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학친구와 저녁식사를 했다.
오래 만에 만난 친구이기도 하려니와 계속된 아침운동으로
건강이 좋아져 술이 땡겼다.
양주를 주는 대로 받아 먹다보니 금방 취기가 올랐다.
2차는 노래방.
18번 한 곡 부르고나니 더 부를 노래도 없어 술만 계속 들이켰다.
일어나 보니 아침이다.
머리가 뽀개지듯 아플 뿐 아니라
마음 한 구석이 께름직하다.
어제 술 마신 기억은 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집에는 어떻게 온 걸까?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실수를 한 것을 알았다.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마음과 몸이 모두 아프다.
앞으로 이 친구를 어떻게 보지 두렵기까지 하다.
전에도 만취한 적은 있지만 필름이 끊어진 적은 없다.
아니 필름이 끊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는 사정이 달랐다.
이렇게도 기억이 안 날까?
나는 원래 착하고 얌전한 모범생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었을때
고참병이 신병 군기를 잡는 모습을 목격했다.
고참 : 이 씹새끼야, 이걸 내무반 청소라고 해놨어, 개새끼야.
쫄병 : .......
고참 : 이 개새끼야, 아니꼬면 나보다 먼저 군대오지(차마 그대로 쓸 수 없어 순화시킴).
온갖 욕이란 욕은 다하고 있었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부반장을 오래 동안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부드러운 말투를 지닌 점잖은 내무반장이었다.
연대에서 모범사병으로 뽑히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칠어져가는 내 말투를 느낄 수 있었다.
제대할 때쯤에는 내가 경멸했던 욕쟁이로 변해버렸다.
다행이 제대 후에는 점잖은 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술에 만취하면 달라졌다.
군대있을 때에 쓰던 욕이 튀어 나오고
괴이한 행동과 어울러져
실수투성이의 인간이 되었다.
어제가 그런 경우였다.
기억은 없지만 매우 부끄러운 짓을 한 것 같다.
그렇다고 뼈 빠지게 나라를 지킨 노병의 푸념이라고
이해해 줄 것 같지도 않다.
힘든 삶에 지친 한 인간의 울부짖음이라고
감싸줄 것 같지도 않다.
괴롭다.
앞으로 무슨 낯으로 그 친구를 보지.
주여, 저의 이 아픔을 이해하신다면
꼭 어제 하루만이라도 지워버릴 수 있게 해주소서!
앞으로 과음하지 않고 점잖게 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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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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