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6月 24日
그렇게 많이 끄무레한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흐렸다.
박영규 선생께서 쓴 우리나라 역사,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실록을 모두 읽었다. 아침 본부에 잠깐 머무는 동안 조선왕조실록을 마저 읽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달 이상 걸렸다. 고전에 관심이 가서 사기를 읽다가 중국사를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이참에 우리나라 역사에 관해서 다시 한 번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펼쳤다. 왕조의 흥망성쇠를 읽으면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이 나면 성장하고 성장한 시기가 있으면 또 쇠한 시기도 있다. 한 국가의 태동과 멸망을 또 그 원인을 읽으면 시대의 흐름을 이해가 되며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거라는 것도 암묵적으로 알 게 된다. 각 왕조의 삶을 읽으며 수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삶을 살아가는데 정치적으로 너무 휩 쌓이지 않으며 중립적인 위치로 내 뜻을 바르게 옹립한 사람이야말로 천수를 누리며 산 것 같다.
서강 이사장님께서 오셨다. 빙수용 팥 56상자를 싣고 오셨다. 이 사장님은 올해 연세 63세다. 그런데도 팥 상자, 세 상자를 지며 내리며 하신다. 한 상자는 무려 18 K정도 나간다. 3K짜리 팥 깡통이 여섯 개 들었다. 젊은 사람도 이런 고된 일은 한 며칠하면 하지 않는 일이 태반이다. 하지만 이 사장님은 이 일을 몇 십 년이나 해 오셨다. 아침에 팥이 다 되어간다며 문자를 넣었는데 정오에 봉고차 한가득 싣고 오신 게다. 도매도 마찬가지지만 소매도 비슷하다. 그러니까 하나를 팔면 그렇게 이문이 많이 남는 건 아니다. 때로는 주문 수량이 많으니 하루 인건비 버는 것이 대부분이다. 팥 이리 가와 봐야 남는 것 없어 하며 한 말씀 주신다. 맞는 말씀이었다. 200원 떼기다. 그러니까 한 상자 천이백 원 남는다. 오십 여섯 상자면 칠만 원 채 안 된다. 그 많은 상자를 지고 날라보라! 땀은 절로 난다. 이 사장님께서 지고 온 물건을 나는 다시 창고에다가 재었다.
어제 기계 설치했던 곳, 초도물량을 챙겼다. 잔잔한 숟가락부터 휘핑기까지 모두 챙겼다. 상자로 보면 세 상자 정도지만 펼치면 주방에 곳곳 놓을 물품이다. 커피를 만들 때 필요한 가벼운 도구들이며 파우더며 커피와 시럽, 소스 같은 것이다. 영업하려면 꼭 필요한 물건이다. 한 시간 가까이 챙기는 동안 최 씨는 병원에 배송 다녀와야 했다. 하양에 물건을 내려드리고 들어오는 길에 버섯명가에 들렀다. 지난주 커피 담는 투명플라스틱 통이 깨졌다고 했다. 그 부품이 오늘 아침에 서울서 내려받았다. 지난주 주문했지만, 수입절차 상 그간 받기 어려웠다. 현장에 들려 보니 투명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쓰고 있었다. 기계 에스프레소 세팅을 새로 해주었다. 기계 청소하는 방법과 교체한 스테인리스 강 망 소독 방법을 가르쳐 드렸다. 최 씨가 보고 있어 덤으로 교육한 셈이다. 일 다 끝내고 나니까 구태여 수박 한 덩이 잘라 주신다. 그간 못 뵌 지도 좀 되었어 여러 가지 담소 나누었다.
오늘 몇 분의 사장님을 대했지만, 모두 사람 쓰며 일하는 업계 대표다. 임금에 관한 노동계약서와 근로 기준에 관한 여러 잡다한 일을 자세히 아는 분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오히려 반문하신다. 맞는 말씀이었다. 모두 하루 급급히 살아가며 정으로 대하니 아무런 문제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표가 그리 나쁘게 대하는 사람은 모두 없었지만, 노동청에 제시한 기준은 눈만 동그랗게 뜨인다. 기준은 역시 벽이며 머리 아픈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누가 그 법을 다 지키며 정확히 행하는 사람은 어디 있겠는가! 경기는 말할 수 없이 어려운데 말이다. 그러니까 다섯 시 퇴근이면 정확히 나가야 하며 만약 더 머물게 되면 수당을 내야 하는 것처럼 참 웃긴 세상이다. 융통성이란 것은 없으며 조직이란 게 거저 지켜보면 돌아가는 자동차쯤으로 생각한다. 노동청에 일하는 사람도 월급 받는 사람이니 뭘 알까! (노동청에서 요구한 대로 하면 법정 임금으로 조정해야 하며 그렇게 임금수준을 맞추면 지금 우리 쪽 직원은 모두 임금을 낮춰야 한다. 그렇다고 노동시장에 노동수급에 안정성을 기하며 나가는 임금수준에 어떤 한 항목이 없다며 시정명령을 내리는 건 잘못된 처사다)
단지 50
두꺼운송판위에맑은잔 담은커피있네 화살처럼일생각하며 허공에던져놓은낚싯대바라보네 향구수한커피한잔 머리희끗희끗하네 강태공같았네 폭빠뜨린전등보며 지은모래집아이마시네
자정 밀양에 일하는 상현이 보았다. 어찌 일 안 하고 여기 있느냐며 물었더니 오늘 쉬는 날인 갚다. 조만간 직원 하나 더 뽑는다며 얘기한다. 함께 일하는 친구는 빵 기술 배우러 보내야 한다고, 가게 부담으로 처리하는 가 보다. 빵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려고 하는 가보다.
저녁나절에 세빠도 잠시 보았다. 가게 놀러 왔다고 했다. 커피집 하면서도 본점에 와서 커피 한잔 마시며 간다.
찌개를 만들었다. 어머님이 자꾸 생각났다. 촌에 있을 때였다. 해 떨어지고 나면 저녁을 했는데 어머님은 찌개를 만들면서도 짜글짜글 맛있게 만들겠다며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짜글짜글, 의태어다. 맛보기 전에 벌써 군침이 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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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