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만 더 자고 가면 안돼요..? / 밤정골
9월 11일 토요일 오후에 조상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해 큰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5살 된 손자
재영이가 부산에서 대구 할아버지 집으로 왔다. 마침 미국에서 일본 교환학생으로 가기위해
지은이(재영이 당고모:대학 3학년)도 와 있었다. 둘은 만나자 말자 5분도 되지 않아 친해져서
'고모!, 고모~~'하면서 장난치며 온 집을 뛰어다니며 땀을 뻘뻘흘리며 놀고 있다. 조용하던
집안이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시끌벅적하다. 그래도 그 둘을 바라보는 내 가슴은 따뜻하기만 하다.
일요일 아침 아들과 큰집 조카와 나 이렇게 셋이서 비가 쏟아지는데도 청도에 있는 산소에
벌초를 하고 집에 돌아와도 재영이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제 고모와 자지러지게
놀고 있었다. 지은이가 친구 만나러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재영이에게 말을 해도 재영이는
제 고모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결국 조카의 억지 떼에 지은이는 약속을 포기하고 만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지은이를 좀 쉬게 해 줄 심산으로 나는 재영이에게 월드컵 경기장에 놀러
가자고 꼬드겼다. 재영이는 제 고모한테 가서 '할아버지와 경기장 갔다 올테니 고모 어디 가면
안돼요~~!' 하고는 손가락을 걸어 도장 찍고 복사까지 하고도 고개를 돌려 제 고모와 눈도장
까지 찍으면서 할애비를 따라 나선다.
차에 탄 재영이는 스스로 뒷자석으로 가 앉아서 안전벨트를 채우고 있다. 애들이 커가는 행동
이지만 할애비가 보기엔 너무 애 같은 맛이 나지않아 조금은 씁슬한 기분이 든다. 월드컵
경기장엔 오전에 비가 내린 탓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특히 어린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할애비와 손자는 내려서 조금 걷다가 자동차 진입을 막는 동그란 돌 위에 마주보고 앉았다.
내가 무릎이 아파서 구부려 무릎을 들어올려 만지자 재영이도 똑 같이 오른쪽 무릎을 들어올려 만진다.
내가 왼쪽 무릎을 만지자 재영이도 다리를 바꿔 왼 무릎을 만진다. 그러기를 수차례...옆에서
자리 깔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주머니들이 손벽을 쳐대며 소리내어 웃고 만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들 내외는 부산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재영이에게 옷을 갈아 입자고 한다.
재영이는 옷을 안 입으려고 이 방 저 방으로 제 엄마를 피해 달아난다. 그러다 결국 제 엄마에게
붙잡혀 옷을 입게된 재영이는 그 새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체 개구리처럼 펑펑 울고 만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집에 하룻밤만 더 자고 가면 안돼요..?' 하면서 소나기에 초가지붕 처마에
빗물 떨어지듯 하는 눈으로 할애비를 쳐다 본다.
(할애비 속을 네가 우째 알겠노...이 할애비는 열 밤 스무 밤 자고 가도 괜찮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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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