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야
세상은 치아처럼 고르게 생기지 못했는지
덧니같은 내가 간혹은 어여쁘다고 착각을 하는 날이야
세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여유로움에 촉촉히 흡수가 되었는지
아침엔 그렇게 퍼붓던 비가 흔적도 없어진거야
지난 가을 뜨락은 밤벌레들이 찾아와 노란알 슬어놓듯
알알이 구슬지는 밤이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빈 종이 가득
채워 놓을 수가 있었어
세야
그 옛날 동그라미라고 불러주던 소녀들의 모습이 번져오고
내가 무수히도 많은 시간 속에서 찬미해 온 가을하늘 만큼이나
푸르고 높게만 담아지어 추억이라는 것을
가을열매처럼 익어갈 수가 있었나 봐
단지, 그들이나 난 지금껏 세상 모든 이들을 따뜻이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한 뙈기나 남을 계절에 가난해져
또 다시 아파오는거야
세야
언제나 처럼 그냥 마악 까르르 웃어 넘겨 버리기엔
난 좀 많은 세월 가운데 서 있는거야
그러나 늘 행복과 불행을 아직 내 좁은
가슴으로 나눌 수가 없는 것을 보면
아직 영글고 단맛이 든 열매는 아닌가 봐
세야
겨울은 더 이상 꽃들이 피지않고 새의 지저귐도 없어
추워지는 내 안 가끔씩 외바람이 찾아와
고요한 가슴의 속살을 흔들고 가곤 하지만
그 떨림 속에서 내가 그림자 드리우는 길은
그래도 아직은 길게 내려뜨릴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일인 것만 같애
세야
한번씩 미웁은 세상 다독거리며 살자고 할 때마다
더운피가 모자라는지 외로운 영혼을 달랠 수 있게
오늘은 靈藥을 지으러 가야할 것 같애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과 사랑을 약탕기에 넣고 달여보면 어떨까 해
그러면 감성적 재료들을 달이고 달여
내가 원하는 한 편의 시로 우러 내 놓아 볼려고....
그러나 약효가 있을련지 벌써부터 걱정이거든
세야
이제 모두들 떠나버린 빈 뜨락에
빈 가지들만 가볍게 몸을 뒤척이는 어둠진 내 창문 앞에서
세야, 가만히 부르니 허망한 바람소리만 쉬이쉬이 하잖아
그런데 그 뒤를 꼭 날 닮은 입다문 어둠이 따라가네
나도 얼른 따라가야하니까 다음에.....안녕
2003년 11월 11일
*세야 : 경상도 사투리에서 따온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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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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