무만을 사용하는 이유를, 이 땅의 나무 중에 가장 강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나무가 소나무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소나무에 대한 도편수의 믿음은 그 무엇보다 확고했다.
“500~600년 전 소나무로 지어진 건축물을 살펴보면 여전히 생생하지. 그런 상태라면 앞으로도 수백 년 동안은 더 지탱할 수 있거든. 내가 보기엔 틀림없이 천 년 이상은 거뜬해. 이 땅의 기후 풍토에 수백만 년 적응해 자란 우리 소나무 이상 좋은 재목은 없지.”
도편수가 대관령의 솔숲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 숲이 ‘문화재 복원용 대경재 생산 기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평균 수령이 80~90년밖에 되지 않아 당장 사용할 수는 없지만 고건축 문화재나 궁궐의 복원에 필수적인 곧고 굵은 대경재가 쑥쑥 자란다는 것에 그는 뿌듯해한다.
햇볕 경쟁 속 소나무 살아가다
솔숲은 대관령 옛길을 따라 해발 841m의 제왕산까지 400만m2나 펼쳐진다. 이 솔숲은 1988년 전국 최초의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면서 일반에 공개됐다. 그리고 지난 2000년에는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과 ‘한국의 3대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 솔숲의 진가는 조금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소나무 숲이 사람이 직접 씨를 뿌려 만든 숲이라는 것. 산림청 기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이던 1910~1920년대에 일일이 씨앗을 심어서 숲으로 만들었다. 당시는 물론 현재의 임업 기술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이렇게 종자를 심어 숲을 만드는 방법을 직파 조림이라고 하지요. 씨를 뿌린 다음에는 끊임없이 보살피면서 간벌도 해주고 주변 활엽수도 잘라내 주고 했지요. 실제로 소나무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다면 숲의 마지막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소나무는 알려진 것과 달리 침엽수임에도 많은 햇빛을 필요로 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주변의 더 빠른 생육 조건을 가진 활엽수를 간벌해 주지 않으면 곧고 굵게 자라기 어렵거든요.”
대관령 자연휴양림에서 4년 넘게 솔숲 해설가로 활동해온 신은주 씨(35)가 쭉쭉 뻗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한다. 인공의 힘이 없다면 쇠퇴한다는 소나무. 대관령 꼭대기에는 소나무가 없다는 것 그리고 야산에 삐뚤빼뚤 제멋대로 자란 볼품없는 소나무의 모습, 다른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절벽 같은 곳에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이 그제야 이해된다.
일본 사람이 어떤 의도로 이곳에 솔숲을 조성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전국의 수많은 산 중 왜 하필 이곳에 솔 씨를 뿌려 인공 조림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하필 소나무였는지는 지금도 알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야 어쨌든 고마운 일이지요. 오래 전부터 성주신으로 소나무를 숭상했던 우리 민족에게 소나무는 나무 이상의 의미잖아요. 궁핍하고 곤궁했던 세월 동안 소나무가 안겨준 불가사의한 치유력도 이젠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것 같네요. 약으로, 음식으로, 목재로, 소나무는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지요.”
‘소나무 숲으로의 여행’이라 이름 붙은 1km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땅과 하늘의 충만한 기운을 품은 금강소나무의 빼어난 자태를 감상해 본다. 솔숲을 흔드는 바람에 거대한 소나무가 크게 울어 댄다. 직경 40cm, 높이 20m에 이르는 숲의 소나무는 때마침 노란 꽃을 피워냈다. 거친 바늘과는 전혀 다른 보들보들한 새 잎 끝에는 꽃이 달려 있고 끊임없이 송홧가루를 바람에 실어 날려 보낸다. 발췌 : 애니카라이프 > 혼자 떠나는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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