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닐라
카지노 하얏트 호텔
옅은 잉크 빛 로비를 가로질러 크리스털로 된 벽을 지나니
벽에 파묻힌 듯한 블랙 리셉션이 보였다
간단한 예약 절차와 룸키를 받고 올라가
긴장 되어 있는 몸에 뜨거운 샤워 줄기를 틀었다.
곧 저녁이 되면 바이어와 만나서
계약 이전에 최종 합의를 사적인 자리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진 시간이 좀 남았기에 최대한 긴장을 풀고 몸을 쉬어야 했다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있으니 일보다는 지나간 얼굴이 생각났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그녀와 나의 작은 천사는 같이 있었나 보다
때로는 밥을 먹을 때,
때로는 담배를 피워무는 순간에도
늘 두 사람의 얼굴은
내 가슴속에서 떠나질 않았으니까
"한 남자의 가슴에 맺혀진 다는 건
그것은 죽을 때 까지 안고 가는 그리움인걸,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에도
아직도 그때 일들이 이렇듯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겨져
매번 눈을 꼭 감게 만드는 아픔을 남긴다
도날드덕을 보면 안젤라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처럼,
10년이 지나도 아니 그 이상이 흐른다 해도
그때의 마지막 눈빛, 그 마지막 약속은
시린 겨울날 보다도, 더욱 시리게 내 마음을 얼릴 것이다
정말이지 보고 싶었다
수없이 다시 생각해도
안젤라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그대로이다
하지만 샌드라에 대하여 내가 한 일은 후회가 되지는 아니하였다.
다만 아플뿐이였다,그렇게 되야 하는것에 아플 뿐이었다
제발 잘 살고 있어줬으면,언젠가는 내가 찿는 날이 있을 터인데
그때는 우리 둘이서 마음 터 놓고 정을 나눌 수 있을 텐데,
습관적으로 나는 혼자만 되면 옛날 생각에 눈을 감는다
똑같은 장면, 똑같은 모습인데도
눈꺼풀 속의 그 화면은 매번 질리도록 같은 걸로만 상영하고 있었다
눈을 뜨지 못한 채 몽롱하게 기억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방 전체를 울리는 커다란 전화벨 소리에 놀라 튕기듯 일어나 헬로우를 외쳤다
곧 이리로 온다는 소리에 나는 또다시 샤워기 앞에 섰다
상영 중이던 그리움이란 영화는 잠시 스톱시켜 놓고,곧 전쟁을 시작해야 하기에
부랴부랴 챙겨온 것들을 챙기고 내가 생각했던 것, 준비했던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그들을 만나러 로비로 내려갔다
식사와 이어지는 술자리, 그곳에서 다시 옮겨 또 이어지는 술자리.
그리고 마지막 술자리로 옮겨 갈 즈음 나는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있었다
상대 바이어도 조건을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이제 내일 아침에 최종 계약만 남겨둔 상태였다.
일이 잘 풀려나감에 들뜨는 기분이 너무 좋은 상태였지만,
아직은 마지막 사인을 한 게 아니라 일말의 불안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사람들이나 나나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모른다
서로 12시가 넘어가기 직전 내일을 위해서 날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자리를 끝내는 분위기였고, 호텔까지 바래다주면서
그들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모두 잘될 거니 내일 아침에 보자는 말을,
그들이 가고 호텔로 들어왔다.
로비를 가로질러 리셉션으로 가서는 룸 키를 달라고 하고,
그들이 잠시 키를 찿을 때까지 뒤로 돌아서 기다리는데,
왼편 맨 끝에 바 식으로 된 일종의 호텔 레스토랑이 보였다
소리가 벽에 막히어 나갈 곳을 못 찿는 듯 벽이 울리는 듯 한 윙윙거림을 느꼈고
그곳에서 간간이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려오고 있던 것이였다
그 음악을 타고오면서 조금씩 여자의 음성이 들려오는데,오는데,,,,
고음 부근에서 들려오는 한 줄 목소리에
나는 그만 숨이 턱,하고 막혀버리면서 온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져 버렸다
뭔가가 몸속을 관통하고 흟어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럴수가,,,,세상에 이럴수가,,,
저건 ,,,,저건,,,, 다름 아닌,,,,, 설마? 설마 샌드라?
샌드라의 목소리가???
한번이 아닌
두 번 세 번이 그러면서 나는 온몸의 신경들이 전류처럼
미친듯이 세포들을 자극해 나가는 걸 느낄수 있었다
더더욱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미국이 아니라 필리핀이었다
1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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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