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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풀	(작성일 : 2014-07-11 18:17:38, 조회 : 1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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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에 쓰는 편지

음표를 위하여 / 양현근

같이 나눌 슬픔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손시려운 날들
때로 너의 절망과도 악수하게 해다오
당당하게 너의 흙 속으로 저물게 해다오
네가 무심코 남겨둔 음표들은
밤이면 더욱 귀가 길어져서
낡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밤새도록 쿵쿵거리고
가끔은 언 땅을 서성이다가
쩡쩡 울어대는 세상 귀퉁이에서
무표정을 배회하기도 했지
흔들리는 너의 음표 너머
반음내림표가 붙은 나의 초라한 음표들도 떠다니고
거친 삶의 보푸라기들
제 안의 빈집을 찾아 둥둥 떠다니고
알레그로로 시작하여
모데라토 안단테라지
고운 이름 하나 내걸리지 않은 거리에서
속살 찢어내린 꽃잎들
빛살 한 무더리고 후두둑 떨어지고
어쩐다지
그 음표들을 어쩌다지
그늘 짓다가 해 저무는 밤이면

마음에 쓰는 편지 / 양현근

바람이 눕고 비도 비낀 밤
다가설 수 없는 너의 머리맡에
나즈막한 안부를 전해보지만
풀잎처럼 풀잎처럼 흔들리던 이여
투명한 마음의 깃털을 세워
오늘도 해종일 네가 비워 둔 자리 지키고 있는데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을 무렵쯤
네가 게워 놓은 무료함 위로
허리 접힌 욕망의 세포들은
끊임없이 발작하고

내 추운 날의 바람봄이여
차마 가두어지지 않는 노래여
오늘도 낯익은 풍경을 향하여
결 고운 인사 전하고 싶은데
너에게 세 들어 사는 동안
끝내 나는 이를 수 없다
너의 뒷모습에 대롱대롱 매달려
무모하게 젖어버린 영혼을 말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늘 부재중이다

.....

비탈에서 / 양현근

계절 비끼는 비탈에서
부족하기만 하여 죄스러운
꿈 한 자락을 접는다
짧아서 더욱 고운 노래여

부대낌의 숨소리만 가득한 이 땅에서
나 또한 목숨 앓으며 살아가나니
이리저리도 못하는 삶의 기로에
파랗게 돋아만 가는 시린 손금은
모양 지을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뒤돌아보며 웃기에는
삶의 그늘이 조금 우울할지라도
촛불이 꺼지기 전 한참은
그 빛부심으로 기뻐하라

잊고도 못 잊어 뼈앓이로
빈 잠 지새우는
허망한 욕기 그뿐이니
이제 저만치 비켜서려함도
변함 없는 나의 바라봄이었음에
그대

그립다는 것 / 양현근

생존을 위하여
그리고 때로 은밀한 호기심을 위하여
너의 생은 그리 분주했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전신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단단한 속울음이여
습관들이여

축제는 끝나고
숲으로 가는 길은 아직 기다림일 것이므로
더 이상 바람도 불지 않고

불지르면 휠휠 타오를 생각들
이대로 주저앉아 그리움이나 한 바구니
따 담을까 싶다

강둑을 지날수록
후줄근해질 못숨을 위하여
종일토록
너를 돋아도 좋을까 싶다

너, 그리운 / 양현근

때로 너는 너무 맑고
너무 빛부신 이름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바람소리에도
너의 체취 스민 듯 하여
귀 기울이는 세월
언제나 너는 내 부름이었고 목마름이었다
해가림도 바람막이도 없는
이 황량한 결핍 위에서
너의 그림자에 한 발을 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유혹인지
너는 정녕 알지 못하리라
오늘도 빛바랜 세월 몇 장을 꺼내들고
좋아하는 무늬로만
온 세상을 새기고 싶어
온 천지를 채우고 싶어
저문 햇살 속으로 팔을 뻗는다
시간의 그물을 뒤져 너를 소묘한다
그러나 나의 그리움이 지독할수록
너는 늘 부재중이고
나의 노래가 오래 머물수록
너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너는 너무 길다
너에게 끝내 배달할 수 없다
단단하지 못한 속내로 끝내
나는 단지 슬픔 몇 장만을 살 수 있었다
산다는 것은 늘 그러한 것이다
희미해진 여러 갈래 길에서
가질수록 가벼워지는 것이다

길 떠나고 싶은 날의 노래 / 양현근

습관처럼 불려와 쌓이던
허름한 생각들이
파란 물빛으로 걸리던 날
서로의 시린 어깨를 껴안고
강변을 뒤척이던 춘삼월의 젊은 햇살이
황급히 푸르다

말하지 않아도
겨울강은 제 스스로 욕심을 비울 줄 안다
버리고 나서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마음으로 더듬는 단단한 이별
눈부시다
강둑은 언제나 새로운 추억으로
눈이 부시다

한때 우리가 기라림이라 이름하던 길은
갈수록 아득하고
멀리 갈수록 깊레 흐르는 물살
오래 머물지 않아도
세상을 향한 다순 마음은 식지 않는다
사람들이 버린 생각들을 만지락거리며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제 마음 안에 단단한 길을 낸다

문득, 강물이여
강바닥의 기억에 젖지 마라
남은 세월에 섬을 만들지 마라
때로 돌날에 베인 상처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욱신거리겠지만
아직 비워야 할 강심은 넉넉하고
흐른다는 건
끊임없이 자신을 출렁이는 일이란다
때로는 어둠마저 껴안는 것이란다

너에게 / 양현근

너를 기다리는 동안
입술이 부르트도록
나는 같은 목소리로만 중얼거린다

한소리쯤 던져두면
그것이 나의 짙푸른 사랑이라는 걸
절망 깊은 날이면
알 수 있을까

너를 잊지 않기 위하여
약한 시력에 걸리던 영혼의 무게
두 눈이 짓무르도록
나는 너를 닮아간다

문밖에서 서성이는
분별 없는
생.각.들

감당할 수 없는 거리에 너는 서 있다

-- 양현근시인의 시집 <안부가 그리운 날>중에서---

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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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노래 / 양현근

우리는 너룰 기꺼이 사랑이라 부른다
가슴이랑까지 들어찬
풋풋한 노래와
단단한 뿌리내림으로 아름다운 하늘
그 뜨거움으로
살아 있었구나, 진정 살아 있었구나
그리하여 면벽의 시간들
지친 햇살들이 마음 놓고 꺾어 쉴 수 있는
나무가 되어
넉넉한 숲이 되어
저리도 가슴 따뜻한 온기와
오래 변하지 않을 풍경들을 구워내고 있구나
세상으로 내려가는 길이 어두울수록
든든한 믿음 하나로
오래 변하지 않을 말씀의 잎맥과 실뿌리와
오래 싱싱한 부름켜를 세워
다박솔 향기 무성하도록, 너른 가지 휘도록
한량없이 피워내는 초록빛 희망들
저리 속마음을 풀어내고 있구나
발뒤꿈치 높이 들고
새벽을 부르는 단단한 외침들
숲이라 부른다
결 좋은 사랑이라 이름한다
떨리는 몸짓으로
그 숲에서 노래하리라
오랫동안 너의 이름을 부르리라
그리하여, 오래 참아둔
저 웃음소리마저 짙푸르도록
단단한 사랑이여

-- 양현근시인의 시집 <안부가 그리운 날>중에서---

2014-07-11

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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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근거 / 이경미

그해 여름,
꽃무늬 비닐장판 같은 게 인생에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밤 열두시 십분의 택시기사는 차를 마시자며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 만날 확률이 7만 5천 분의
1, 이라고
어디 근거인지 모르겠으나,

75만 분의 1인 사랑도 매일 그냥
스쳐간답니다.
(정육점 빛깔의 6월 장미들 면장갑 낀 손으로 매일 가슴 부의를 손질하고
나도 더러 누군가를 손질하지만 통증의 근거 또한 아직 알 수 없답니다)

태양과 나와 장미와 택시와 면장갑 들이
매일 서로 다른 확률의 근거를 호소하던 날들
달팽이 무늬의 낙엽들 몇번쯤 지나면 비닐꽃무늬도 잦아들겠으나
택시가 또다른 여자에게 건넨 확률은 99퍼센트
어떤 여자가 그에 응할 확률은

모르겠으되,

7천 5밴만 분의 1로 마주쳐도
스치고 마는 눈빛도 있답니다
(우리가 만난 건 어쩌면 0퍼센트의 확률 덕분!)
어디에도 무엇에도 아직 아무 근거도
모른다 합니다 늘 지독한 비닐꽃무늬의 여름들이라 합니다

-- 이경미시인의 시집<고통을 달래는 순서> 중에서 ---

201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