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할머니가 쓴 민규의 일기
2008년 9월 10일 수요일 맑음
언제나처럼 일곱 시 오십분쯤 현관 쪽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낯익은 할머니목소리가 들렸다.
“민규야! 민규 뭐하니?”
마침 엄마는 출근준비로 안방화장대 앞에 있었고 난 거실책꽂이 앞에서 혼자 앉아 놀고 있을 때였다. 할머니얼굴이 보이자 너무너무 기뻐 할머니가 며칠 전에 가르쳐준 ‘트위스트 춤을 춥시다.’ 모션을 취했다. 할머니는 그런 내가 대견하면서도 귀여운 듯 신발도 채 벗지 못하고 급히 들어오시며 칭찬해주셨다.
“어머머, 민규 좀 봐. 날 보자마자 트위스트 춤을 추네. 이젠 엄마 얼굴 보이지 않아도 혼자서 잘 노는 거야? 착하기도 해라!”
“아이고, 민규가 혼자 책보고 있었구나. 기특해라!”
뒤따라 들어오시는 할아버지모습에 난 갑자기 쑥스러워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 두 손을 마루에 대고 좌우로 흔들며 트위스트 춤을 추다가 ‘에엥~~~!!!’ 상반신을 일으켜 할아버지에게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들어 꼬옥 안고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 주셨다. 할머니는 내가 한없이 기특하고 예쁜가보다. 볼에 뽀뽀를 세 번이나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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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시월의 아름다운 신부, 사랑스런 딸 빛나야!
♥ 빛나의 그림 ♥
푸른 바다 파란 배
그리고 싶어
도화지에 배 한 척
그려 논 빛나.
푸른 색깔 파란 색
구분 못해서
바다도 큰 배도
파랑 칠 했네.
배가 바다에
빠졌다고
그림 보며 울상 짓는
빛나의 얼굴.
아마 네가 다섯 살이었던 늦여름이었을 거야. 2학기개학을 맞아 학교, 유치원에 간 두 오빠가 없어 심심하다며 마루에 엎드려 여름휴가 때 송지호해수욕장에서 본 동해의 풍경을 그렸었지. 하늘은 본래 파래서 파랑, 바닷물도 파랗다고 파랑, 배도 파랬다며 파란색크레용으로 칠해놓고선 설거지하고 있는 나에게 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던 너.
“엄마, 배가 바다에 빠져서 안보여. 어떻게 해?”
“하늘하고 바다하고 어떤 게 더 파랬어? 진한 파랑, 흐린 파랑, 구분해서 칠하고 빨간 배나 주황색 배로 다시 그리면 되잖아?”
바다에 빠진 좀 전의 배보다 훨씬 큰 빨간 배에 삐뚤빼뚤 빛나호라는 이름까지 써넣고 흐뭇해하던 그때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덧 아리따운 처녀로 성장하여 하얀 면사포를 쓰게 되었다니....... 세월이 참으로 빠름을 실감할 수 있네.
하지만 무심한 것 같은 시간은 그냥 맹목적으로 흐른 것은 아니었어. 그동안 넌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4년의 정규교육과정을 성실히 마쳤고 졸업 전에 정식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자격증도 순탄하게 획득했잖니? 더구나 같은 과 선배이자 천상배필인 남편감 상준오빠도 만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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