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7月 02日
아주 맑았다. 삼사월에 자주 보는 황사 같은 것은 없었다. 자연경관이 깨끗한 그림 한 장 보는 것 같았다.
사동 개장하고 청도에 다녀왔다. 동곡에 들러 내부 공사 진행사항을 보았다. 공사 담당하는 사장이 있었는데 에스프레소기계 설치에 필요한 콘센트 작업이 미흡해서 흡족하게 맞춰달라며 부탁했다. 사장은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내부공사를 해 본 경험이 있었다. 상판에 구멍 뚫은 것도 전기 콘센트 작업도 모두 임의로 해두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해야 한다. 기계가 들어가면 맞지 않는다.
여기서 운문으로 향했다. 가비까지는 약 십오 분 정도 거리다. 조금 서두르게 온다면 십 분이면 올 수 있다. 기계 샤워망과 고무가스겟을 갈기 위해 들렀다. 청도 운문에는 가비 말고도 카페가 여러 있지만, 외모나 상호나 또 다른 분위기를 보아도 특색 있는 카페가 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고객께 이목을 끌 수 있는 카페는 가비뿐이다. 상호와 로고가 그렇고 카페가 그렇다. 커피집 분위기가 물씬 나는 상호는 말 그대로 커피라는 뜻으로 웃어른 그러니까 할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아버지 세대 때에 자주 썼던 말이기도 했다. ‘야야 가비 한 사발 내 오너라’ 가만히 있다가도 어딘가 모르게 꼭 할아버지께서 곰방대 두드리며 여린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느껴지는 한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조선 시대와 근대, 근대를 거쳐 현대에 사는 우리는 불과 백 년밖에 되지 않는 시차다. 그러니 가게 상호를 짓는다면 심중히 생각해 볼 이유가 있다. 운문은 관광차가 자주 들어와서 차에서 내리면 가비밖에 볼 수 없다. 도로 가에 세워둔 상호는 더욱 뚜렷해서 또 밝기도 하거니와 글자가 워낙 굵고 실하기도 허니 안 볼 수야 없는 간판이다. 기계 손보고 있는 사이에도 관광차가 하나 들어오는데 기사가 내리더니만 이쪽으로 들어온다. ‘아이스커피 한잔 하고 시럽 쪼매 들어간 아이스도 한 잔 주소’ 배가 산만큼 한 오십 대쯤 보이는 아저씨다. 나는 이 동네 주민인 줄 알았다. 손님께서 가시고 나서 배 선생께 물었다. 이 동네 주민인가요, 하며 말씀 드렸더니 오늘 처음 보는 손님이란다. 아무튼 오전 청도 가비에 다녀왔다.
청도에서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경산 다 왔을 때쯤 팔 차선쯤 되는 달구벌대로 어느 신호등 건널목이었는데 건널목 좀 지나서 어떤 아주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아주머니의 소지품이 도로바닥 위에 난장판으로 흩어져 있었고 양산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느 중형차 한 대가 그 뒤쪽에 서 있었고 차주가 내려 휴대전화기 들고 급한 전화를 하고 그 큰 대로에 차는 점점 밀리는 상황이었다. 모두 차창을 내려서 뭔가 싶어 내다보는 상황으로 사건은 아주 긴박하게 보였다. 사람은 쓰러져 있었지만 조금 움직이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단정하기는 그렇지만 어려울 듯 보였다. 참! 보지 말아야 할 사항이었다. 어찌 건널목에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사람 나고 차가 있었지 어찌 저 사람은 경솔했던가! 참으로 안 된 상황이었다. 운전은 항시 조심스럽게 해야 함이다.
3시 교육이 이번 주는 못 오신다며 연락이 왔다. 집에 자두 따야 해서 다음 주까지 미루자고 한다. 경산은 특수작물을 많이 재배하는 도시다. 살구, 자두, 복숭아, 참외, 포도까지 알게 모르게 이웃도 많이 생겨서 각종 과일은 맛 볼 수 있어 좋은 도시다. 어제는 교육생께서 자두를 한 상자나 들고 오셔 입이 모처럼 호강하기까지 했으니, 그뿐 아니라,
경산은 참으로 산이 많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 경산에서 청도로 가는 길은 겹겹, 산으로 둘러싸여 전경을 볼 수 있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가는 길이 산자락에 놓인 도로라 그 옆은 자연 골이 깊어 천을 이루는데 차로 운행하면 물을 쉽게 볼 수 있어 좋고 산 중턱을 보면 군락이 형성되어 저기도 사람이 모여 사는구나! 하며 탄식할 때가 잦다.
최 씨는 오늘 밀양에 다녀왔다. 에르모사와 한학 촌에 다녀왔다.
4시쯤, 가배도록 2권을 받았다. 책을 손에 거머쥐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는데 꼭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불안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지만 떳떳하게 누구에게나 드리기에도 부끄러운 책임을 다시 느꼈다. 왜냐하면, 일기며 더욱 시라서 그렇다. 공자께서 익히 말씀이 있었다. 시 삼백 수면 사악함이 없다고 하였으나 이 이유는 각종 비유라 거짓을 논할 필요가 없고 마음을 발가벗긴 거라서 꼬짓꼬짓한 고린내 나는 ‘나’이기에 부끄러운 것이다. 주위 그 어떤 분도 권하기에는 마뜩잖다. 한 세대나 두 세대쯤에 재미로 볼만한 책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지 56
쏟고치솟다가닦고닦아내고지우고붓고다시들이붓다가넘쳐
흐르고들여다보고아니고비틀고비집고뜯고물어뜯고당기고
끌어당기고빨고다시쿡찌르고찔러넣고다지고짜고짜개고쑤
시고들어내고긁다가모아서흩뿌리고영아니고깨뜨리고주워
담고쓸어담다가다시구기고돌돌말아던지고들춰보고죽죽긋
고아니고또아니고다시구기고던져버리니이게뭔詩란말인가
11시 정각에 사동 마감했다. 이번 주 들어 가장 조용했다. 11시 30분 본점 마감했다. 저녁은 손님이 영 없었다는 본점장 성택군 보고를 받는다. 내일 배송 가야 할 곳 전표를 본부에서 밤늦게 끊고 물건을 챙겼다. 내일 오전에 화원 모 꽃집에 가야 한다. 일이 너무 많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개운하지가 못하다. 두통이 며칠째 가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머리 통째로 어디 두들겨 맞은 거처럼 아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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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