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의 편지>
화사한 꽃들이 안개비를 머금고 단장을 서두르는 5월의 새벽, 항상 먼저 일어나 뽀뽀해 주고 조심스레 출근 준비하던 당신이 이제는 주말 하룻밤을 보내고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아직 당신의 체온이 가시지 않은 침대에 엎드려 허전함을 달래보지만 낯선 곳으로 떠난 당신은 긴 엿새가 지나야 만날 수 있고, 유난히 자상한 당신이 없는 우리 가정은 텅 빈 껍데기 같아요.
여보, 잘 도착하여 아침 식사 챙겨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지요?
16년 동안 잠시도 떨어져 살지 않던 우리가 주말 부부 되어 지나려니 보이지 않던 당신의 그림자가 집안에 가득하고, 아이들이 아빠의 도움을 원할 때 연약한 저는 우리의 맥가이버 당신만을 기다립니다. IMF 사태로 장기 근속하던 안정된 직장에서 밀려나 몇 곳을 옮기며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다른 실직자를 걱정하던 당신, 잠 못 이루는 당신을 보며 무어라 위로하지 못하고, 저는 누군가를 원망하며 오히려 당신께 실망을 끼쳤습니다.
늘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당신, 그럼요 그래야 지요, 당신은 우리 가정 소망의 나무입니다.
이제 40대 나이라고 모두들 외면하니 기막힌 현실이지만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경험을 살려 인정받겠다며 멀리 지방의 일터를 지망하셨습니다.
당신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상한 마음을 다스려 성실히 일한다면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파오며 봉사의 손길로 모범이 된 당신을 누가 외면하겠습니까.
베란다의 화초를 가꾸며 달동네 골목길 가로등처럼 묵묵히 어둠을 밝히며 살아가는 당신, 직장과 가정 그리고 사회봉사, 어느 곳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하는 당신이 황소를 닮았다고 생각해 본답니다.
첫 만남과 이별 그리고 오랜 방황을 통하여 재회한 우리 막내들의 인연, 현숙한 아내가 되고자 노력했지만 철없는 투정으로 갈등이 많으셨지요?
당신의 소박한 꿈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녀자의 욕심을 내세운 저를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 열심히 응원하고 배려하겠으니 우리의 보금자리에 희망과 기쁨을 심어 주십시오.
-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
노천명 님의 시처럼 때가 이르면 이렇게 노래하는 날이 올 것이니 여보, 우리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요,
그럼 건강에 유의하시고
빨랫감은 모아서 가져오세요.
우리 가정의 소중한 당신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2004. 5. 10. 월. 인천에서
당신의 아내 조혜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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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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