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는 오히려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기계적으로 찍어낸 대량 생산품보다 손때 묻은 수공예품이 정겹고, 잿빛 콘크리트보다 보송보송한 흙에서 사람들은 향수를 느낀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기도 이천은 흙 냄새가 살가운 고장이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하던 이천 쌀을 품어낸 것도, 장인의 정성으로 빚어낸 도자기의 모태도 흙이다.
특히 도자기는 이천 사람들이 흙에 시간과 정성을 더하고 예술혼을 담아 만들어낸 대표적인 문화재. 도자기를 매개로 올해 열두 번째를 맞는 도자기 축제와 세계도자비엔날레 2003 등의 행사를 치를 수 있었고, 이천시를 홍보하는 효과도 톡톡히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은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이천에 발을 딛으면 제일 먼저 ‘OO도요’, ‘OO요’라는 간판이 보인다. 청자·백자·옹기 등의 다양한 도자기를 판매하는 상점들도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초행길이라면 거기가 거기 같고, 뭐가 뭔지 감도 잘 오지 않는다. ‘도자기 마을’ 이천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우선 몇 군데의 도요를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이 좋겠다.
3번 국도를 따라 이천 시내로 진입하는 길에 처음 보이는 곳이 이천의 대표 도자기 산지인 신둔면 일대다. 40여 개의 도자기 가마가 모여 있는 도예촌으로, 전통 도자기의 맥을 잇는 도예가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고 전시와 판매도 한다. 이천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국보급 자기를 재현하는 전통 도자기와 생활 도자기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신둔면 일대의 도예촌은 1950년대 말부터 고려 청자나 조선 백자 등의 전통 도자기를 재현해온 곳.
1 지금도 흙가마를 이용해 도자기를 직접 구워내는 이천의 도요들. 아무때나 불가마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낸 이천의 다기. 3 40년 넘게 전통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이천의 손꼽히는 도예가 한요 서광수 씨.
이천이 도자기의 명산지로 이름을 알리게 된 데에는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흙이나 그것을 굽기 위한 땔나무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여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통 도자기의 맥을 이으려는 인재들이 모여들었기 때문. 한·일·합방으로 조선 백자를 주로 만들어온 남한강변의 관요가 폐지되면서 조선 도자기의 맥이 끊어졌지만 해강 유근형, 지순탁 등의 도공들이 신둔면 일대에 모여들면서 이천 도자기가 그 명맥을 잇게 되었다.
대부분의 도요에는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과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도예교실이 있다. 이천의 도예촌을 형성하는 데 시초가 된 ‘해강도자미술관’이나 얼마 전 도자기 명장으로 뽑힌 이천의 도예가 서광수 씨가 작업하는 ‘한도요’, 거리는 좀 떨어져 있지만 체험 장소가 아름다워 외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지선도요’ 등은 도자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대표 도요들이다. 도요 안에서 전통 가마를 구경하는 것도 색다르다. 요즘은 기계식 가마로 도자기를 구워 내는 곳이 많지만, 이천에는 아직도 흙가마를 쓰는 곳이 50여 군데나 된다고.
흙가마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지정된 날에만 불을 지피기 때문에 아무 때나 도자기 굽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까맣게 그을린 흙가마와 그 주위에 흐트러진 도자기 조각을 만지다 보면 가마에 자기를 넣어두고 겸허하게 기다리던 도예가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신비로운 푸른 빛깔의 고려 청자, 소박하고 꾸밈 없는 조선 백자, 투박하지만 튼실한 옹기에 이르기까지, 흙을 빚어 만들고 가마에 구워 내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 쏟는 정순(貞純)한 손길이며 마음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천이 주는 커다란 매력이 아닐까 싶다.
>> 도전! 술병 도자기 만들기 체험
‘세계도자비엔날레 2003’이 끝나고 난 뒤 찾아간 이천은 뒷마무리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행사에 참가했던 각 도요들은 출품 작품들을 정리하고, 전시장을 다시 꾸미느라 부산했다.
축제 때보다는 이천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줄었지만, 도자기를 감상하고 직접 만들어 보려는 어린이들과 외국인 관광객은 간간이 눈에 띄었다.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보는 일은 도예촌에 몰려 있는 대부분의 도요에서 가능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도요가 있어 어디로 찾아가야 할지가 고민거리. 처음 이천을 찾는 사람이라면 국내 유일의 도자기 박물관인 ‘해강도자미술관’으로 자연스레 발길이 닿을 것이다. 우리나라 도자기의 맥을 잇는데 불씨가 된 해강 유근형 선생의 작품과 유물을 전시하는 이곳은 그의 아들인 유광열 씨가 계속 대를 이어 전통 도자기를 만들고 있으며,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도예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대학 때 도예과에 가고 싶었다는 스타일리스트 강민경 씨도 모처럼의 주말 여행을 이천으로 잡았다. 커피보다는 차를 좋아해 주말이면 곧잘 인사동에 나가 구경하고 선물로도 구입하던 다기를 이번에는 도자기 마을에서 직접 구입하고, 또 만들어 보기 위해서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해강도자미술관을 알게 됐고, 유광열 씨의 아들인 유재원 씨가 직접 운영하는 도예교실을 찾았다. 금요일인데다 단체가 아니어서 바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초보자들은 대개 ‘코일링 기법’으로 도자기를 만들게 된다. 코일링 기법이란 길쭉한 흙 가래를 쌓아 올려 만드는 방법. 손으로 돌려 쓰는 손물레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영화 <사랑과 영혼>의 기계 물레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선 흙덩이를 손으로 평평하게 쳐서 동그랗게 바닥을 만든 뒤 흙 가래를 쌓아 올리며 손으로 안과 밖을 이어 붙인다. 흙 가래를 쌓고 이어 붙이기를 반복하면서 원하는 모양을 완성한다. 형태에 따라 그릇의 볼을 넓게 만들 것인지 좁게 만들 것인지를 결정한다.
민경 씨는 집에 두고 따라 마실 수 있는 진짜 술병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디자인을 전공해서인지 흙 가래를 쌓아 올리고 이어 붙이는 솜씨가 좋다.
중간 중간 선생 님이 물레를 돌리며 모양을 잡아주었다. 초보자는 아무래도 지도하는 선생님의 손길을 많이 받게 마련. 도자기의 주둥이 부분까지 쌓아 올리고 나자 선생님은 나무칼로 다듬기를 반복했다.
여기에 원하는 문양을 새기고 나면 도자기를 굽고 유약을 발라 다시 굽는 과정은 선생님의 몫이다. 이 과정까지 모두 하고 싶다면 도요에서 숙식을 하며 도공이 되는 수밖에. 만들어 놓은 도자기는 원하는 사람에 한해 한 달 정도 후에 우편으로 받아볼 수도 있다.
도자기의 모양을 완성하고 문양까지 새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도자기를 다 만들고 난 뒤 자기 이름까지 새긴 민경 씨는 도자기를 받을 주소를 남긴 뒤 생활 도자기를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해강도자미술관이 있는 신둔면 일대는 전통 도자기를 재현하는 곳으로 작품의 가격이 제법 나가는 반면, 사기막골 도예촌에서는 비교적 저렴하게 생활 도자기를 살 수 있다. 서이천 IC에서 3번 국도를 타는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500m 근방에 사기막골 입구가 보인다. 인사동의 작은 전통 가게처럼 눈에 익숙한 숍들이 군데군데 보이는 이곳에서는 다양한 질감과 색의 도자기와 다기류, 사발, 접시, 각종 장식품 등을 판매한다. 1,500원짜리 액세서리에서 10만원대의 다기류까지 다양하다.
● 도자기 만드는 과정 바닥 만들기 → 흙가래 쌓고 다듬기 반복 → 형태만들기 → 전·굽 다듬기 → 문양 새기기 → 상감토 바르기 → 상감토 긁기 → 초벌구이 → 유약바르기 → 재벌구이(완성)
● 도자기 체험 코스 3가지 A코스 - 흙가래를 이용해 모양과 문양을 완성한 뒤 굽지 않고 가져가는 코스. B코스 - 문양까지 새기고, 재벌 과정을 거쳐 집에서 받아보는 코스. C코스 - 초벌 상태의 도자기나 접시에 문양만 새기거나 그리는 코스. B코스와 마찬가지로 재벌 과정을 거쳐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Travel Point
>> 도자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 해강도자미술관 031-634-2266 해강의 둘째 아들인 유재원 씨가 직접 도예교실을 운영한다. 단체가 아니라면 당일 신청도 가능하다. 단 월요일은 휴무. 1 일 수강료는 3만원이다.
·한도요 031-632-7105 한요 서광수 씨가 운영하는 한도요는 이천에서도 손꼽히는 도요 중 하나. 몇천만원을 호가하는 전통 도자기들이 즐비하다. 최근 명장으로 임명된 이천의 도예가.
·지선도요 031-636-4993 도예촌과 다소 떨어져 있어 직접 찾아가기는 좀 어렵지만, 다른 도요의 체험교실과 달리 빨간색 벽돌의 작업실이 예쁜 공간 이다. 전시장에는 전통에 기반한 생활 도자기들이 많으며, 외국인에게 특히 인기 있는 장소.
>> 생활 자기 살 수 있는 곳 광주요 031-632-8031 다래 031-632-7609 앤티크 031-631-0296 도예향 031-638-8710
>> 신둔면 도예촌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IC로 빠져나와 3번 국도를 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신둔면 도예촌이 나온다. 곤지암 IC로 빠져나오면 3번 국도를 타고 그대로 내려오다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다.
>> 이천의 또 다른 볼거리
1 영월암 입구에 있는 수령 600년 된 은행나무가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2 설봉산 정상 부근에 있는 봉화대. 칼바위와 설봉산성도 볼 수 있다. 3 자연암석에 부조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보살입상. 4 매년 이천도자기축제가 열리는 설봉호수공원.
이천은 천혜의 비경이나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여행지는 아니다. 도시 자체는 작고 볼품이 없어서 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보기에도 별다른 풍경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천은 도자기 못지않게 이천쌀밥과 온천이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이천쌀밥은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할 정도로 그 맛이 뛰어난데, 어느 한 곳 특히 맛있고 맛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골고루 맛있다.
직접 벼농사를 지어 쌀밥집을 하는 곳도 여러 집이라, 10월 중순이면 갓 추수한 햅쌀로 지은 차지고 윤기 잘잘 흐르는 쌀밥을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어느 집을 가나 기본 반찬 수만 20여 가지에 달하는 식단은 그야말로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은 김에 싸먹기만 해도 어느새 한 그릇 뚝딱이다.
이천에서 가장 먼저 쌀밥집을 시작했다는‘고미정’과 직접 벼농사를 지어 유난히 쌀밥이 맛있는‘이천쌀밥 집’, 이천 시민들이 애용하는‘청목’, 일본인 관광객에게 특히 인기 있는 ‘정일품’ 등이 가볼 만하다.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보고, 멋스러운 다기나 도자기를 구경하고, 맛있는 쌀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도 이천 여행에는 여유가 남는다. 그 남은 여유 시간은 온천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제일.
5 갖가지 전설을 지닌 볼거리 들이 있는, 운치 있는 영월암. 6 온천수가 좋기로 이름 난 미란다호텔의 스파플러스.
수도권 내 유일한 온천 휴양지로 각광받는 이천온천은 지금부터 약 100년 전 근처에 살던 한 농부가 사시사철 솟아나는 더운 샘물을 이상히 여기고 이 물에 세수를 하였더니 앓고 있던 눈병이 나았다고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코끝이 싸늘해지는 늦가을, 따뜻한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고단함을 풀 수 있는 여행 코스는 이천의 또 다른 매력이다.
1박 2일의 여행을 계획하고 이천에 내려왔다면 이천 시내 중심에 있는 설봉산도 올라 볼 만하다. 정상까지 오르는 데 30분을 채 넘기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설봉산 중턱에 있는 영월암이란 조그만 사찰은 제법 운치 있다.
이천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고찰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1,300년 전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라는 설이 있다. 경내엔 보물 제822호인 고려시대의 마애보살입상이 자연 암석에 부조되어 있다.
또 영월암 입구에 있는 수령 600년 된 은행나무는 고려 말 고승인 나옹대사가 이 절에 머물 때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신비한 전설을 지니고 있다. 영월암에서 산 중턱을 타고 올라 정상을 지나면 칼바위 봉수대를 만나게 되는데,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설봉산성의 터도 함께 볼 수 있다.
이밖에 둘러볼 만한 곳으로는 백사면 도립리에 있는 반룡송(천연기념물 제381호)과 신대리에 있는 이천백송(천연기념물 제 253호). 특히 반룡송은 위로 자라는 대신 옆으로만 가지를 내는 듯하다. 펼친 우산처럼 생긴 나무 옆으로는 작은 소나무가 땅을 기 어가듯 옆으로 돋아나 특이한 형상을 이룬다.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이 나무는 하늘로 오르기 위해 꿈틀거리는 용처럼 생겼다 하여 반룡송이란 이름이 붙었다.
Travel Point
>> 온천하기 좋은 곳
·미란다호텔 스파플러스 이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천지. 이천 미란다호텔에서 사계절 이용 가능한 수상 테마파크로 새롭게 업그레이드했다. 단순 한 온천탕이 아닌 피부 미용에 좋은 테마 스파가 눈길을 끈다. 피부를 매끄럽게 하는 청주탕, 혈색을 좋게 하는 인삼탕, 연인과 함께 노 천욕을 즐길 수 있는 노천 레저탕을 비롯해 자수정, 참숯, 운모석 등을 이용한 다양한 찜질방도 인기. ● 031-633-2001 ● 06:00~22:00(토요일은 24시간 영업) ● 온천 9000원, 온천 + 찜질방 1만4000원, 온천 + 찜질방 + 실내 수영장 + 워터파크 3만5000원 ● www.mirandahotel.com
·고미정이천에서 가장 먼저 쌀밥집을 시작한 원조 쌀밥집. 031-634-4811 ·이천쌀밥집 고미정 바로 옆에 위치한 집. 직접 벼농사를 지어서 밥맛이 뛰어나다. 031-634-4813 정일품 멋지게 지은 전통 가옥과 인테리어로 일본인 관광객이 애용하는 집. 031-631-1188 ·청목 이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쌀밥집. 8,000원 정식이 유명하다. 031-634-5414 ·버드나무집 서초동의 버드나무집과 같은 한우 전문점. 값은 비싸지만 갈비탕과 쇠고기국밥이 별미다. 031-631-5757 ·권정연시절음식 산야초를 넣은 상큼한 약선요리 전문점.031-638-8828
>> 찾아가는 길
·설봉산 영월암 이천 시내에서 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설봉호수공원 표지판을 보고 들어가서 산으로 오르는 길을 타면 된다. 설봉산 중턱 에 있으며 도보 시간은 약 20분. 영월암까지 차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경사가 심해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영월암 가 는 중간까지 차를 세워둘 수 있는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반룡송 이천 시내에서는 다소 떨어진 곳에 있다. 20여 분 정도 자동차로 이동해야 한다. 이천 시청에서 백사면 방면으로 빠져나와 이포 방면 이정표를 보고 가다가 엘리제여관이 나오면 좌회전해서 다시 직진, 반룡송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다시 좌회전한다.
여행지안내 (운영자 : 약초 농부)
[게시물 소스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