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2月 04日
압량, 정오 때였다. 키 큰 남자 손님이었는데 코스타리카 드립 주문이 있어 두 잔 내렸다. 한때 오 씨는 부산에 점장으로 있었지만 불과 몇 개월 상간에 문을 닫았다. 그간 커피를 잊어 자신감이 없었다. 내가 잠깐 왔을 때 주문받은 게 있어 보자마자 ‘본부장님 드립 두 잔 내리세요’ 하는 거다. 손님은 커피를 아주 좋아하는가 보다. 손님께서 잘 볼 수 있도록 바(bar)앞에다가 놓고 드립 했다. 손님께서 한마디 한다. ‘아, 저 주전자로 내리기 힘들던데’ 나는 물을 마저 내리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 했다. 그렇다면 커피를 내려 보았다는 얘기다. 이 주전자를 사용해 본 적도 있고, 비싼 주전자인데 어떻게 갖추었을까? 어떤 계기로,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손님께서 볶은 커피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신다. 모두 15,000원에 판매하지만, 블루마운틴은 양이 180g으로 다른 커피에 비해 조금 적다고 했다. 가격은 같다. 블루마운틴으로 한 봉 달라고 했다.
바(bar)에 서면 손님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 대화는 모두 커피여야 한다. 우리는 커피를 하는 것이지 손님과 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다. 커피라는 주제 하나로 올바른 얘기가 나갈 정도면 커피에 대한 일반상식을 많이 갖춰야 한다. 그러니까 커피를 알지 못하면 손님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커피 일을 하면 커피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가만히 서서 아무런 대화 없이 오시고 가시는 손님을 대한다면 그 손님은 아마도 이 카페를 다시 찾지는 않을 것이다.
본부, 서 부장은 오늘 컨디션이 별 좋지가 않은가 보다. 아침에 출근할 때 문자가 왔다. ‘헉, 본부장님 죄송한데요. 제가 오늘 열쇠를 못 들고 왔어요. ㅠ’ 사동에 있었는데 직원 출근하는 모습만 보며 얼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후, 한의대는 직접 배송을 다녀왔다. 나머지 몇몇 군데는 서 부장이 다녀왔는데 교육 마치고 자리 앉아 하루 마감할 때였다. 서 부장 ‘본부장님 죄송한데요. 실수했습니다.’ 전표 날짜가 모두 1월로 출력했다. 전표를 보자마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각 점장께 문자를 보냈다. ‘점장님 죄송합니다. 전표 날짜가 1월로 되어 있습니다. 2월로 고쳐주셔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몇 군데는 문자답변이 왔다. 괜찮다는 문자와 새로 끊어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오후, 커피 교육했다. 커피 경영에 상호, 로고, 레터링, 슬로건, 사업설명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조언을 드렸다. 커피 세계전파 과정과 우리나라 역사에 관해서, 그 뒤로 이었다. 이론은 커피 영업과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커피 일을 하면 밑바탕으로 알고는 있어야 한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이라면 커피가 어떤 것인지는 알아야 찾으시는 손님께 바르게 이야기할 수는 있겠다. 본부 일을 마감하고 압량에 간다.
서 부장께 부탁한다. 드립 한잔 내려 보시게. 커피를 먼저 분쇄기에 넣고 간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커피는 모든 작업이 끝나고 제일 마지막에 가는 거야. 지금 분쇄하면 향이 이미 날아가잖아. 아마도 퇴근을 의식했지 싶다. 요즘 무언가 정신 놓고 다니는 듯 그렇게 보인다. 자리에 앉아 커피 한 모금 마신다. 킬리만자로 커피다. 아프리카 흙내가 곧은 도로망 타고 곧장 내려간다. 향이 밀려온다. 아마, 사마천이 나를 보고 있다면 엄지손가락 하나 올렸을 것이다. 사기를 쓴 양반이지만 커피는 못 마셨을 테니 말이다. 나는 또 한 잔의 커피를 손에 담았다. 녹색 꺼풀 속에는 줄로 꿴 이야기들로 가득한 묵직한 한 권의 커피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경운기 정도의 엔진을 제너시스의 용량으로 숨 가쁘게 읽으며 부드럽게 운행한다. 마치 요철 없는 도로를 달리듯 오로지 공기와 산과 물을 마음껏 들여다보듯 아주 자연스러운 일주 같은 것이다.
커피는 상상의 세계로 나를 안내한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했던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컴퓨터 앞에 앉은 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음미한다. 그러므로 젖는다. 손가락은 굳으면 되는 일이 없다. 촉촉이 젖은 거미처럼 가느다란 실낱같은 세상 한번 걸어가 보자. 그러니까 커피는 나에게는 양성이며 남자다. 커피를 마실 때면 나는 음성이며 여자가 된다. 모든 것을 낳을 수 있는 요람이 되고 싶으니까!
아마 사마천은 컴퓨터 앞에 앉은 필자를 보고 이렇게 말하겠지! 야 너만 마시지 말고 나도 한 잔 줘. 그리고 나와 대화를 나누겠지. 나는 사마천께 이런 질문을 했을 거다. 한나라 황제 무제께 커피 한잔 따라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말이다. 그러니까 황제의 다혈질적인 명령은 내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사마천 자네에게 남자의 기능을 지우는 궁형은 내리지는 않았을 거란 얘기다. 또 어찌 보면 49세에 이 벌을 받았지만, 불알은 쓸 만큼 쓰지는 않았을까! 남성 호르몬이 40세 넘으면 급격히 떨어지니 세울 수 없는 자존심 같은 것은 아예 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사기편찬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렇든 저렇든 한 무제께 커피 한잔 대접만 톡톡히 했더라면 흉노정벌에 나선 이릉 장군을 아껴 보살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덤 만드는데 더 신경 썼을 텐데 말이다.
압량
여느 가정과 다름없이 돈 문제는 가정의 현실이다. 사업과 가정을 함께 꾸려 나가야 하는 처지에서 하루 쓰는 돈은 부담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만 아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온 가족의 협조가 없으면 빚은 갚기 어렵다. ‘카페인’ 죽죽 긋는 소리가 내 전화기에 뜰 때마다 불안하다. 세상 살기 싫은 것은 어느 가장인들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카페인’ 한번 그을 때마다, 아이디어가 창출된다면, ‘카페인’ 한번 그을 때마다, 머리숱이 붙는 것이 아니라 도로 빠진다면, ‘카페인’ 한번 그을 때마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면, 암만 생각해도 그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면 ‘카페인’ 긋는 소리 안 나길 바랄 뿐이다.
鵲巢李鎬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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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