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만난 동굴 생성물과 생태. 살아 있는 어드벤처를 꿈꾸는 <프라이데이>가 미개발 동굴인 단양의 K굴을 탐사했다.  미개발 동굴, 단양 K굴
K굴은 총길이 약 675m(주굴 약 295m, 지굴 약 380m)로 남북 방향과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이 굴은 1983~1985년에 연세대학교 선사연구실이 발굴했으며, 석회암 지대에 발달한 동굴로 발굴 당시 동굴에 쌓여 있는 퇴적층에서 구석기시대의 동물 화석과 석기, 짐승 화석이 발견됐다.
이 굴에서 발견된 짐승 화석과 석기 등의 유적은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 문화를 이해하고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개발 동굴에 들어가려면 문화재관리국(천연기념물)과 해당 도청(지방기념물),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위반시엔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동굴환경학회는 입굴할 때마다 해당 지자체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충남 단양군 도담삼봉 근방, K굴(보존을 위해 탐사 동굴의 이름과 소재를 밝히지 않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박쥐 박사’ 최병진 씨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느라 여념이 없다.
“가뭄이라 겨울보다 더 건조한 것 같은데요. 최소한 굴 안에 물은 차 있지 않을 겁니다. 초보자(기자) 두 명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탐사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을 것 같네요.”
한국동굴연구소 김연 씨가 바짝 긴장한 취재진을 향해 격려의 말을 건넨다. 한국동굴환경학회 회원들이 K굴 입구 절벽에서 탐험에 필요한 등하강 연습을 하는 동안, 취재진과 연구소 직원 두 명이 먼저 입굴했다.
K굴은 수평 동굴이다. 탐사하는 동굴이 수평이냐 수직이냐는 목숨과 직결된다. 수십 장 길이의 낭떠러지가 있는 동굴에서는 여차하면 큰 사고를 당한다. “암벽타기에 능숙한 클라이머라 할지라도 동굴 등하강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게 김정수 탐험대장의 말이다. 좁은 동굴 안으로 촬영 장비까지 들고 들어가야 하는 취재진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랜턴 불빛이 닿지 않는 심연 속 동굴
굴 입구에서 안쪽으로 몇 발짝이나 뗐을까, 비둘기 배설물과 흡사한 흔적이 바닥에 깔려 있다.
“비둘기 똥하고 똑같은데요?”
“구아노라고 합니다. 박쥐의 배설물이죠. 벌써부터 냄새가 진동하죠? 이 굴에도 꽤 있겠는걸요.” 박쥐 연구 15년의 최 박사에게는 ‘박쥐 똥이 밥벌이 밑천’이란다.
“어, 새낀가?”
앞서 가던 김연 씨가 랜턴으로 굴 천장을 비추며 외친다.
“물윗수염박쥐야. 다 커도 저만 해. 치와와가 어른 된다고 셰퍼드 되는 것 아니잖아!” 탐사의 재미가 솔솔 나는 듯 최 박사가 농담을 한다. K굴에 들어와서 처음 만나는 동굴 식구, 아니 동굴의 주인이다. 물윗수염박쥐는 시베리아, 중국, 한국, 일본에서 발견되는 박쥐로 몸통이 작은 게 특징이다. 바위에 바짝 붙어 웅크리고 있으면 키위 반 토막이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보여 새끼박쥐로 착각하기 쉽다.
최 박사와 사진기자가 랜턴 빛을 낮추고 살포시 박쥐를 촬영하는 동안, 기자는 박연 씨와 함께 앞서 나갔다. 그러나 갑자기 전방을 비추는 랜턴 불빛이 뻗어나가지 못하고 붉은 종유석 벽에 박혀버렸다. 그리고 나타나는 터널 하나, 이제부터 진짜 동굴이다.  네 명이 굴 바닥에 엎드려 2~3m 간격으로 줄을 지어 갔다. 먼저 뒤에서 앞으로 촬영 장비를 올려보내고, 바짝 붙어서 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50m쯤 전진한 것 같다. 도중에 가장 옹색한 굴이 나타났는데, 장마가 지면 이 굴의 앞뒤가 수세식 화장실 배수통처럼 꽉 막혀버린다고. 비가 오는 사이 굴 안에 있다가 자칫하면 생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굴 안에 들어갈 때는 들어가는 사람과 밖에서 지원하는 사람 사이에 약속이 중요하다. 연락할 수 있는 길이 전무하기 때문에 굴에서 나오는 시간을 어기면 밖에서는 사고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분의 랜턴과 배터리, 자일, 비상 식량 준비는 말할 것도 없다.
숨막히는 터널을 빠져나와 허리를 곧추세우자마자 광장이다. 석회암 지대의 갈라진 틈으로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빗물이 스며들면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녹아서 깔때기 또는 절구 모양으로 오목하게 팬 웅덩이를 형성하는데, 그렇게 생성된 것이 굴 속의 광장이다.
환선굴, 용연굴, 고씨동굴에서 본 굴 속 광장보다 규모 면에서 소소하다. 가로 세로 30~40m, 중대형 아파트만 한 공간, 들어오는 입구와 막장(굴의 끝)으로 나가는 통로가 사람 하나가 들어올 수 있는 크기라 아주 아늑하다.
일행이 가지고 온 랜턴을 모두 켜니, 광장의 면면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바닥엔 1~5cm 가량 진흙이 깔려 있어 굉장히 미끄럽다. 진흙 바닥의 작은 수로를 통해 물이 빠지고 드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닥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는 다시 지하로 스며드는 숨구멍이 있다. 천장과 벽에는 종유석과 석순, 유석, 커튼형 종유석, 삼겹살처럼 생긴 베이컨시트 등 동굴 생성물이 자라고 있다. 조명으로 치장한 관광 동굴에 비해 화려함은 떨어지지만, 억겁의 세월 동안 형성된 자연 생성물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동굴 탐사, 주부도 할 수 있다
막장으로 들어가는 광장의 배면으로 자리를 옮기고, 촬영용 조명을 모두 켰다. 그리고 한가운데에 김연 씨가 섰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기분을. 향유고래의 뱃속으로 빨려들어간 피노키오가 벌어진 고래의 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뒤에서 보는 광장의 단면은 바다를 향해 주둥이를 쫙 벌린 ‘열린 주둥이’ 같다. 땅 속 짐승이 파놓은 솜씨 좋은 ‘하이웨이’ 같기도 하고. 일단 누구나 보지 못하는 그 어둠 속의 세계를 감상하고 있다는 것에 짜릿한 환희가 느껴진다.
“굴 속에 있으면 점점 적막의 세계에 빠지게 되죠. 나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거죠.”
강원대 동굴동아리 7기(92학번)인 김연 씨는 1,000여 개로 추정되는 한국의 동굴 중 400여 군데를 탐사했다고 한다. 진흙투성이의 동굴을 날다람쥐처럼 잘도 뛰어다닌다.
30분 정도 앉아 있으니 몸에 한기가 든다. 이날 굴 내부의 온도는 12~13℃ 정도. 무더위로 바깥 기온이 30℃를 훨씬 웃도는 날씨라 상대적으로 춥게 느껴진다. 그래서 동굴에 들어올 때는 항상 저체온증을 조심해야 한다. 겉옷 안에 방한복을 껴입는 게 좋다.
광장의 깊이는 약 15m, 입구에서 150m쯤 들어간 지점이다. 여기에서 주굴의 막장까지는 진흙으로 된 작은 방이 무수히 많다. 작은 방과 방 사이로 작은 통로가 나 있으며, 이런 구간이 60m 정도 이어진다고 한다. 아마추어인 우리는 여기까지 들어가보진 못했다. 하지만 사진 촬영 때문에 무려 세 시간이나 암장이나 다름없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신선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밖으로 나오니 최병진 박사가 물윗수염박쥐를 한움큼 잡아왔다. 새의 날개에 인식표를 달듯 박쥐 날개의 뼈 부분에 특수 제작한 철제 인식표를 달고 있다. 아직까지 1,000여 개밖에 달지 못했지만, 체계 있는 박쥐 연구를 위해 1만 개 정도 달 거란다.
뒤늦게 들어갔던 학회 회원이 굴 탐사를 마치고 돌아온 일요일 오후, 1박 2일간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20여 명의 몰골은 홍수에 휩쓸려 내려온 부유물처럼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탐험 정신을 얻었다.
▒한국동굴환결학회
 1994년 지질학 교수들과 각 대학의 동굴 동아리, 졸업한 OB팀이 모여 구성했다. 이 학회의 매력은 전문가와 일반인이 적절히 섞여 있다는 것이다. 대학 교수, 동굴탐험학교장, 박쥐 박사, 발파 전문가뿐만 아니라 주부, 큐레이터 등 여성 회원도 꽤 있다.
지난 2002년 삼척동굴엑스포 때 가입 회원 수가 수백 명에 달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기 탐사에 꾸준히 참석하는 인원은 20~30명 선이다.
탐험에 필요한 장비는 암벽등반 장비와 비슷하다. 동굴 내 수직 절벽, 오버행, 뻥 뚫린 터널을 오르락내리락하려면 등강과 하강을 하기 위한 장비가 꼭 필요하다. 하네스, 등강기, 하강기, 캐러비너, 자일 등 개인 장비를 구비하기 위한 비용은 40만~50만원 선. 동굴에 들어가면 옷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작업복을 많이 입는다.
학회 입회 절차는 온라인 카페(http://cafe.daum.net/cavenet)에 등록하고, 월 정기 탐사에 참석하면 된다. 연회비 3만원을 납부하면 동굴탐사회원에 등록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회원 활동을 하려면 암벽학교보다 훨씬 고달픈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033-262-5176
●caver92@hanmail.net |
여행지안내 (운영자 : 약초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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