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끔 그 집을 들여다보네++
싸리 울타리 안에 감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수백 개 알전구 켜들고 집 주위를 환하게 밝힌다 비루먹은 누렁개 한 마리 잡풀 무성한 마당으로 들어선다 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옆구리에 패인 갈비자국이 꿈틀거린다 등뼈가 휘도록 콧등을 땅에 붙이고 무언가 냄새를 찾는다 달맞이꽃과 망초 숲에서 놀던 가시멧노랑나비가 서둘러 자리를 뜬다 황구 녀석은 구석구석 푸새더미 뒤지더니 신발 한 짝을 물고 나온다
실밥 터진 운동화를 혼자 밀고 당기고 굴리다가 그도 싱겁던지 대청으로 훌쩍 뛰어오른다 안방 건너방 맴돌며 부서진 서랍장, 베개, 아기나팔, 거울조각… 버려진 시간을 끌어낸다 잡동사니 세간들을 마루 위에 쌓아놓고 킁킁대다가 온몸으로 문지르다가 가늘고 긴 목을 뽑아 목청껏 짖기 시작한다 여름내 홍시 속에 쟁였던 햇살이 순금으로 쏟아져 내린다
바람이 가끔 그 집을 들여다본다
사람을 벗은 빈집에서 뼈 부딪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월평>
- 황량한 농촌의 빈집을 테마로 한 시가 어디 한두 편인가, 그럼에도 이 시는 새롭게 다가온다. 일상적인 언술체계를 시적 진술로 바꾸는 대목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제목 「바람이, 가끔 그 집을 들여다보네」만 해도 그렇다. 실상, 가끔 그 집을 들여다보는 주체가 사람인 경우가 일상적 언술이다. 그런데, ‘사람’ 대신에 ‘바람’으로 환치시켜서 쓸쓸함을 더 극명하게 한다.
싸리울타리 안에 감나무 한 그루 수백 개의 홍시, 곧 알전구를 켜들고 집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건만, 그 광경을 즐겁게 누려야 할 사람의 모습은 자취 없고 비루먹은 누렁개 한 마리만 잡풀 무성한 마당으로 들어선다. 버려진 빈집처럼 함께 버려진 듯한 누렁개의 참혹한 정황이 눈물겹다. 이 녀석은 사람이 그리운지, 신발 한 짝 물고 나온다. 개의 동선을 따라 비춰지는 황폐한 빈집의 풍경이 리얼하다. 빈집이 환기하는 쓸쓸함은 개가 가늘고 긴 목을 뽑아 목청껏 짓기 시작하자 여름내 홍시 속에 쟁였던 햇살이 순금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그런 빈집의 풍경을 바람이, 가끔 들여다본다.
이 시는 캠코드로 빈집의 동영상을 촬영해 보여주듯, 너무 생생하다. 일상적이라는 것은 금방 매너리즘에 빠져버린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아니한다는 비유가 이 세태에도 적확하다 하겠다. 황폐해져가서 노인만 남은 시골이 많고, 그 노인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냥 빈집으로만 남는 농어촌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일상 속에서 파묻혀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영식의 「바람이, 가끔 그 집을 들여다보네」는 다시 한번 농어촌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좋은 시는 연주나 춤 이상의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상옥(비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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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