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장미의 전설(정 하나)/이승민
문이 열리고
안녕!!
간호원 누나의 상큼한 목소리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내민다.
그렇지
의사선생님이 산소라고 많이 마셔두라고 하셔서
아홉 번까지 마신 기억 밖에 없는데 다쳤었지
엄마와 아빠 여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들려오고
왜, 잠이 이렇게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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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안녕!!
간호원 누나의 상큼한 목소리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내민다.
아빠가 내 손을 꼭 쥐고 기도를 하신다.
의사선생님이 들어오는 소리 수술은 대 성공입니다
피가 부족해서 큰일날 뻔했지만 아버님이 뛰어다니신 덕으로
수술이 잘됐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눈을 뜨고 싶은데 말을 하고 싶은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한 숨 푹 자야지 간호원 누나의 목소리 또, 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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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안녕!!
간호원 누나의 상큼한 미소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내민다.
안녕 누나!!
제가 하얀 장미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죠??
주사 맞을 시간이야...미소만
^___^
하루걸러 동네 분들이 찾아오시고
교회에서 찾아와 기도와 예배도 드려 주시고
엄마와 누나들이 돌아가면서 병간호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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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안녕!!
간호원 누나의 상큼한 미소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내민다.
이제는 일어나 앉을 수도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다.
오늘도 여전히 간호원 누나는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내밀며 미소를 띠신다.
벌써 두 묶음이나 드라이플라워를 해서 벽에 걸어 두었다.
고마워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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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안녕!!
간호원 누나의 상큼한 미소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내민다.
내 병실은 삼층 창 밖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연신 달리는 자동차들 파란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우습다.
입원한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젠 병원 생활도 지겨워지고 링걸 꽂을 자리도 마땅치 않다.
오월 봄 햇살은 늘어지게 창문 통해 쏟아져 들어와 웅성거린다.
계절의 문턱에 살포시 기대어
꽁꽁 얼었던 마음 하나
봄볕에 말리고 툭툭 털어 봅니다
겨울 저 아래서 끝내 멍울져
버리지 못했던 감정도 하나
싱그러운 바람에 실어 날려 봅니다
콧등 타고 내려와 젖은 기억 보듬는
연둣빛 봄볕 그 입맞춤으로
겨울에 고뇌와 이별을 고합니다
봄볕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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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안녕!!
간호원 누나의 상큼한 미소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내민다.
오늘은 스승이날이자 내 생일이자 일요일이다.
누나가 나가고 바로 창 밖으로 거친 브레이크소리 비명소리
밖을 얼른 보니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났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경찰아저씨들의 호각 소리
누군가 크게 다친 것 같다.
이제는 걸어 다닐 수도 있고 학교친구들도
간혹 찾아와 말벗이 되어준다.
지금쯤이면 화단에 라일락도 한창이고 박달나무 꽃도
다 피었을 텐데 귀 기울이지 않으면 느끼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봄이 너무도 아쉽다.
빨리 퇴원하고 싶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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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안녕!!
간호원 누나의 상큼한 미소
오늘 퇴원이겠네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내민다.
누나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래 건강하고 병원 오는 날 잊지 말고
예
3개월 동안 장미 보내준 사람 누구니?
예??
누나가 주신 것이 아니었나요???
그래 네가 입원하는 날부터 매일 아침 한 송이씩 302호에
전해달라는 글과 퇴원할 때까지 알리지 말라는 메모 밖에는
없었는데????
그래요 저도 잘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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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장미를 전해준 사람이 무척이나 궁금했고
일년 휴학을 해야 했다
집에 들어가려면 300M정도 돌담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그 돌담에는 온통 하얀 넝쿨장미와 붓꽃, 수선화,
채송화, ...많았지만 나는 하얀 장미를 제일 좋아했다.
시간만 나면 나와서 손질하고 했는데 퇴원해서 보니
전지와 손질이 말끔하게 되어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같은 동네 친구가 찾아왔다.
너무나 반가웠는데,
친구의 한마디 말에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동생 하나, 정 하나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숨어서 나오지도 않던
농담으로 커서 내게 시집오라고 말하면 멀리 달아나 버리던
지난 5월15일 파란 신호 무시하고 달려오던 자동차에 받혀 죽었단다.
내가 보고 있던 그 횡단 보도 그 시각 그 자리에서
많은 생각이 오가고 감당할 수 없는 아픔 밀려왔다.
그렇게 잘 알지는 못 했지만 간혹, 몰래 장미를 꺾고있는 하나를 보면
큰 소리로 화를 내고 혼도 내주고 그랬는데
친구여 혹시, 내가 입원했을 때 하나가 흰장미 내게 보냈니
아니 모르겠는데........
무서웠다
[하얀 외로움]
외로워 본적이 있나요
정말, 정말로 외로워 본적이 있나요
그 무서움 느껴 본적이 있나요
산의 분노에 내 몸 내주고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죽음이라는 길목에서
잃어버린 감각에 정신은 온전한데
아픈 곳은 하나 없는데
털털거리는 경운기 위에서
파리하게 식어버린 내 얼굴 바라보는
더 하얗게 변해버린 얼굴로 괜챦냐 는 물음에
정신은 멀쩡한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목소리는 왜 안 나오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 하얗게 미소만 띠던
그 추위
그 막막한 외로움
정신은 멀쩡한데 하얗게 흐려지는 세상
친구도 가족도 내 존재마저도
하얗게 부서지던 그 외로움
눈떴을 때
온통 하얀 세상에 홀로서 있던
아버지 그 모습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소리 없이 흘리시던 눈물의 의미
그 하얀 외로움 가득한 곳에 있을
아버지 그리워집니다.
[하얀 그리움]
그리워 본적이 있나요
정말, 정말로 그리워 본적이 있나요
그 무서움 느껴 본적이 있나요
산의 분노에 내 몸 내주고
일 년 휴학해야 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사람이라곤 텅 비어 버린 동네
바람은 불어 꽃도 피우고
나무 부추겨 열매도 맺게 하는데
멍하게 뜬눈으로
하루 보내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그리운지
꼬마만 봐도 할머니만 보여도
울컥 이는 기쁨 느껴 본적이 있나요
그마저 힘들어지면 낚싯대 하나 들고
혼자인 바다와 하염없이 눈 맞추며 보내던
그 막막한 그리움
정신은 멀쩡한데 하얗게 잊히던 언어
친구도 가족도 내 존재마저도
하얗게 부서지던 그 그리움
눈떴을 때
온통 파란 세상에 홀로 떠 있던
하늘 덮었던 어머니의 모습
소리 없이 웃으시던
그 미소의 의미
그 하얀 그리움 가득한 곳에 있을
어머니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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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외로움과 무서움의 날들 지나고
새 봄이 오고 복학을 하고 잊혀지던 정 하나
학교 가기 위해 돌담 따라 나오다
하얀 넝쿨 장미 사이 오롯이 피어난 빨간 장미 한 송이
넋 놓고 바라볼길 몇 시간 그 자리에 무릎 꿇고 기도를 했다.
내 가슴에 영원히 각인된 너의 모습 누구도 지울 수 없을 거라고
주님 곁에서 정말 편하게 쉬라고
그 빨간 장미 한 송이를 꺾고 하나의 무덤을 찾았다.
그렇게 정 하나의 무덤을 찾아가는데 꼬박 일년이 걸렸다.
오늘 하루는 너와 함께 이고 싶구나
순박했던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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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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