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면읍 방포항에서 뱃길 40분, 섬에 다가갈수록 불안했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다. ‘우리바다 유일한 구석(球石) 방파제가 있는 섬’이라는 게 서산시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설명이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서남해안에 흔한 무인도 규모의 섬이라는 느낌밖에 없었으니.
사람이 살고있는 섬이라면 낙도라도 한 두 개의 방파제가 있기 마련이다. 콘크리트로 쌓아 견고하거나 큼직한 돌을 층층이 쌓았거나 배를 댈만한 방파제는 섬살이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 섬엔 가까이 다가가도 방파제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배를 댈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데도 선장은 빙긋이 웃기만 할 뿐이다. 잠시 후 5톤급 에프 알 피 어선은 뱃머리를 가볍게 올려놓았다. 섬 입구에 길게 깔린 자갈밭 위로. 길이도 그렇지만, 폭도 만만하지 않아 보였다. 자갈로 이뤄진 언덕을 오르니 곧, 눈대중으로 40미터쯤, 바다 쪽으로 난 길이 보인다. 온통 자갈과 조약돌뿐인 길이다. 어민들이 바다에서 보는 이 자갈밭은 자연방파제지만, 섬에 올라서서 보면 바다로 난 자갈길이다.
 행정지도에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314번지로 기록되어 있는 내파수도. 방포포구에서 동남쪽 9.7킬로미터니 멀다할 섬은 아니지만 느낌만은 말 그대로 외딴섬이다. 현재는 공식적으로는 무인도요, 비공식적으로는 두 남정네가 살고 있다. 풍산개와 진돗개의 피가 반반쯤 섞였다는 ‘곰’과 ‘백구’와 함께.
그 크기라야 1평방 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고 해안선 길이 역시 1.4킬로미터가 전부인 이 섬마을이 태안군 어민들에게 주목을 받은 끝에 충남 기념물로 지정까지 받은 까닭은 타고 온 어선이 가뿐히 올라있는 크고 작은 자갈 덕이다. 지난 1983년 3월 8일의 일인데, 그전까지는 보령군 오천면에 들어 있다가 태안군으로 옮겨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날, 섬마을 내파수도 전체는 충남도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른다.
 구석(球石)이라 불리는 내파수도의 이 둥근 자갈은 그 옛날 화산폭발로 쏟아져 내린 바위들이 억겁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파도에 쓸리고 닦인 끝에 만들어진 매끈한 모양새를 자랑한다. 우리 것 탐내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잔꾀를 부려 실어갈 만 하다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만큼 모난데 없이 잘생긴 자갈과 조약돌무더기다.
섬 동쪽 해안을 따라 남과 북으로 교차하는 바닷물의 흐름이 저 밑바닥에 깔려있던 자갈과 조약돌을 쓸어 올려 만들어낸 돌무더기. 뒤에 사람들은 이를 자연 방파제라 부르며 배를 대곤 했다. 밀물 때는 서쪽 100여 미터의 돌무더기만 드러나는 대신,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동쪽 끝 돌무더기까지 모두 드러나는 까닭에 이미 조선시대부터 우리 어선이나 중국의 상선들이 폭풍을 피하거나, 식수를 공급받기 위해 정박하기도 했다는 게 태안군이 밝힌 섬의 유래다. 특히, 이런 구석 자연 방파제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하여 그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것이라던가.
이 자갈밭은 철에 따라 그 위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겨울에는 세찬 북풍에 자갈이 밀리면서 남쪽으로 옮겨지고, 여름에는 또 그 반대 방향으로 20～40미터쯤 밀려가면서 전혀 다른 위치에 돌무더기가 돋아 오르며, 때에 따라 이름 붙은 태풍에 자갈 무더기의 일부 유실되었다가도 세월이 지나면 절로 복원되고 있다니 말 그대로 자연은 위대하다.
 우리바다에 떠있는 거개의 무인도가 그랬듯이 내파수도 역시 처음부터 무인도였던 것은 아니다. 주민등록상으로는 다섯 세대까지 사람들이 거주했던 일은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얘기라 했다. 물론 지금도 그 집터가 남아있고, 풍파에 형편없이 쇠락했으되, 어느 정도 모양을 지닌 ‘집’도 몇 채 남아있다. 그 중에는 ‘내파수도 지킴이’라 불렸던 두 할아버지가 살던 집도 있다.
이 외진섬에 살며 두 노어부가 애써 지키려 했던 것은 무얼까. 짐작대로 자갈이다.
내파수도 자갈은 강도가 워낙 높아 도자기 원료인 규석을 곱게 갈아주는 연마용 재료로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 해서 이를 실어내 한 때는 헐값에 일본으로 수출까지 한 속없는 ‘선달양반’도 있었다는데, 파도와 바닷물 갈고 닦인 그 모양이 좋다보니 막상 이를 빼내간 일본인은 정원을 꾸몄다 했다. 처음부터 그 잘생긴 자갈을 탐낸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든지 바람결에 들렸다는 소문은 그 값이 ‘겨우 톤당 3,800원’ 이었다던가. 60년대 중순의 이야기일지라도 고개가 흔들어진다.
 반면, 속없는 이가 있으면 속이 꽉 찬 이도 있게 마련.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안종훈 옹과 선동규옹으로 웬만한 강심장을 지닌 이가 아니면 아예 내파수도 근처까지 다가오지도 못하게 했던 섬 파수꾼이다. 친구 사이였던 이들은 미역양식을 위해 섬살이를 했다는데, 앞글처럼 이들은 뒷날 미역양식 보다는 ‘돌싸움’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고, 그 수고로움은 텔레비전 등 각종 대중매체에 이색적인 인물로 소개되기도 했을 정도. 그이들 중 안종훈 옹의 공적을 기리고자 ‘파수도 사랑모임’이란 시민 단체에서 세운 비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안종훈 선생은 1920생으로 30여 년 동안 내파수도의 ’구석(球石)자연방파제‘를 지키시다, 1998년 1월 사고를 당해 앓아 누우셨습니다. 권력과 금력을 엎고 둥근 자갈을 팔아먹으려는 자들과 맞서 싸우다 모함에 빠져 감옥 생활까지 하셨습니다. 이 작은 섬 하나를 지키는데 온갖 고초를 다 겪으셨으니…중략…공익위선(公益爲先)의 좌우명으로 행정구역을 바꾸고, 파수도의 구석방파제와 동백나무 군락을 충청남도 문화재(기념물 64호)로 지정케 하여 이 후로는 어느 누구도 이를 훼손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라는 것.
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일본인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자갈을 실어낼 생각은 하지 못한다. 법적으로 손을 댈 수도 없다지만, 지금은 관리인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념물 관리인은 아니다. 국립 서해수산연구소가 운영하고 있는 시험양식장을 돌보는 이들이다. 그이들이 겪었을 뭍에서의 사정은 모르겠으되, 그야말로 외로운 낙도지기 노릇을 하는 것도 모자라 내파수도 앞 바다에서 자갈밭까지 밖엣 사람들이 근접하는 것에 질색을 하고 있으니 역시 내파수도 파수꾼이다.
 얼굴 순해 보이지만, 귀를 쫑긋이 세우고 있는 풍산개와 진돗개의 피가 반반쯤 뒤섞였다는 ‘곰’과 ‘백구’도 만만치 않다. 욕심 부릴만한 밖엣 사람이면 이빨부터 드러낸다는 것이다. 조용한 섬살이에 방해된다는 뜻이겠으되.
한편, 이들도 예외로 여겨주는 밖엣 사람이 있다. 서해수산연구소 연구사들과 폭풍우를 피해온 뱃사람들이다. 자갈밭 자연 방파제가 파도를 막아주니 온갖 패류 양식에도 적합하다 하여 진작에 서해수산연구소에서 시험양식장을 들여놓았다는 것. 그 연구를 위해 찾아오는 연구사들이니 관리인뿐만 아니라, 두 마리의 견공 역시 호의적일 밖에 없고, 폭풍우를 피해온 어민들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런 내파수도 바닷속에서는 지금 전복과 해삼·큰이랑피조개·비단가리비·해만가리비·키조개 들 해서 온갖 조개류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고, 몇 년 안에 ‘바다목장’도 들어선다.
흠이라면,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는 정도인데, 일단 두고보자. 서쪽바다 한가운데 상상 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섬이 있다는 것도 좋은 얘기 아닌가. 되돌아 나오는 배 안. GPS가 가리키는 내파수도는 동경 126도5분, 북위 36도27분에 찍힌 단지 점 하나에 불과했다.
발췌 : epostwebzine 2004/10월호 글, 사진 : 김상수(해양다큐멘터리 사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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