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2月 05日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가까운 바다를 바라보며 있는 것 같았다. 파도소리 같은 어딘가 흘러나오는 이국적 음악에(Don't give up, Don't give up,) 심취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푸른 바닷물 같은 커피에 폭 빠져 있는 것인가! 사동, 언덕에 서서 곧 있으면 개학하는 학교를 바라보며 박쥐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니까 박쥐같은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박쥐는 초음파 동물이다. 초음파란 공기 진동이다. 소리는 공기 진동으로 인해 우리가 들을 수 있다. 인간은 1초에 20~2만회의 진동수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만약 2만회 이상의 진동수라면 인간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소리의 범위를 초음파라고 한다. 박쥐는 초음파로 사물을 분간한다.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사물의 형태를 잡는다. 시인 김광균 선생께서 ‘어느 먼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 했던 그 눈마저 박쥐는 읽어 낸다. 흐릿한 날씨에 눈 내릴 것만 같았다. 마치 박쥐가 내 몸 구석구석 훑고 지나듯 모닝커피 한잔 마셨다. 좁은 관로를 뚫고 들어가 까맣기만 한 우주에 요소마다 곳곳 빛을 발하며 박쥐는 난다. 이미 몸 속 깊이 들어간 박쥐는 새로운 우주에 새로운 행성에 정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본 세상은 박쥐가 한 꺼풀 벗겨낸 우주다. 세상 거꾸로 매달려 있는 기분, 커피 한 잔 마시며 저 아래 바라본다.
정오, 커피 볶았다. 케냐, 예가체프, 블루마운틴 볶았다. 압량에 쓸 커피가 없어 볶는다. 나는 이 세 종류 커피 중 단연 케냐를 가장 선호한다. 산미가 가장 뚜렷하며 질감이 다른 어떤 커피보다 앞선다. 산미란 커피에 들어가 있는 산의 함량을 말한다. 산미가 뚜렷하다고 해서 많은 것은 아니다. 너무 많으면 신맛만 나기 때문이다. 물론 로스팅 포인트 따라 신맛을 더 낼 수도 있고 덜 낼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커피 속성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신맛은 ‘톡 쏘는 어떤 맛이 나면서 산뜻한 신맛’을 얘기한다. 케냐는 그것이 확연히 표현될 정도다. 질감이란 커피의 밀도라고 보면 좋은데 커피 마실 때 느끼는 촉감이나 점도로 얘기하면 될까! 뭐 나는 커피를 분간하는 ‘커핑cupping 업자가 아니다 보니까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곤란하다. 아무튼, 많이 볶으면 그 질감이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커피 표면에 묻어나오는 기름기가 많기 때문인데 이는 커피 단백질이라 입안 머금는 순간 약간 묵직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깔끔한 맛을 원한다면 너무 볶으면 좋지 않다. 예가체프는 향이 독특해서 좋다. 이것저것 다 따져보아도 블루마운틴(여기서 말하는 블루마운틴은 자메이카 산 아니라, 마라와카 산이다.)은 특별한 맛보기에는 앞의 두 커피에 비해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커피가 비싸게 팔리는 것은 아무래도 생두의 이름값도 한몫 하는 게 아니겠는가! 진짜 블루마운틴(자메이카산)은 거의 금값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케냐, 예가체프, 블루마운틴 커피를 볶았다.
압량, 커피 판매액은 극히 작다. 그러나 심상치 않다. 띄엄띄엄 오시는 손님 있다. 정신없이 책 읽다가도 무거운 녹색 문 밀고 들어오시는 손님 대하면 깜짝 놀란다. 모두 아메리카노다. 덩치 제법 된다. 어떤 남자 손님이었다. 얼굴로 보아서는 나보다는 조금 젊어 보이는 것 같았는데 포타필터에 분쇄한 커피를 담고 탬핑을 했다. 앞에 선 손님께서 한마디 한다. ‘탬핑 갖고 노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다. 그래서 싱긋이 웃었다. 한마디 했다. ‘커피 하셨는가 봅니다.’ 했더니 ‘네 한 오 년 했지요. 만만치 않아요.’ 한다. 그래서 한마디 더 붙였다. 호! 한 오 년 하셨으면 오래 하신 겁니다. 다들 한 이 년쯤 하면 적당히 다른 길 가지요. 했다. 손님 다음에 자주 오십시오. 했다. 그러니까 다른 어느 곳 들러보아도 이곳만 한 커피 없습디다. 한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 했다. 물론 가격도 그렇거니와 가격대비 이렇게 싼 커피를 맛볼 수 있는데 있을까! 아무튼, 손님께서는 커피 한잔 마시며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 길 나선다.
맞아, 한 오 년 하면 오래 하신 거다. 이 년 정도 하면 다른 길 나서지만, 요즘은 마땅히 다른 길 간다는 것도 막연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할 일이 없다. 오 년 동안 수양을 한 거다. 마치 깊은 산에 들어가 도 닦듯이 인간의 오만상 그려보며 그 함수관계를 떠올리며 그리고 나를 조명했을 것이다. 카페인의 힘은 아까도 박쥐를 들어 이야기했듯이 우주 만물을 보듯 무한하다. 공중부양은 아니지만, 공중부양하듯 구석기시대에 있는 것은 아니나 돌도끼를 들고 있듯 프랑스 대혁명의 군중은 아니나 그 군중을 모는 것이 이 카페인이다. 아! 대구대 이 선생 오셨다. 저쪽 카페 조감도 다녀오시었다고 인사 주신다. 근데, 오늘은 바쁘신가 보다. 볶은 원두 몇 봉 달라고 하신다. 나는 정신없이 몇 봉 죽 담았다. 따끈한 커피도 한 잔씩 드렸다. 함께 오신 선생도 계시었다. 물론 글 쓰시는 분이고, 글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시는 분이라 남달랐다. 여 선생이었다. 다음에 또 오시어 인사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음을 전했다. 홀더 꽉 끼워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커피 한잔 하자고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가 아니라 내 마음에 담은 나와 그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그러니까 여유, 진정한 여유를 갖고 카페에 앉아 그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 놓고 정말 쉽게 식지 않은 상태로 마냥 오 분을 앉아 천천히 마실 수 있는 여유, 마치 다섯 시간 앉은 느낌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며 나를 생각해 보는 것 말이다. 우리는 점점 식어 들어가는 열정으로 나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진정한 나를 속이는 것 말이다. 다시 뜨거워지고 싶다. 머그잔에 오래 담을 수 있는 까만 커피 한잔으로 영원히 식지 않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와 닿은 깊은 사랑으로 머물고 싶다.
여보시오! 그 참 그냥 읽지 마시고 전화해 주소! 커피 한잔 합시다. 본부장님 요즘 많이 외로움 타시는가 본데 인생 뭐 별것 없소! 한잔하면 또 새카맣게 떠오를 것이오.
鵲巢李鎬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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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