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2月 13日
둘째 졸업식 있었다. 사동에서 약 십오 분 거리에 학교가 있다. 월드컵대로 따라가면 경산시와 가장 가까운 수성구 신매동에 학교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각 반에서 졸업식을 거행한다. 졸업하는 학생을 위한 교장님의 말씀도 교육감의 말씀도 각 반에서 TV 모니터로 시청하며 듣는다. 학부모는 교실 뒤쪽에 서 있든가 아니면 복도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담은 짤막한 동영상과 반주 음악을 보았는데 졸업 분위기를 더 느꼈다. 둘째에게 사탕과 초콜릿 꽂은 꽃다발을 선물했다. 여기서 가까운 롯데리아에서 햄버거와 콜라와 감자튀김으로 점심 먹었다. 정오가 조금 안 되었지만, 롯데리아 영업장 안에는 우리 가족 넷뿐이었다.
가을처럼 맑은 날 이월 졸업에
일제히 떠나가는 아이 친구들
다시 못 볼 것 같아 다시 또 보고
모여서 놀고 싶어 보채는 아이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정원을 가꾸고 싶어 한다. 볼테르의 선언도 있다.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카페를 만들고 메뉴를 정하며 정한 메뉴를 만드는 것도 시중드는 것도 어쩌면 나의 정원 가꾸는 것이다. 단지 안에는 정원이 있고 또 다른 정원이 있다. 모든 정원은 보살핌이 필요하다.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꽃나무 자라는 것을 보며 가지치기며 거름을 주기도 한다. 본부 앞에는 아내가 만든 작은 정원이 있다. 이름하여 ‘시크릿 가든’이라 팻말까지 써서 꽂아 두었는데 처음에는 꽤 관리했었다. 꽃씨를 심고 싹이 트며 꽃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평도 안 되는 정원이 깔끔하고 보기 좋았다. 카페 일이 많아지고 집에 아이가 커가니 몇 해가 지나서는 여기가 정원이라는 것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돌과 흙뿐이지만 가끔은 지나는 사람들이 마시고 버린 자판기 컵이 여남은 개 던져져 있거나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대학생 몇 명이 꽃나무 심는 운동이라며 꽃나무 몇 송이 심어주고 가기도 했다. 꽃을 한 며칠 볼 수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아주 작은 정원이지만 관리가 필요하다. 카페는 아주 큰 정원이다. 많은 사람이 와서 보고 가는 정원이다. 생두를 볶을 수 있는 로스터기며 카페 장이 이미 보았던 책이며 바리스타가 활동하는 주방과 주방의 장에 꽂아 둔 모든 커피 기구들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자리에 앉아 들을 수 있는 음악과 분위기는 한마디로 정원의 꽃인 거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말한 정원학교나 다름없다.
오후, 정원에서 커피 볶았다.
빙글빙글 도는 콩 돌아도 거기
쎄에 쌕 부딪히며 가는 마당에
볶고 볶기며 타는 노랗게 익는
새카맣게 돌아도 늘 꽉 막힌 콩
예가체프 볶을 때는 집중해서 볶았다. 모양이나 색상이 바르게 나왔다. 주문받은 과테말라 커피를 볶을 때였다. 그만 외부에 걸려온 전화에 잠깐 신경이 쓰여 딴생각 좀 일었는데 혹여나 콩이 잘못되어나 싶어 강 선생께 한 잔 부탁했다. 서 부장과 강 선생과 커피 한잔 했다. 고산지대에 재배되는 커피일수록 산미가 좋고 단맛이 많이 난다고 어느 커피 책에서 읽은 바 있는데 꼭 그 맛이었다. 강 선생은 단맛에 아주 민감한지 달다며 얘기하기에 설탕 넣느냐며 한마디 했다.
참고]
여기에서 산미에 관한 얘기는 적지 않겠다. 전에 한 번 적은 적 있다. 하지만 커피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맛의 기준*을 참고로 아래에 적어놓는다.
·기본적으로 산미가 좋아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하고 위압적이거나 톡 쏘지 않아야 한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끈적이거나 살짝 미끈거리는 느낌이 밋밋하고 묽거나 거친 느낌보다 낫다.
·복합적으로 강렬한 향미가 단순하고 희미한 향미보다 낫다.
·커피가 본디 쓴 음료임을 감안한다면, 천연 단맛은 좋지만 지나치게 쓴 맛은 좋지 않다.
·커피콩 자체에서 방출되는 꽃, 과일, 감귤, 꿀, 당밀, 초콜릿(커피에서 과일 향은 대개 생두를 볶을 때 당분이 캐러멜로 바뀌면서 초콜릿처럼 변한다) 같은 천연 향미가, 커피 열매 껍질을 벗기고 생두를 건조하다가 잘못해서 발생하는 발효 과일, 곰팡이, 썩은 퇴비, 약 같은 향미보다 낫다.
·달콤한 향미가 입안 가득 길게 여운을 남기는 뒷맛이 향미가 금방 사라지거나 아예 없거나 떫은 뒷맛보다 낫다.
아침에는 사동에서, 오후에는 본점에서 직원들과 조회했다. 내일 월급날이라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설 명절이 다음 주라 상여금에 관한 얘기였다. 카페 매출이 그리 많지가 않아서 지급할 수는 없지만, 설 선물 대용으로 차비로 00만 원씩 더 넣기로 했다. 본점이나 조감도나 모두 대형 카페다. 큰 카페에 맞는 매출이 나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앞으로 어떻게 이끌겠다는 생각을 얘기했지만, 지금은 국가 전체경기 흐름이 좋지 않아 솔직히 암담하다.
저녁에 윤 과장 다녀갔다. 언제나 보아도 밝은 모습이 좋다. 아마도 사장님께서 직접 오셨다면 안색이 또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점마다 어려우니 모 회사인들 왜 어렵지 않을까! 모두 살길 마련하느라 투자를 생각하고 이 말이 오가는 것은 분명히 아직도 희망 있는 국가란 뜻이다. 경제가 붕괴하였거나 절망적인 국가에 있다면 투자심리를 자극하지는 않을 거니까 말이다.
아이들과 이 마트에 잠시 다녀왔다. 영풍문고에 들러 쌓아 놓은 책을 보았는데 여실히 꽉 막힌 벽이었다. 서점은 우리나라 출판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마구 쏟아지는 간행과 책을 소비하는 고객의 비율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분명히 과잉공급도 아닐 것이다. 좋은 책을 쓰고 싶은 것은 평생 쓰는 자의 숙제다. 읽어야 할 책도 많고 배워 할 공부도 많은 것이 인생이다. 저 많은 책을 보니 걸어야 할 길이 벽이었고 저 많은 책 속에 내 위치를 알 수 있으니 벽이었다.
*각주]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스콧F.오스틴 외 지음 / 김병순 옮김. 따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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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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