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2月 15日
흐렸다. 저녁 한차례 비 내렸다.
아내의 몸이 심상치 않았다. 목이 유난히 약한 아내다. 말을 할 때면 목이 부어 가늘면서도 흐릿한 목소리다. 지난 밤새 한 심도 제대로 잠을 못 이루었다고 했다. 사람이 아파서 저리 누워 있는데 마음이 꽤 아팠다. 누구보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 아닌가! 왜 우리는 이렇게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침을 같이 먹자고 하니 몸이 아파서 일어나지를 못해 방바닥에 쭈그려 누워 뜬 눈으로 있었다. 나는 아래 아내가 사온 어제 한 번 해먹고는 남은 오징어와 돼지고기를 끄집어내 프라이팬에다가 넣고 볶는다. 침대 받침대도 없는 다 찌그러진 침대에 자는 아들 둘을 깨웠다. ‘야, 전부 일어나거라. 밥 먹고 자든지. 어여 일어나서 밥 먹어’ 오삼불고기를 식탁에 올려놓고 아이들과 아침을 먹었다.
패널 집, 이 집을 짓고 10년이 넘도록 이곳에서만 살았다. 이제는 이 집도 노후가 되는지 이 층 오르는 계단이 어디서 흘러들어오는 물인지는 모르나 물기가 보인다. 비 오는 날이면 소리는 고사하고 빗물이 새들어오기도 하는 집이다.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빗물이 욕실에서 새는가 봐!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욕실에 새니?’ 그러며 그냥 내버려두었다. 집을 직접 지었기 때문에 패널 구조를 알고 있었어.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이래가지고 우리 한 십 년 여기서 더 살 수 있을까! 패널 집의 장점은 냉난방만큼은 어느 집보다 낫다. 하지만 화재는 맥없이 약하다. 그래서 몇 년 전에는 화재보험에 들어놓기도 했다. 하기야 이 보험도 우스운 것이다. 불나면 모두 타 죽는 건 한순간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모든 것이 안전한 곳이란 어느 곳도 없다. 사업체며 집이며 아이들 건강과 아내의 건강도 정작 병원 한번 안 가는 나까지 무사안일이다. 무사안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 빠듯한 시간에 쫓기는 삶에 시간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이었다. 둘째가 자기 옷을 옷장에서 끄집어내고 장을 닫으려니 닫히지 않았다. ‘아빠 이것 좀 닫아주세요.’ 음! 하며 옷장에 다가가서 닫으려니 정말 닫히지 않는다. 어딘가 분명 걸렸다. 다시 힘주어 들어가지 않는 장을 당기며 넣고, 밀며 당기며 꼼짝하지 않는다. 억지 힘썼어, 당기니 장 밑바닥이 그만 쑥 둘러 빠졌다. 그러니까 세 번째 장이었는데 네 번째 장 서랍과는 뻥 뚫려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옷장이 한 단이 줄어든 셈이다. 결혼할 때 애 엄마가 사가져 온 경대 달린 옷장이었다. 이제는 닫으면 완벽하게 닫히지 않으며 한 단은 없어졌으니 보기에도 꽤 거슬리게 되었다. 이건 집이 아니라 한마디로 우리다. 잠만 자는 곳, 하지만 이 집이 그래도 편하다. 오늘은 몇 시간 집에서 쉬기도 했다.
사동에 잠깐 들렀다가 영업사항을 지켜보고 곧장 본점에 들렀다. 본점에 잠시 앉아 있었다만, 주문 문자 받았다. 휴일이지만 마침 점장께서 계실 것 같아 짐 꾸려 간다. 주문하신 커피를 내려놓고 잠시 앉았다. 점장님께서 사과 하나 깎아 내오신다. 이곳 점장은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점포가 하나 더 있다. 점장님은 정말 알뜰하시다. 이곳저곳 살림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두고 삶을 알뜰하게 계획하며 이끌어 오셨다. 그러니까 노후대책도 다 해놓았다. 나이 63세가 넘으면 웬만한 대기업 다니는 봉급자보다 나을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벌써 20년도 더 된 미리 계획한 삶이었다. 그만큼 열심히 사신 거다. 같은 체인점이라도 다 같은 체인점은 아니다. 이렇게 삶을 열심히 이끌며 알차게 꾸려나가시는 분 있으니 나까지 마음이 뿌듯하다. 결재도 한 번도 미루어 주신 적 없다. 어느 집은 매출 올라도 결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느 집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불만 가득한 집도 있다. 점장님께서 노후대책에 관한 이야기 해주셨는데 듣고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았다. 아직은 일 더할 수 있으니 열심히 하시겠다는 의욕도 들었다. 나의 일을 남에게 맡기려니 요즘은 인건비가 만만치 않아요 하신다. 그러니까 시간당 육천 원 지급*해도 일 제대로 못 한다는 거다. 조금만 힘들면 나가니 커피를 가르쳐놓아도 시간과 돈 낭비예요 하며 한 말씀 주신다. 업소마다 사람 구하기 힘들며 바리스타를 구하고 나면 일이 주인장 마음 맞게 썩 잘하는 분 만나기도 힘 드는 세상이다.
달이 바뀌고 보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결재하지 않은 분점이 몇 개나 된다. 그나마, 영업이 잘 되는 곳이다. 오히려 매출이 부진한 곳이거나 힘들다 싶은 곳은 결재가 더 잘 된다. 정말 미안할 정도로 입금한다.
압량 마감보고 사동에 간다. 온종일 손님 없는 카페 지키느라 애썼던 서 부장, 얼마나 힘들었을까! 시간당 한사람이라도 들리면 그나마 괜찮은 카페다. 하루 있어도 손님 영 없으니 독방이 따로 없는 카페다. 그나마 성격이 다소 내성적이라 있지, 외향적인 사람은 여기는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있지 못할 곳이다. ‘용준아? 오늘 별일 있었니?’, 그러니까 ‘없는데요.’ 시무룩한 답변과 묵묵부답으로 있었다. 커피 한잔 내려 보시게? 따끈한 커피 한잔 내려주고 퇴근했다.
사동, 정의는 이곳에 막내다. 마감보고 퇴근할 때였다. 미나리 사 가져 왔다며 한 단을 주는 거다. ‘벌써 미나리가 나오나?’, ‘네, 본부장님 한 단 드세요.’, 모두 한 단씩 돌렸어요. 한다. 아주 어릴 때는 미나리를 못 먹었다. 없어 못 먹은 것이 아니라 향이 너무 독특해서 먹지를 못했다. 어머님은 늘 도랑가에 돌미나리를 뜯어 오셨다. 먹을 것이라곤 도랑에 핀 흔한 미나리와 논두렁에 핀 돌나물이었다. 그때는 왜 그리 먹기 싫었던지! 지금은 오히려 없어 못 먹는다. 나이 드니 옛것이, 뿌리가, 이파리가 좋다. 매우 고마웠다.
각주]
* 최저임금제가 5,580원이다. 2014년도에 비하면 7.1%가 상승했다. 지금 대구 경기로 보면 임금을 받지 못한 체불임금자도 꽤 되는 거로 알고 있다. 정부의 태도는 최저임금제를 높여 소비를 더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바 있다. 소비가 위축된 시장에 얼마나 큰 효력을 발휘할지는 모르겠지만,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용자 측도 부담 가는 금액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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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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