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6月 27日
오전, 커피 교육할 때도 오후 청도에 다녀올 때도 저녁도 꽤 맑았다.
여태껏 커피 문화 강좌를 가졌었지만, 오늘처럼 많이 오고 오늘처럼 접수한 일은 없지 싶다. 꽤 많은 고객이 오셔 아직도 커피는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커피는 고종황제께서 마신 이후 줄곧 유행이 아니었던 시기가 없었으며 많은 사람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본 점장 성택군이 실습을 도왔지만, 오 선생도 함께 교육에 동참해야 했다.
아침 잠깐 기세춘 선생께서 쓰신 ‘논의강의’를 읽었다. 사마천이 쓴 ‘사기’ 열전 편에 ‘백이와 숙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사람이다. 고죽국은 은나라의 제후국이다. 그러니까 은나라 탕왕 때 묵태씨에 분봉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고죽국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뿌리임을 여러 장서를 빌려 조심스럽게 쓰고 있다. 오늘 고죽국의 위치와 백이와 숙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을 알 게 되었다. 참고로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를 멸했던 주나라의 녹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 뜯어 먹으며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려 말 때 충신 정몽주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약 삼천 년 전의 사람이다.
옛사람도 의리와 충절을 지켰다. 요즘 사람은 이러한 의리와 충절을 지킬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사업도 마찬가지다. 나는 커피에 관해서 수많은 사람을 교육했고 수많은 사람에게 창업으로 도움을 드렸으며 그 수많은 사람과 거래를 했다. 아마 이 많은 사람과 아직도 거래하고 있다면 아마 더 유복했을지도 모른다. 시장은 완전경쟁이며 물은 항상 얕은 곳을 지향한다. 의리와 충절은 경제원리와는 다른 이야기다. 어쩌면 그 경제원리와 상통하는 말은 아니나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처지는 같아서 시장을 안정으로 이끌고 싶은 마음을 두고 있다. 백이와 숙제는 어리석은 사람인가! 아니면 현명한 사람인가! 세상과 타협을 원하는가! 아니면 의리와 충절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커피로 보면 나는 의리와 충절로 18년의 삶을 살았다. 한 번도 배반한 적 없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맹신하며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전도사로서 삶을 살았다. 그런 커피는 늘 묵묵부답이었으나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은 나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해 주었다. 언제나 함께 한 친구였으며 나의 생활에 곳곳 영향을 안 끼친 곳이 없어 두루두루 미치는 것이 커피였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할 것이다. 내게 남은 생애가 있다면 마저 의리와 충절로 보낼 것이라 다부지게 마음 놓는다.
오후 청도에 다녀왔다. 강 선생께서 교육한 교육생이다. 청도 동곡이다. 가게는 약 열 평 좀 안 돼 보였으며 한창 내부공사 중이었다. 안에 기계 설치하는 데 이상은 없는지 점검 차 가게 되었다. 이 동네에 왔을 때 특이한 것은 다방이 아주 많았다. 커피 배달하는 오토바이도 보았는데 가게 개업할 장소 바로 옆은 오토바이 수리 집이다. 건물 주인장께서 운영한다고 했으며 주인집은 이 층이다. 가게를 처음 본 느낌은 아담했다. 동곡 지역에서는 번화가며 커피 전문점은 이 집이 가장 처음이 된다. 여기서 가까운 커피 전문점을 찾으려면 아마 산서지역으로 나가거나 운문댐 지나 운문사 앞에 나가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곳 모두 이곳에서 약 이삼십 분 거리다. 그러니까 꽤 먼 거리가 된다. 이곳 주인장께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누고 우리는(오 선생과 함께 갔다.) 운문사로 향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가비 사장님께 인사도 드려야 하겠기에 길 나섰다.
운문사 앞에 자리한 가비는 12년 가을에 개업한 집이다. 그러니까 횟수로는 벌써 4년이며 만 2년의 역사를 가지게 됐다. 가비 배 선생께서는 동곡에 커피 집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조금은 긴장하고 있는 듯했다. 그쪽과 이쪽은 시장이 다르며 거리도 꽤 멀지만 영업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나 보다. 그러니까 쓰는 커피에 예전과 달리 민감함을 가졌고 약간은 정보를 감추고 싶은 심정도 없지는 않아 보였다. 우리는 가게에서 커피 한잔 청해 마셨다. 가비는 운문사에서는 가정 먼저 개업한 카페다. 이곳도 이제는 눈으로 확인한 카페만 벌써 네 곳이나 된다. 상가라고 해봐야 몇 집 되지 않지만, 커피 집으로 보면 다소 많아 보인다. 커피는 곧 상생이자 경쟁이자 저절로 마케팅이 되었으며 저절로 시장 균형으로 치닫게 되었다. 가비 배 선생께서는 이에 아주 민감한 반응으로 하루 영업에 임한다. 이는 또 새로운 상품 개발과 상표 이미지 구축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라 나에게도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하며 나 또한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가비는 커피를 많이 쓰는 업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비라는 상호를 생각하면 고종황제가 생각나게 하는 단어다. 김탁환 선생께서 쓰신 ‘노서아 가비’라는 소설이 있다. 이때 노서아라는 말은 러시아라는 뜻이 있다. 책이 비교적 얇아서 읽고자 마음먹으면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가비는 커피다. 이 소설로 2012년에 개봉한 영화도 있다. 조선 최소의 바리스타 따냐, 배우 김소연 씨의 연기도 볼 만하다. 대한제국의 1대 황제, 고종과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의 안위에 커피로 둘러싼 음모는 역시 볼 만한 영화다. 가비는 의미도 있으며 알게 모르게 역사를 이야기한다. 청도 운문의 가비는 아주 작은 카페지만 결코 작은 카페가 아니다.
가비는 청도 운문지역에서도 차로 들어가면 가장 첫 집이다. 약 100여 평 되는 땅을 임대받았다. 초기투자금액이 적어 내부는 컨테이너 집으로 꾸몄다. 지금은 컨테이너 같은 분위기는 없다. 그냥 아담한 집으로 보인다. 마당은 잔디를 깔아 포근한 새끼 곰 같은 느낌이다. 이 마당에 파라솔이 펼쳐져 있어 주위 어느 카페보다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많은 손님이 앉았다. 입구에 세운 로고 간판은 뚜렷하면서도 옛체의 변형체(가비라는 글자)로 굵고 아름답다. 카페라는 영문은 프랑스어로 'f' 하나로 쓴다. 그러니까 cafe다. 로고 또한 볼수록 딱딱하지 않아 많은 사람에게 이목을 끌게 한다. 약간은 추상적이면서도 그렇지도 않아 향기가 마치 하늘로 날아가다가 글자를 그리며 멈춘 형태를 자아내게 한다.
운문사 앞은 토지공사에서 개발한 땅으로 알고 있다. 이곳 땅은 자리가 좋은 곳은 평당 200으로 호가한다. 그러니까 100평이면 이 억이다. 커피를 장기적으로 한다고 했을 때는 땅을 사는 것도 맞지 싶으나 실은 1년도 장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라 미래는 여실히 불안요소가 많다. 이 불안요소가 실질적으로 땅을 가진 자와 땅을 얻는 자의 미묘한 감정으로 땅값을 형성한다. 땅은 없는 것 같아도 아주 많다. 그리고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이곳 지구 위 땅덩어리에 임대로 살다가 간다. 이용은 누가 오랫동안 갖고 있느냐다. 이것은 실질적인 소유자가 되며 소유는 목적이 있어야 하며 효용가치가 있어야 한다. 땅은 있어도 이용할 가치나 목적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땅은 나의 소유로 한다고 해도 대가지급은 반드시 발생한다. 그러므로 나는 카페조감도 자리가 나의 땅이 아니라서 투자에 고민이 있었거나 하지는 않았다. 투자심리는 안정을 바탕으로 유발된다. 그러니까 문중에서 보장한 만큼 나의 마음이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땅이 아니라서 그렇고 문중의 총체적 사업의 목적으로 이곳 상가는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가비를 이야기하다가 사족이 길었다. 다만, 투자와 카페에 관점으로 본 나의 시각을 일부 적은 셈이다.
오후, 9시 압량 마감했다. 동원이와 케냐를 한 잔 마셨다.
단지 53
하얀갓같은뚜껑이오랫동안누른다. 안은케냐가이국적향기로내뼈를깎는다. 어떤형태도없는파도가아무런뜻도없는왕국처럼두꺼운뚜껑에폭담았다. 보이지않는빨대만길다. 나는아무런예고도없이앞만보며간다. 도로바닥에아무렇지도않게싸놓은개똥같았다. 어느동태도어느발자국도겁나지않은나는필봉의고죽국이다. 아무런영양가없는고사리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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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