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1月 26日
사동, 희뿌연 안갯속이다. 흐릿한 하늘 본다. 밤새 비가 내렸다. 시멘트 포장한 마당이 촉촉이 젖었다. 문 열어놓고 생각에 잠겼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 마당을 거닐며 생각했다. 어제 다녀갔던 역 점장의 얘기와 세무서 직원과의 대화를 생각했다. 그래 경제가 어려우면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아직 대출 여유 자금이 그래도 조금 남아 있지 않은가! 부도 난 상황도 아니며 그렇다고 크나큰 적자 보아가며 운영하는 것도 아니잖은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
배 선생과 예지가 출근했다. 예지는 에스프레소 기계 준비작업 한다. 스팀기 틀며 조였다가 물도 한 번 내렸다가 한다. 배 선생께서는 영업장 청소를 한다. 배 선생께서 청소 시작할 때 함께 청소했다. 1층 바닥을 쓸고 닦는다. 이제는 추위가 다 지나갔으면 했다. 밀대로 바닥 닦는다. 대목 타지 않는 영업이었으면 좋겠다. 밀대로 바닥 닦는다. 빚이 많으면 얼마나 많아! 그래 조금씩 갚을 수 있는 매출이면은 얼마나 좋아! 밀대로 바닥 닦는다. 아이가 건강하게 학교 다니며 충분히 공부하게끔 학비만이라도......., 밀대로 바닥 닦는다. 모두 욕심이다.
본점에 들렀다. 실습 받으시는 이 씨가 오셨으며 전에 함께 일했던 인열이가 와 있었다. 인열이는 커피 그만두고 밀양에서 수입 과자를 다룬다. 한 번씩 커피가 필요하거나 옛 생각이 그리울 때면 찾아오는가보다. 실습 받으시는 이 씨의 말이다. 봉급자로서 한 달 사는 이야기다. 마이너스 통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번에 대기업 다니던 친구가 가게 왔을 때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인 가족 혼자 벌어서는 살 수 없다고 했는데 똑같은 말을 했다. 우리나라 중산층 가정이 빠듯한 생활에 아니 자금 달리는 가게경영을 한다.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커피 집을 여유로 다닐 수 있을까!
마침 점심때라서 강 선생께서 준비해 온 식사를 다 같이 먹었다. 점심 잘 거르는 나로서는 감사할 일이다. 고마웠다.
점심 먹을 때 일이다. 이 씨께서 한마디 했다. 제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집에는 제사를 지내지는 않지만, 명절 때면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한다고 했다. 강 선생께서도 제사 지낼 때면 음식을 정성스럽게 장만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결코 시장에서 음식 사서 지내지는 않는다고 했다. 없으면 없는 데로 지내지 사지는 않는다고 했다. 가슴이 뜨끔거렸다. 예전, 어릴 적 아버지 제사 지내는 모습이 떠오르고 그전에 음식 장만했던 생각이 났다. 결혼 초에는 그래도 정성스럽게 음식을 장만했으나 언제부턴가 소홀하게 되었다. 재작년에는 생활이 바쁘니 음식 사서 지내다가 작년에는 과일 몇 개, 탕과 물만 떠놓고 지냈다. 설 다가오니, 말이 나왔다.
아무래도 나는 죽어서도 대우받기는 어렵게 되었다.
서 부장 배송 일 잠깐 들여다보았다. 시내 모 병원과 카페 무봐라와 정평, 사동에 다녀와야 했다. 진량은 직접 다녀왔다. 진량 점장께서 계시어 커피 한잔 청해 마셨다. 케냐 드립이었다. 볶음 정도가 조금 강한 듯 맛은 부드러웠으나 뒷맛은 메케하다. 본점 영업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난주 목요일이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 꽉 찼었는데 그때는 일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일주일 영업하면 이렇게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는 경우가 몇 번은 있어야 한다.
조감도에 잠깐 들렀다. 배 선생께서 와플을 구워내고 있었는데 어찌나 노르스름한지 맛나 보였다. 싱긋이 미소하시며 인사한다. 사람은 일 할 때가 가장 즐거운 법이다.
병원 분점에 다녀왔다. 제과제빵에 관해서 알아보기 위해 들렀지만, 점장님께서는 계시지 않았다. 이제 갓 결혼한 점장님의 따님 모 씨께서 있었는데 에스프레소 한잔 청해 마셨다. 제빵에 관해 친절히 답해주어 고마웠다. 역 점장께서 며칠 전에 다녀갔다고 했다.
압량에 머물 때였다. 며칠 전부터 옛 부산점장으로 계셨던 오 씨께서 오시어 보아주고 있다. 그간 몇 주 동안 서 부장과 함께 본 가게였다. 청소한다고 해도 그리 깨끗하지 않았는데 오 씨께서 오시고부터는 가게가 한결 나아졌다. 오늘 오 씨가 사가져 온 아주 조그마한 라디오가 있다. 너무 작아서 이리저리 만져보고 튼다. 가게에 앉아 라디오 들으니 그것도 새롭다.
정오쯤이었는데 서 부장이 문자가 왔다. 본부장님 아주머니* 오시면 본부로 걸어갈까요? 아주머니란 말에 혼자 웃었다. 거래처에 다니면 아주머니라는 말을 나는 잘 쓰지 않는다. 거저 사장님이나 사모님으로 호칭하지만 서 부장은 그것이 더 불편하다. 순우리말로 이 아주머니라는 말은 오히려 존칭에 가까운데 말이다.
주문한 책이 오지 않았다. 배송날짜로 보면 오늘 와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사마천의 ‘사기’를 평한 책 두 권과 ‘명심보감’을 주문했다.
*각주]
논어, 공자, 김원중 옮김 216~217p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거라.”
중궁이 인(仁)에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을 나서면 귀중한 손님을 뵙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이(신중히) 하여라.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경대부의 집에서 원망하는 사람이 없고, (대신들의) 집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鵲巢 曰 공자는 예에 관해서 이렇게 중시 여겼다. 세상이 공자시대 때 비하면 초스피드 시대다. 세상 더욱 좁아졌다. 이 좁은 공간에 총알처럼 가는 시간이라지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하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노자는 무위자연에 도를 이야기했지만, 옛 성인의 지혜에 따를 수 없는 현대인으로서 다만 정신만은 여유를 가져야겠다.
鵲巢 曰 아주머니는 나보다 손윗사람의 아내나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존칭하는 말로 쓴다. 어원은 아자미다. 자는 ㅈ 자 밑에 아래 아(.)로 한다. 1447년 용비어천가에 처음 사용되었으며 앚+어미의 합성어로 보인다. 그러니까 웃 어미로서 나보다는 높은 사람임은 틀림없다.
鵲巢李鎬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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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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