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6月 03日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보았다. 맑은 햇살이 곱게 내리쬐고 있었다. 참 평화로운 날이었으나 마음은 백제와 신라와 고구려 그리고 왜에 둘러싼 작은 나라의 가야처럼 불안하고 두렵고 세상이 어둡기만 했다.
아침은 수프와 달걀부침 하나였다. 예전에는 아침밥을 꼭 먹었으나 식욕이 떨어진 지도 오래되었다. 이제는 밥이 더 부담 갈 때도 있다. 일은 많으나 돈은 벌지 못하니 아내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도 못 된다. 이렇게 함께 살아주는 것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샤워할 때였다. 엊저녁 잠자리 들기 전에 아내가 한 말이 자꾸 떠오른다. 요즘 ‘메르스’ 바이러스 관계로 카페에 손님이 없다고 했다. 본점과 사동은 매출이 아주 급감했기 때문이다. 하루면 모를 일이나 이것도 여러 날 이어지니 불안했다. 나는 메르스와 아무런 관계없는 것 같은데, 하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다른 분점은 사*이나 진*이나 계*과 병원은 오히려 매출 호조를 보이니 하는 말이다. 젖은 몸을 닦고 머리를 빗는다. 로션을 바르려고 하다가 만다. 로션 떨어진 지도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떨어진 로션 보니 병원에 일하는 이 씨가 생각났다. 남편이 로션 떨어졌다며 한소리 들었다는 얘기를, 하지만 한소리 할 처지도 못되지만, 로션을 사는 것도 돈이라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속옷 한 장 입고 허름한 바지 입고 티 한 장 입으며 나왔다.
사동 개장하고 책 읽으며 있었는데 첫 손님 오셨다. 금오공대 나오신 선생이다. 여자 분도 함께 오셨다.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책을 보시며 이 책들은 그냥 주는 거냐며 물으신다. 파는 거라고 했다. 직접 쓴 것이라 얘기하니 더욱 관심을 둔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서 ‘커피 향 노트’가 그나마 읽을 볼 만할 겁니다, 했다. 그러니 책 표지를 보시고는 얼굴 대조해 보는 고객, 쑥스러웠다. 책을 사인해서 한 권 드렸다. 손님께 커피 드리고 잠시 앉았나, 정비공장에서 전화가 왔다. 범퍼가 준비되었으니 차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얼른 본부에 들어가 봉고 몰고 정비공장에 갔다. 차를 맡겼다.
차를 맡겨놓고 본부에 들어가고자 택시를 기다렸지만, 좀체 오지 않는다. 콜택시 부르니 콜택시도 오늘은 무슨 일이 있나 보다. 배차하는 데 실패했다며 문자가 뜬다. 잠시 도롯가 경계석에 앉아 쉬며 있었는데 마침 까만 택시 하나가 오기에 세웠다. 임당동 갈 수 있으시냐며 물었더니 택시가 어데 안 가는데 있겠습니까? 하는 거였다. 콜택시 요청했는데 안 되더라며 얘기했더니 기사께서는 여직원에 대해서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니까 배차에 관한 문자나 통보를 한 번 더 띄우면 되는 일을 한 번하고 만다는 것이다. 손님 모시고 가더라도 그사이에 일이 끝난 분은 바로 이행할 수 있는 일인데 손님께도 미안하고 우리 기사들도 일할 기회가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된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택시 탔는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아주 편했다. 임당동 가는 내내 기사의 말씀도 뒤에 앉은 나로서는 안 지루했다. 본점에 내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대접했다.
우리는 택시 기사는 아니지만 택시 기사처럼 커피 일을 해야 한다. 어쩌면 카페에 일하지만, 손님은 택시에 타듯 잠시 오셨다가 가시기 때문이다. 카페에 오시면 편안해야 한다. 그래 편안한 공간만큼은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편안한 공간만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단지 28
검은사발에담은눈꽃빙설
눈보다고운마치설탕처럼소복하다.
그위에얹은단팥과인형같은아이스크림도
한숟가락씩먹으면가라앉는빙설
혀에닿는달콤한맛에군말도있을법한데
점점줄어드는빙설
쓴고깔모자처럼
검은사발에담은눈꽃빙설
오후, 현대자동차 서비스 센터에 다녀왔다. 엔진오일 갈았다. 노동청에서 전화가 왔다. 근로자와 근로계약서는 있는지 임금은 노동부에서 준하는 수준에 합당하게 나가는지 조사했다. 다음 주 월요일 순시할 것이니 가게에 비치해놓으라고 했다. 만약 근로계약서가 없으면 과태료가 500만 원이라고 했다. 사동에 일하는 직원에게 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양식을 보이며 조목조목 설명과 더불어 모두 서명할 수 있도록 일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지시한 대로 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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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