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산기슭을 따라 아카시아 향내가 지천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흰 꽃송이가 바람에 말라 노랗게 끝을 말고 바람따라 날리고
꽃창포는 꽃등을 켜듯 아침마다 노란 망울을 열고 있었다.
여중 3년.
열흘전부터 준비한 학급비를 모두 거둬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나랑 두 친구는
연례행사처럼 그날도 가전제품코너와 그릇 파는 가게를 전전하며
다른반보다 더 좋은 선물을 고르기 위해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백화점을 두 군데 거치고도 적은 돈에 맞는 맘에 드는 물건이 없어
길건너에 위치한 신세계 백화점으로 방향을 바꾸었는데
그 때, 우연히 길에서 담임선생님과 마주치게 된것이다.
우리를 발견한 선생님은
제과점에 들러 때 이른 팥빙수와 빵을 주문해 먹게 하시고는
우리에게 모아놓은 돈을 내어놓으라 하시는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정말 엉뚱한...
우리가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구하는일이 아닌...
선생님이 사고자 하셨던 물건들을 함께 사는 일로 시간을 보내야했다.
선생님께 사드리려했던 학급비는 한푼도 못쓴채...
백화점이 아닌 남대문시장에서...
아이들의 양말, 속옷, 싼 인형등등.
그리고 두 벌의 모시메리속옷-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우리에게
사정은 내일 스승의 날에 이야기 하겠노라 하셨다.
다음날...
세명이 각자 시장에서 사서 가지고 갔던 물건들을 도로 들고 등교하였는데
학교에서는 벌써 칠판 가득 그림이 그려지고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 다 되어 준비가 끝날 즈음...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시는 선생님.
그리고 그 뒤를 따르시는 연세드신 두 분.
앞서는것을 극구 사양하시던 두 분의 형색이 초라해보이심에
모두 영문을 몰라 인사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교단에 두 분을 세우시고는
우선 박수를 치고 감사의 꽃을 선생님이 아닌 그 분들께
꼽아 드리라는것이었다.
그리곤 말씀을 이어가셨고...
그 분들이 고아원 원장님 내외분이라는것과
선생님이 고아출신이었다는것, 어제 선생님 돈으로 마련하신
그 선물들이 선생님의 보모이시며 전직 선생님이셨던 원장님께 드릴
또 다른 선물임을...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까지...
선생님이 흘리시는 감사의 눈물을 보며
우리는 그 날, 또 다른 스승의 날을 배우고 있었다.
우리가 걷었던 학급비중 아주 작은 액수를 제외한 (색테잎과 카네이숀을 준비한것을 제외한)
돈은 모두 각자에게 다시 돌려 주라 내어 놓으시며,
앨범 한 권을 꺼내 교재용 슬라이드 판위에 놓고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시더니(선생님의 고아원 생활과 일기...)
두분 고아원 원장님 내외분께
감사의 편지를 읽어 드리는것이었다.
낙엽만 굴러도 웃는다는 우리 여중생들의 눈물 바다 ...
얼마나 울었는지... 다른반 학생들이 모두 교실을 기웃거릴 정도였으니...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스승의 자리에서 당신의 스승을 찾아 ,
몸소 하루를 교육으로 보여주신 분...
자기 의견만큼은 어느 자리에서건 확실하게 표현해야한다며 일년 내내
삼분스피치를 우리반 전체에게 시키셨던 ... 그때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싫었는지...
그래도 시간이 지나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졸업생이 3학년6반에서 네명이나 나왔으니^^
선생님-
태어날때는 모두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만들어 가는 나는 모두 자신의 탓이라 하신 분-
늘, 시간을 게을리 쓰지 말라 하신 분,
감사를 잊지말라 하신 분,
때와 조건이 없이 언제나 지금이 시작이라 하신 분-
선생님의 가르치심만큼
저 또한 스승의 날이 되면
작은 쪽지에 한명 한명 아이들 이름을 채워 넣고는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께서 그리 하신것처럼...
올해도 여전히 촌지는 거부하셨을 ...
작은 선물조차 거부하셨을 선생님을 떠 올리며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골라 봅니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그리하셨듯...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
치자꽃이 좋다 하신 그 말씀 떠 올리며 -
선생님께 여고생이 되어 찾아뵈면서
작은 치자꽃 화분 하나 선생님 교탁에 그 조차도 아니 받으신다 하실까봐
살짝 놓고 온...
아직도 마음만큼은 선생님 가르침으로 늘 ... 설레이던...
오늘은
제가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올립니다.
선생님께서 그 날... 스승의 날 , 그리하신것처럼...
아직도 그리 불러 봅니다. 이 나이되어도... 감사한 마음 가득 담아...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 하얀쟈스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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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