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철창에서 감자꽃 만발한 봉평까지(주5일 수업의 대안, 가족 체험 여행)[게시물 소스보기]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하는 ‘2005 체험! 가족여행단’이 6월의 여행을 마쳤다. 바람에 열기가 묻어나는 여름. 산바람, 바닷바람이 상쾌한 가족들의 강원도 여행 스케치.
아침 7시 30분, 종각 한국관광공사 앞에는 두 대의 버스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몇몇 가족은 이미 이른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던 눈치다. 여행을 앞둔 아이들의 눈은 설렘에 반짝반짝 빛난다. 호국의 달 6월에 떠나는 이번 여행의 주제는 ‘나라 사랑, 자연 사랑’. 초여름 햇살의 환송을 받으며 버스는 강원도로 출발한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 안개가 내려앉았다. 왠지 기분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
Sat. 11:10
양지바른 뜰이 아름다운 박수근미술관
첫 번째 방문지는 양구의 박수근미술관. 양구가 자랑하는 천재 화가 박수근의 작품이 전시된 곳이다.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를 꿈꾼 그는 거친 선으로 1950~1960년대 한국의 시골을 주로 묘사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했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은 후 각자 흩어져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했다. 무뚝뚝하지만 정감이 살아 있는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향수가 느껴진다. 엄마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작품을 감상하던 아이들은 이내 뜰로 뛰어나갔다. 뒷산에서 타고 내려온 개울이 흐르고 햇살 받은 따뜻한 잔디가 깔린 작고 아담한 뜰은 그대로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특히 양지 쪽에서 햇살을 받고 있는 그의 동상은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분명 화가 박수근도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사랑했으리.
Sat. 13:30
훼손되지 않은 청정 자연 두타연 생태 체험과 전투전적비 참배
꾸불꾸불한 산길을 따라 덜컹거리며 두타연으로 향하는 길. 민간인 통제 지역이라 신분 확인을 위해 입구에서 잠시 정차했다. 아이들은 군인 아저씨가 마냥 반갑다. “아저씨, 이 총 진짜예요?” 아이의 당돌한 질문에 군인 아저씨는 조금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한다. 순간 버스 안에 “와~” 하고 웃음이 터진다.
두타연에 도착하자마자 모두들 물소리가 들리는 ‘수입천’으로 뛰어갔다. 푸른 물은 더할 수 없이 맑다. 어느새 신까지 벗어던지고 아이들은 물에 발을 담갔다. “우와! 물고기도 있어!” 송사리 떼를 발견했는지 여기저기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노는 사이 엄마 아빠는 수입천 옆의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누가 쌓은 것일까? 약수터 곳곳엔 작은 돌탑이 쌓여 있다. 엄마를 따라 물을 마시던 우중이도 탑 위에 조심스럽게 돌을 얹었다. 소원은? 비밀이다. 수입천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자 전투전적비가 나온다. 어느 곳보다 치열했던 양구의 전쟁터. 이곳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을 위로하며 외롭게 서 있는 전적비 앞에 서자 절로 숙연해진다.
Sat. 15:00
분단 현실의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곳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1990년에 발견된 네 번째 땅굴이다. 커다랗게 입을 벌린 겉모습에서 위압감이 느껴진다. 300m쯤 걸어 들어가자 북한군이 팠다는 진짜 제4땅굴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전동차를 타야 한다. 전동차는 100m 정도 내려가자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거기까지가 남한 경계령. 저 앞으로 뻗어있는 긴 터널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진다. “왠지 배신감 같은 게 느껴져요. 남이나 북이나 똑같이 평화롭게 통일을 바란다고 생각했는데….” 중학생 소연이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버스는 다시 을지전망대로 향했다. 해발 1,049m에 있다는 을지전망대는 민간에 공개된 전망대 중 가장 높고 가장 북쪽에 가깝다. 좁은 산길을 따라가는 길, 바로 옆에 설치된 철조망 때문인지 긴장감이 인다. 이 긴장을 깨버린 것은 뜻밖에 멧돼지 한 마리. “앗, 멧돼지다!” 어느새 다시 시끌시끌 이야기 소리가 살아난다.
마침 을지전망대엔 양구전투에 참가했던 미군 참전 용사들이 와 있다. 그들과 함께 바라본 북한 땅은 옅은 안개 속에 고요하다. 맑은 날은 금강산도 보인다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버스는 숙소가 있는 양양으로 길을 잡았다. 어느새 낮아지는 저녁 햇살을 받으며 버스는 한계령을 넘는다.
Sun. 08:20
부드러운 해풍 속의 정자와 등대 하조대
슬슬 이틀간 여행의 피로가 몰려올 시간. 쉬기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던 버스가 도착한 곳은 양양 8경 중 하나인 하조대였다.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바다 그리고 백년송이 더해져 시원하면서도 고즈넉한 절경을 이루어낸다. 양쪽의 절벽에 각각 육각정과 흰 등대가 있어 경치가 더욱 아름답다.
소나무 숲 사이에 오도카니 자리한 정자에 앉으면 맞은편의 아름다운 백년송과 코발트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드러운 해풍까지 불어오자 과연 여행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두고 가기 아까웠는지 모두 사진에 담기 바쁘다. 어른들이 정자와 바다 위 절벽의 백년송에 마음을 빼앗긴 동안 아이들은 건너편의 등대로 뛰어갔다. 예쁜 엽서처럼 바다를 지키던 아담한 흰 등대는 삽시간에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린다.
아이들은 등대에 올라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우리 집에도 있었으며 좋겠어요.” 볼까지 빨갛게 어린 정민이가 웃는다. 결국 기다리던 엄마 아빠가 크게 소리쳐 부를 때까지 아이들은 등대 곁을 떠날 줄 몰랐다.
Sun. 11:00
화재의 상처를 안고도 여전히 아름다운 낙산사
파도 소리가 들리는 숙소에서 전날의 피로를 푼 가족여행단은 일찍 아침식사를 끝내고 낙산사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붉은 홍의지문을 지나자 잘생긴 소나무 숲이 반긴다. 그러나 소나무는 대부분 불에 그을렸다. 낙산사의 부드럽고 유려한 아름다움은 여전했으나, 그래서 곳곳에 남은 화재의 흔적이 더 안타깝고 가슴아팠다. 6·25 때도 살아 남았다는 사천왕전은 이번에도 화를 입지 않고 다행히 남아 있지만 주 전각인 ‘원통보전’은 폐허로도 남지 않았다. 보전을 지키던 석만이 덩그러니 남고 전각은 간 데가 없었다. “인연은 인력으로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안내를 하던 지장스님의 한숨 같은 중얼거림이 가슴에 남는다.
가족여행단은 기와불사의 기왓장에 가족의 건강과 낙산사의 빠른 복원을 빌며 이름을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적어냈다. 이렇게 작은 정성이 모이면 분명 낙산사도 금방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아름다운 낙산사에 이별을 고했다.
Sun. 12:30
꽃이 흐드러진 마을 전체가 기념관 봉평 이효석기념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봉평으로 들어서는 길. 아직 메밀꽃이 필 무렵이 아니건만 푸른 밭엔 흰 꽃이 만발하다. “어머, 감자꽃이잖아!” 메밀꽃 대신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족여행단을 반겼다.
봉평의 명물인 메밀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전병, 감자떡에 막걸리까지. 엄마 아빠는 그 반가운 음식에 연신 탄성을 지른다.
식사 후에는 천천히 걸어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의 기념관으로 향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것이 언제 적 봉평일까? ‘개울’을 지나는 ‘섶다리’, ‘방앗간’과 방앗간 옆의 ‘당나귀 우리’까지. 길목마다 소설 장면을 재현해놓았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 곳은 당나귀 우리. 천성이 순한 당나귀는 아이들의 손길에 얌전히 몸을 맡기고 풀을 받아 먹는다. 아이들은 좀처럼 당나귀 앞을 떠나려 하지 않았지만 엄마 아빠의 재촉에 못내 걸음을 옮긴다.
이효석기념관은 아이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재미있는 영상과 인형 등으로 작가 이효석을 소개했다. 방금 본 당나귀며, 물레방아가 모형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며 좋아하는 아이들. 그러고 보면 사철 꽃이 흐드러진 마을 전체가 이효석의 문학 기념관이다
Sun. 15:00
직접 캔 산나물의 향긋함 산나물 채취 체험
산나물밭에서 산나물을 채취한다고 하자 엄마들이 가장 신나했다. 맛이 특별하기로 유명한 강원도의 산나물을 욕심껏 가져올 기회이기 때문이다. 오늘 캘 나물은 나무취와 곰취 그리고 밥에 넣어 먹기 좋은 곤드레나물이다. 농장 아저씨의 설명대로 모두 조심조심 그러나 신나게 나물을 캔다. 세 살짜리 선민이까지 뒤뚱뒤뚱 엄마를 돕겠다고 봉지를 들고 나선다. 할당된 1kg이 작은 양도 아니건만 봉투는 금방 차버렸다. 아이들은 자신이 캔 나물을 뿌듯해하며 손에서 놓지 않았다.
향긋한 산나물을 마지막 선물로 받아 들고 이제 서울로 돌아갈 시간. 피곤할 만도 한데 이대로 여행을 끝내는 것이 아쉽기만 한 분위기다. 이번 참가 가족 중에는 주체사인 한국관광공사의 김성훈 과장 가족도 있었다.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고 소감을 밝힌 김 과장은 우리나라의 여행지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아, 어느새 한강이 보인다. 훗날까지 이야기할 즐거운 추억을 또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1박 2일의 체험 가족여행은 싱그러운 산나물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끝나가고 있었다.
여행지안내 (운영자 : 약초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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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방문지는 양구의 박수근미술관. 양구가 자랑하는 천재 화가 박수근의 작품이 전시된 곳이다.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를 꿈꾼 그는 거친 선으로 1950~1960년대 한국의 시골을 주로 묘사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했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은 후 각자 흩어져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했다. 무뚝뚝하지만 정감이 살아 있는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향수가 느껴진다. 엄마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작품을 감상하던 아이들은 이내 뜰로 뛰어나갔다. 뒷산에서 타고 내려온 개울이 흐르고 햇살 받은 따뜻한 잔디가 깔린 작고 아담한 뜰은 그대로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특히 양지 쪽에서 햇살을 받고 있는 그의 동상은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분명 화가 박수근도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사랑했으리.
꾸불꾸불한 산길을 따라 덜컹거리며 두타연으로 향하는 길. 민간인 통제 지역이라 신분 확인을 위해 입구에서 잠시 정차했다. 아이들은 군인 아저씨가 마냥 반갑다. “아저씨, 이 총 진짜예요?” 아이의 당돌한 질문에 군인 아저씨는 조금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한다. 순간 버스 안에 “와~” 하고 웃음이 터진다.
1990년에 발견된 네 번째 땅굴이다. 커다랗게 입을 벌린 겉모습에서 위압감이 느껴진다. 300m쯤 걸어 들어가자 북한군이 팠다는 진짜 제4땅굴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전동차를 타야 한다. 전동차는 100m 정도 내려가자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거기까지가 남한 경계령. 저 앞으로 뻗어있는 긴 터널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진다. “왠지 배신감 같은 게 느껴져요. 남이나 북이나 똑같이 평화롭게 통일을 바란다고 생각했는데….” 중학생 소연이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슬슬 이틀간 여행의 피로가 몰려올 시간. 쉬기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던 버스가 도착한 곳은 양양 8경 중 하나인 하조대였다.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바다 그리고 백년송이 더해져 시원하면서도 고즈넉한 절경을 이루어낸다. 양쪽의 절벽에 각각 육각정과 흰 등대가 있어 경치가 더욱 아름답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숙소에서 전날의 피로를 푼 가족여행단은 일찍 아침식사를 끝내고 낙산사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봉평으로 들어서는 길. 아직 메밀꽃이 필 무렵이 아니건만 푸른 밭엔 흰 꽃이 만발하다. “어머, 감자꽃이잖아!” 메밀꽃 대신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족여행단을 반겼다.
산나물밭에서 산나물을 채취한다고 하자 엄마들이 가장 신나했다. 맛이 특별하기로 유명한 강원도의 산나물을 욕심껏 가져올 기회이기 때문이다. 오늘 캘 나물은 나무취와 곰취 그리고 밥에 넣어 먹기 좋은 곤드레나물이다. 농장 아저씨의 설명대로 모두 조심조심 그러나 신나게 나물을 캔다. 세 살짜리 선민이까지 뒤뚱뒤뚱 엄마를 돕겠다고 봉지를 들고 나선다. 할당된 1kg이 작은 양도 아니건만 봉투는 금방 차버렸다. 아이들은 자신이 캔 나물을 뿌듯해하며 손에서 놓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