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4月 13日
비가 조금 내렸다. 내내 흐렸다.
오전, 잠깐 은행 전무님과 차 한 잔 마셨다. 전에 모텔사업 하신다던 모 선생을 만났었는데 그분, 별달리 돈 쓰지 않으실 거라며 또 말씀 주신다. 그러니까 악착같이 돈 버신 분은 바늘로 찔러도 돈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한 해 부가세신고금액만 오천만 원에 이른다고 했다. 확실히 돈을 많이 버시는 분들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틀림없다. 칠순은 안 되어 보여도 예순은 족히 넘으신 분이었다. 사업은 직업이니 연세에 비례해서 괜찮은 일이다.
은행이란 예대차익으로 먹고사는 기업이다. 돈 많은 부호를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구미에 맞는 조건을 제시하여야 한다. 전무님께서도 얼마나 일이 많을까! 기업인과 잔잔한 사업까지 안 들여다볼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인맥관리다. 커피 외에 다른 업종은 그리 관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 녹차 한잔에 이것저것 많이 주워들은 듯하다.
10시경, 기계 싣고 포항에 내려갔다. 서 부장 동행하여 다녀왔다. 영천 국도 타며 갔는데 고속도로보다 빨라 이 길을 택했다. 비가 조금씩 내렸다. 어느 길이나 어느 들판이나 꽃이 안 핀 곳이 없다. 도화가 만발한 곳도 있으며 벚꽃도 아직 핀 곳이 많았다.
포항 지금 들리는 집은 올 팔월이면 만 육 년째 커피 일 한다. 전에 기계가 몇 번 잔고장이 나기는 했어도 그리 큰 고장은 없었다. 중고값어치로 잔존가치가 조금이라도 남았을 때 새것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기계를 싣고 내리고 할 때 사장님께서는 바깥에 나와 손으로 가리키며 한 말씀 주신다. 봐요! 여기는 사거리이자 터미널도 앞에 있고 대형 상점도 있잖어, 그리고 여기는 바로 횡단보도 앞 카펜데. 장사 안돼 아마 세주고 했으면 벌써 문 닫았어. 이 같은 목 좋은 곳은 세가 그리 돈 백 달라고 안하겠남. 백이면 커피 못 해 못하지. 기계 설치는 오전 11시경에 끝났다. 커피 한잔 뽑아 차에 싣고 경산 오른다.
기계 바꿔드리고 헌 기계 싣고 온 거였다. 마침 때는 점심 훨씬 지나 두 시로 향하고 배는 출출한 건지 자꾸 쓰렸던 거였다. 안 되겠다 싶어 임당에 왔을 때 가끔 가는 보쌈 집 앞에 차 세웠다. 가끔 이 집은 언제 쉬는지 분간 안 가서 차창 밖으로 빠끔히 쳐다보니 불이 켜져 있는 거였다. 바깥은 보슬비 내렸다. 우리는 내려서 도로 건너 보쌈집으로 뛰었고 자리에 앉았다. 아줌마 보쌈 정식 두 개 주세요. 허겁지겁 먹는 게 아니라 천천히 게걸스럽게 먹는 게 아니라 찬찬히 먹었다. 다 먹고는 본부에 왔다. 아까 가져온 헌 기계 내려놓고 오늘 접수 들어온 커피 주문 서 부장께 전달하며 자리에 앉았다. 좀 쉬어야겠다며 책 끼적대었다만 결국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조금만 누워야겠다며 자리했는데 가물가물 꿈 밭길 걸었다. 이제는 늙은 것인가! 바깥은 여전히 보슬비 내리고 있었다.
코나 사장님 오셨네. 아까 가져온 기계 보셨네. 눈독 들이네. 이거 우리 공장에 갔다 놓으까! 윤 과장? 함께 왔던 윤 과장 눈 멀뚱거리며 기계 보네. 이 사장, 이 기계 어쩔 거야? 서울 올려야죠. 우린 헌 기계는 모두 서울 올려요 했네. 그러니까 우리에게 팔지. 이거 다 돌아가는 기계잖아. 네 정상 운영 되는 거 맞아요. 전기 넣지 않은 기계 뺑 둘러 보네 요리조리 만져보고 꾹꾹 놀러 보네 안성에 친구가 있는데 말이지 버섯 공장을 해. 이 친구 어찌나 기계타령 하는지 말이야. 있을 땐 말 없고 없을 땐 자꾸 구해달라는데 아주 그냥 미치겠어. 이야기 들으며 바깥에 나갔네. 마구 어지른 가게가 답답해서 바깥 공기 쐬며 있었지. 배춧잎 부르기도 뭐하고 안 부르기도 뭐하고 그냥 있었지. 그러니 안쪽에서 기계만 보는 윤 과장 한마디 하네 이거 버튼 하나가 맛 갔어! 코나 사장, 이거는 갈면 되는 거 아냐. 그러고 있다가 커피 얘기 나왔네. 아까는 몸이 별 좋지 않아 종일 퍼져다며 얘기했지. 코나 사장은 얼마 전에 바닥 헛디뎌 넘어졌다네 한쪽 팔 깁스 했다네. 뼈 부러진 게 아니라 으스러졌다 했네. 그러고 한 십분 더 얘기하다 갔네
압량, 볶은 커피를 사 가져간 손님 있었고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가져 간 손님 있었다. 바깥은 여전히 보슬비 내리고 있었다. 손님 가시고 나면 나는 당 왕조의 시대상을 읽었다. 중국 역사에서 문화와 문학 그리고 상업에 이르기까지 대외적으로 이룬 학술과 상업 교류 또한 역대 어느 왕조보다 뛰어났다. 그 당시 가장 번성한 도시는 강남이 아니라 서북쪽 둔황 같은 도시였는데 둔황에서 수도인 장안까지는 눈부시게 찬란한 보석들을 이어놓은 것처럼 화려했다고 하니 지금 자본주의 시대에 밤거리를 생각하게 한다. 당은 어느 나라보다도 개방주의였다. 이 개방의 물결이 당 문화를 더욱 발전시켰다는 것은 두말할 이유가 없겠다. 카페, 카페는 보시다시피 개방 아닌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자 부담 없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며 여유를 가지며 공부도 할 수 있거니와 영혼을 잠시 맡겨 보는 커피 한잔은 둘도 없는 종교 같은 친구다. 한 잔의 커피와 만나는 영혼, 화려한 밤거리와 같은 휘황찬란한 개인의 문화를 만들라! 문화의 꽃은 무엇인가! 당에 이르러 백화문이 나오기 시작했다니 우리는 구태여 그럴 이유도 없는 말글 아닌가 말이다. 말글, 잘만 다듬어 놓으면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시대상까지 반영하여 두루두루 복에 이르게 되니 말이다.
사동, 동원이가 사동에 정식 출근했다. 언제, 보고가 있었다. 집에 아직 세입자가 나가지 않아서 당장 가게를 열 수 없지만, 일단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밤늦게 문자 보냈다. ‘그래 동원아 늘 고맙구먼! 창업 너무 서두르거나 조급한 마음 갖지 마라. 조급하면 오히려 일 그르칠 때가 많아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오십 년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르니 배우는 길은 젊을 때 그래도 낫지. 때 되면 그때 받아들이려무나. (그래도 크게 늦지는 않지)’ 넵!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새겨듣겠습니다. 수요일 날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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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