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박상수
얼음 가득 석류 주스를 마셨어 눈 녹은 묘지 냄새가 났어 손목에 동굴이 생겼어 동굴에서 목소리가 울렸어 한쪽 또 한쪽 네 말이 흔들렸어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무너졌어 철탑을 지나 구름이 몰려왔어 우산 위로 씨앗들이 쏟아졌어 양털처럼 터졌어 깃털이불처럼 흩날렸어 북해도에 가자고 말했어 옛날이었어 옛날이 말하고 지금이 받았어 두 사람이 출발해서 혼자 도착했어 가방은 잃어버렸어 조각난 집들이 묻혀 있었어 창문이 말했어 어떤 계절은 달짝지근한 냄새만 남기고 사라지네 눈 쌓인 신호등이 흔들렸어 붉은색이 반짝이며 앵무새가 갇혔어 파란색이 깨져서 선인장이 쏟아졌어 의자에서 네가 걸어나와 가시를 달고 날 안았어 잘라내도 잘라내도 네가 계속 걸어나왔어 집들이 자라났어 지붕이 없어서 너무 추웠어 똑같은 문을 달고 똑같은 정원이 달린 집들이었어 열쇠를 넣어 돌렸는데 모래가 되었어 숨을 쉴 때마다 시계탑이 말했어 눈은 녹아 돌아오지 않을 거야 집들이 잠기면 호수에 찾아오는 봄 둥둥 떠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어 마개를 뽑고 손을 넣어봤어 벽장이 열렸어 사슴이 누워 있었어 몸에서 김이 났어 그걸 안고 털신을 신고 끝까지 걸어가겠다고 했어 겨우 그렇게 말했어 뾰족한 나무들이 흔들렸어 가방을 끌고 누군가 차에 탔어 철로가 열리고 시계가 똑딱일 때마다 녹물이 흘러나왔어 검은 물들을 빨아먹고 먼지와 죽은 나방들이 쌓여갔어 머리를 땅에 박은 사슴 배에서 식은 아이가 걸어나왔어 자줏빛 원피스를 입고 혼자 춤을 췄어 춤을 출수록 이빨이 쓰라렸어 어떤 것은 잊혀지지가 않았어 시간의 빛나는 결정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어 지나가지 않았다고 믿었어 부서진 피리를 밟고 철책 너머 바람이 불어왔어 배들의 공동묘지에서 천천히 배가 기울어지고 있었어 눈빛이 선명한 홍게들이 몰려나와 거품을 내뱉으며 말라갔어 불멸의 머리카락이 자라났어.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 동서문학》시부문 당선
2004년 [《현대문학 》평론부문 당선
시집 『 후르츠 캔디 버스』』『숙녀의 기분』,
평론집『귀족 예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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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관리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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