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산문입니다^^
일전에 한 문예잡지의 청탁을 받고 세번째 시집이 나온후
<자작시집 엿보기>라는 코너에 실었던 글인데요
이번 기회에 여기 다시 한번 올릴수 있는 시간이 되었네요
^^
산문
<나는 문장의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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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색의 푸른 발이 젖는 밤이 있고 푸른 나무가 물색의 발을 내놓고 자는 밤이 있다 내가 머물던 가장 낮은 층계엔 38번 버스가 지나가고 내가 늘 앉던 버스의 뒷 좌석엔 처음으로 삼킨 것 같은 감정이 남아있다 수염을 자르기 위해 일어나는 바위처럼, 물기로만 만들어진 바위도 본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거 내가 일분동안 오분을 살았다면 나의 나이는 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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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붓는다 건반을 배워본 적이 없는 손가락이 여러개의 건반을 가질 때.
어느날 누군가의 손바닥을 펴고 손금을 느리게 바라보다가 깊고 아름다운 해변을 떠올린것 처럼, 가진 적 없는 손가락으로 써내려가는 문장은 무색의 짙은 지진이 물든다 여러 개의 손가락이 단 한 개의 건반만을 붓게 하는 것처럼. 그들이 다녀온 단어, 단어, 단어, 부호, 부호, 부호, 의문, 충동, 감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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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다녀온 문장은 멀미를 하게 마련이다
그건 나의 PASSPORT, 나는 문장의 여권, 하지만, 시는 아직 한번도 여권을 들고 떠나본 적이 없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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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머리에 앉아 문장의 시제를 암기하느니 지구에 존재하는 마을의 이름을 외우는 편이 낳다고 믿는다 아니면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마을의 이름을 지어주거나 존재하지 않는 마을의 시제를 떠올려 보는 일이 시의 시제라고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시는 우리가 무엇을 묻는지보다 무엇을 느끼는지 모르는 있는 문장의 시제라고 불러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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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구슬을 주머니에 많이 숨기고 있으면 그는 가장 깨끗한 구슬의 소유자가 되거나 놀이에 가장 배고픈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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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개의 언어로 숨 쉬고 있는 시의 성기엔 차질 없게 모든 순서가 피해간다 조용히 종이로 내려온 붓처럼. 붓은 자신의 배열을 따라 천천히 흘러 자신의 육을 조금씩 종이 속에 매장한다. 침묵으로 사정하듯. 침묵으로 사정을 받아 주듯.
가령 물이 오랜 꿈을 꾸면 사람이 수면으로 떠오르고, 꿈에 물이 이토록 차면 사람이 이승 밖으로 떠오르듯이, 붓에 물이 차면 그림이 되고 붓에 그늘이 차면 글이 되는 시간, 그건 누구도 종이에 한번도 오른 적이 없는 탑승, 돌아오지 않는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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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착륙
쿠바의 외딴 황무지에 버려진 격납고하나만 빌려달라고 정부와 기업에 실험 영화제 기획안을 낸 적이 있다 격납고가 열리면 관객은 배치된 낚시 의자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도록, 격납고 문이 닫히고 어둠속에서 영화는 상영된다 아주 긴 영화가 거의 끝나갈 즈음, 밖은 이미 어둠이 시작된 밤이다. 멀리서 비행기 소음이 들려온다. 격납고 문이 천천히 열리고 격납고를 꽉 채울만한 낡은 프로펠러 비행기 한 대가<이미 계획된> 불빛을 깜박거리며 거칠게 날아오고 있다. 헤드셋을 끼고 있던 관객은 뒤를 돌아 마주오는 비행기를 바라보고 경악을 한다. 이대로 계속 저 지독하게 길고 먹먹한 영화를 마지막까지 볼 것이냐 저 비행기의 착륙을 온 몸으로 충돌할 것이냐를 놓고 그들은 아주 심각한 긴장을 하게 된다. 귓 속에 영화의 사운드가 계속 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비행기 굉음만 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기획의도는 이런 것이었다. ‘귓 속에 곧 밤이 찾아온다’
2
붓에 감염된 한지들
3
구름은 허공에 흘러다니는 땅을 밟고 산다 땅에 내려와선 부호의 문양을 남기고 죽는 새를 오래 바라보면 자신의 종이에 박힌 새들이 이상한 허공을 배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건 내가 오래도록 쓰고 싶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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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시키고 싶을 정도의 문장으로 수업을 하다보면 문법에는 성적이 자꾸 떨어져도 똑같은 언어로 이야기하는 관습은 천천히 버릴 수 있다 하지만 명징하고 아름다운 식사중에 어떤 문장을 마시고 피를 토하는 새를 분명히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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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실종된 사체
그 사체가 갖는 시차는 이쪽에서 보면 폐기지만 자기 쪽에서 보면 고유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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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의 아말피해안엔 작은 도시 포지타노가 있다. 그곳에서는 누워서만 지냈다 새들의 얼굴이 조금씩 마르는 것이 보이던 아침, 내가 누워 있는 곳이 입안에 담그고 있는 밤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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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개가 없을 때 공책을 채웠고 나는 한 개 밖에 없을 때 공책을 바꾸었다 한 개의 공책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부분을 채워가기 위해서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표시하고
멀리 물 위에 누워 자는 공책을 이쪽으로 건져오기 위해선 여러 개의 비밀을 빠른 속도로 암기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꿈들은 다른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믿고 일어나면 자신이 암기한 모든 공책에서 죽은 벌레들이 쏟아진다. 그 부분을 가로지르고 새로운 것을 채워가기 위해서는 공책을 물어뜯는 꿈을 여러번 다시 꾸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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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성을 쌓고 죽은 하나의 돌이 없고 하나의 돌이 비어있는 성이 없듯이 견고함만으로
유일한 가능성을 꿈꾸는 시제는 일찍 사라진다. 내게 감정이란 입 속의 갈매기를 재우는 표정 같은 거, 내가 머물던 가장 낮은 층계엔 38번 버스가 지나가고 나는 버스의 뒷 좌석에 앉아 삼킨 것 같은 표정으로 있었다. 내가 일분을 오분동안 살았다면 나에게 시제란 무엇인가 동사의 시제는 도대체 어디있는가 조동사의 미래는 어디있고, 분사의 과거는, 부사의 사이는, 명사의 사건은, 형용사의 시제는, 어디있는가 어디있는가의 시제는, 사물의 시차는 어디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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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척 긴 머리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하나의 문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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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