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5月 04日
맑았다.
엊저녁 본점 마감하고 난 뒤의 일이다. 동원 군과 정석 군 그리고 본점 단골손님인 듯했다. 여 막창집에서 야식을 함께했다. 동원 군은 정석 군과 일에 서로가 맞지 않았던 게 있었던가 보다. 어딘가 자리 마련해서 서로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러는 와중에 여 앞에 막창집에 밥 한 끼 하자며 데리고 갔다. 김치찌개와 반주로 소주도 한 잔씩 했다. 햅반을 놓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젊은 사람이라 이성에 눈을 가질 만도 하며 미래에 대한 생각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직업에 관한 나의 분명한 철학이 있어야겠다며 한마디 했다. 이탈리아의 바리스타는 평균연령이 47세라고 어딘가 읽은 적 있다. 47세뿐일까!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멋지게 삶을 꾸려나갈 능력과 지혜를 가졌다. 바(bar)는 일단은 나의 무대다. 오시는 손님께 여러 가지 메뉴로 선을 보이며 구수한 언변 능력으로 고객의 마음을 열어 보인다. 쑥스럽거나 말더듬이라면 가당치도 않은 자리다. 그렇다고 보수가 많거나 권위나 명예가 있는 자리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대하며 커피와 더불어 여러 감정을 논한다. 그 어떤 길로 빠져도 원심회복능력은 분명히 빨라서 커피 한잔 마시며 커피로 귀결된다. 그러니까 대화라는 것은 훨씬 고차원적이며 고급이며 말의 격을 높인다. 언격이 인격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배워야 한다. 커피는 커피만 두고 말할 수는 없다. 방금 김치찌개가 나왔다. 이 김치찌개를 맛나게 먹으려면 숟가락을 들어야 하며 접시를 가져다 놓고 들어서 먹으면 더욱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커피도 이와 같다. 너무 비약적인 말은 아니나 모를까마는 언어구사능력이다. 그러니까 숟가락은 숟가락이 아닐 수도 있다. 호! 그러고 보니 매트릭스 지나간다. 숟가락처럼 딱딱한 사람이 숟가락처럼 비좁은 마음으로 김치찌개를 떠먹다. 숟가락처럼 넓적한 사람이 숟가락처럼 포근한 마음으로 김치찌개와 같은 맛을 찾을 수 있는 커피 한잔이면 더욱 좋겠다. 동원아!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는 언제 생겼니? 그러니까 동원이는 우물쭈물한다. 1902년이야. 누가 했을까! 그리고 유럽은 또 언제 최초의 카페가 생겼으며 그 발전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그러니 더욱 머뭇거린다. 카페와 커피, 우리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왜 우리는 커피를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한단 말인가! 그건 말이다.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혼의 밑거름이자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 커피다. 그러면 이 발산은 어디에 어디로 가는가! 내가 무엇을 만드는 능력, 결과가 분명히 보이는 ‘깜빠뉴’다. 몽싯몽싯 오르는 빵 같은 일로 아니면 돼지 털 한 옴큼 움켜잡고 휘황찬란하게 그려나간 자연의 복제, 검은색 밭에 흰색 고랑 아니면 흰색 밭에 검은색 고랑 같은 마음을 용케 그려나가는 주름 같은 악보, 피아노 옥구슬 반주에 자연의 소리를 담는다든가 그 어떤 소재도 모다 소화할 수 있는 문필의 힘으로 아니면 춤이라든가 그 어떤 역할도 괜찮다. 우리는 발산하고 싶은 것 모종의 능력을 갖고 있다. 예술이다. 예술은 나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 그간 쌓은 경험과 지식과 지혜로 점철된 붓 같은 몸뚱어리 속에 폭 담갔다가 나온 산물이다. 그러니 그 얼마나 커피라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오전, 영화 ‘국제시장’을 다운 받아서 보았다. 이 영화 괜찮다며 적극적으로 추천하신 분이 있었다. 아버지가 겪은 격동의 시대상을 잘 그려놓았다고 해도 지나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끝에 아주 감동적이었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6.25동란 때 피난 가는 과정에 주인공 덕수는 미군 군함에 오르며 동생을 잃어버린다. 추운 겨울이었다. 중공군은 코앞에 닥쳤고 많은 사람은 결사적으로 피난길에 내몰렸다. 눈발 휘날리는 흥남 부둣가 상황이 너무 생생하다. 큰 군함은 타이타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1970년대 베트남전쟁, 6.25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시대만 조금 다르지 공간은 이미 옛 과거의 반복적인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아널드는 역사를 수레바퀴에 비유했나! 1980년대 말 이산가족 찾기에 잃어버렸던 동생 막순이를 찾는 과정은, 보고 있자니 눈물이 맺혀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한 생애를 그리며 뒤돌아보는 노부부, 영화는 나비가 펄펄 날아서 노부부 저택으로 가 앉았다가 이내 노부부의 지나간 인생을 되돌아보며 나비는 다시 하늘로 날아간다. 여기서 장자의 나비가 생각났다. 나비는 꿈이다. 꿈같은 세월이 지나갔다. 주인공 덕수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생각한다.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펄펄 우는 덕수, 그리고 아버지가 찾아든다. 화면은 어릴 때 덕수로 돌아가고 ‘진짜 고맙다. 내 몫을 다해줘서 진짜 고맙데이’. ‘아버지 진짜 보고 싶었어예.’ 아 오월, 가정의 달을 물씬 생각게 하는 영화였다.
부산 특유의 사투리와 함흥의 사투리가 정답게 느낀 영화였다. 1960년대 시대상, 독일로 간 탄광부와 간호사, 이 노부부는 젊을 때 독일에서 만났다. 커피 문화 강좌를 하며 박정희 시대상을 이야기한 적 있지만, 이렇게 영화로 생생하게 보니 또 감회였다.
오후, 책이 여러 권 왔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인데 모두 여섯 권 받았다. 김영수 선생께서 쓰신 책 ‘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 읽다가 이런 것을 느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사자성어를 풀어놓은 글, 책이라 보면 되는데 중국과 우리나라는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글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는 역시나 중국문화를 바탕으로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자성어가 나올 수밖에 없는 그 당시 사정을 읽고 문자가 함축적이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솔직히 놀라움이다. 우리말은 사자성어가 나오기에는 말이 서술형이라서 어려우나 이에 버금가는 것을 굳이 말하자면 속담 같은 것이 맞지 싶다. 예를 들면 ‘발바닥에 털 나겠다거나 발바닥 핥다*’거나 하는 표현 같은 것이다.
학문이 깊어질수록 도는 얕아지고 세상을 겪을수록 인심은 야박해진다는 말이 있다. 공부를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이치가 낮아짐을 말하고 세파를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인간관계에 분명한 논리를 찾으려고 드니 인심은 그만큼 없어지게 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마음이 좋고 너그럽게 상대를 대한다고 해도 이것은 주관적이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괜히 긁어 부스럼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있어야겠다. 나머지는 나를 갈고 닦는 일에 우선이며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먼저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게 없다.
각주]
발바닥에 털 나겠다. 가만히 앉아 호사스럽게 지내거나 몸을 놀리기 싫어함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
발바닥 핥다. 재력이나 권세가 있는 사람에게 빌붙어 너절하고 더러운 짓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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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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