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4月 26日
맑았다
그리고 백 년 동안 / 여태천
횡단보도 신호등이 깜빡거린다.
우체통 앞에서 안절부절
마음도 함께 점멸한다.
어둠이 번지고 은행나무 아래로
오래전에 지나갔거나 지나가야 할
얼굴들이 쌓인다.
표정을 되찾은 이들은 두 갈래 길로
은행잎이 되어 하나둘 떠났다.
이게 마지막이다.
다시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일은 없을 거다.
마주 보지 못한 사랑은 냄새를 피웠다.
그리고 백 년 동안은
평범한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은행의 열매들은
믿음이었다가 두려움이었다가 불안이었다가
결국엔 독이 되었다.
점멸하는 신호등이 모든 기억을 어지럽혔다.
돌아와 우체통에 머물고 있을
어둑어둑한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는 저녁이다.
은행의 열매들이 우는 저녁이다.
누군가 그 마음을 훔치는 저녁이다.
鵲巢感想文
시는 그리움이다. 어찌 되었건 백 년 아니 천 년쯤은 또 어때 그러니까 횡단보도 신호등처럼 깜빡거리는 정신적 세계를 탈피하여 마음을 영 점멸할 수 있으면 어때 아니면 영 켜놓거나 하지만 신호등처럼 깜빡거리는 그리움은 은행잎처럼 하나둘 떠나고 떠난 님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표정만 남게 되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듯 내 마음을 어딘가 띄워 보낼 수 있으면 한 백 년이나 한 천 년쯤이나 다시 그 우체통을 꺼내 볼 수 있는 저녁이었으면 좋겠다. 은행잎은 떨어지고 신호등은 깜빡거리는데 시에 대한 그리움은 지울 수 없으니 오늘도 내 모르는 우체통에다가 은행의 열매 같은 씨앗 하나 건져 보내는 저녁일세 우는 저녁일세
鵲巢日記 15年 04月 26日
맑았다.
송홧가루 날리는 계절이다. 아침, 차타려니 차에 소복이 앉은 송홧가루 본다. 송홧가루 폴폴 날리는 계절은 춥지도 덥지도 않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에 소나무는 밤새 저리도 흩뿌려놓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본부 거쳐 본점 거쳐 압량 지나 사동에 왔다. 이른 아침 손님이 먼저 왔다. 커피 한잔 내려드리니 직원 출근한다.
오후, 아래였다. 시지에 기계를 가져다 놓고 설치하지 못했다. 설치조건이 맞지 않아서 현장에 놓아두고 조건이 맞으면 다시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니 일요일쯤이면 다 될 것 같다며 그때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일요일, 댄스 학원 그 주인장은 아주 투박한 목소리로 한소리 쏘아붙이듯 말을 했다. 동생 집 기계는 이것보다 나은데 가격은 더 싸니 어서 와서 청소해달라며 애걸복걸이었다. 나는 전화 받고 기분이 아주 안 좋았다. 기곗값도 깎을 대로 깎아놓고 또 거친 저 말소리는 뭐란 말인가! 마음에 안 들면 지금이라도 반품해 드리겠다고 도로 말씀드리니 또 설치까지는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며 말을 한다. 이 집은 내부공사도 자기 방식대로 해놓은 지라 배수 호스가 그만큼 닿지 않은 게 또 문제다. 기계제조 회사에서 제시한 규격 호스로는 턱도 없는 일이라 사제품을 사서 연결해야 할 판이다. 더욱이 하나같이 짜증 어린 말은 정말 참기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친절히 답변하고 상냥하게 말씀 드려도 상대로부터 받는 까칠한 답례는 거래에 아주 손실 가는 행위임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허 사장은 목소리가 아예 저음인 데다가 얼굴상도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상대에 강한 인상을 준다. 어떤 주제로 만나서 이야기하면 주눅이 드는 상이다. 실지로 그는 까칠하게 대하거나 터무니없는 말에는 바로 직격탄으로 응수하는데 싸움 일보 직전까지 가는 일이 잦다. 그러면 오히려 상대는 꼬리 내린다. 나는 가끔 그에게 한마디 한다. 좀 부드럽게 대하라! 그러면 능글능글하게 웃는다. (솔직히 그가 부럽다. 일종의 처세니까)
현장에 들러 배수 호스를 연결하고 기계도 한 번 봐 드릴까 싶어도 그만 가기 싫었다. 마침 서 부장 조감도에 나와 일하기에 그를 보냈다. 근데 서 부장은 배수 연결을 해 본 일이 없어 못 하겠다며 얘기한다. 그러니 연결하는 방법을 조감도 내에 영업장 기계를 보며 배수구까지 연결하는 방법을 일렀다. 그래도 미심쩍은 눈치였으나 나는 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게 되면 아무래도 한바탕 싸움이 일지도 모르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 곱지
턱없는 짜증 턱턱 뱉는 불친절
한마디 말은 인격 내 가진 교양
거래는 오고 가는 붙임 정이라
말 한마디 천 냥 빚 갚는단 말도
틀린 말 영 아니라 벌처럼 뱉는
그 말에 꽃과 같이 대하진 않아
쪼매 덕 좀 보려면 말부터 닦아
서 부장이 다녀오고 현장에서 전화가 왔다. ‘아니 간다는 말도 없이 그냥 가면 어쩌란 말입니까’, 나는 서 부장이 인사도 없이 그냥 나왔나 싶어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서 부장에게 물어보았더니 거기 여자 분이 주인 아닌가요. 하며 묻는다. ‘음 맞아.’ 인사했는데요. 이번에는 그 남자 분이 시비를 걸었다. 별것 아닌 일로 이모저모로 마음을 심란하게 한 하루다.
뭐 그렇다고 커피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한나라 무제 때 기인 동방삭(기원전 154~93)은 별명이 여러 있겠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삼천갑자 三千甲子가 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갑자년을 삼천 번 겪으면 18만 년이 되는데 그만큼 오랜 시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지로 동방삭은 오래 살았다. 절대 왕정 시대에 잘못된 간언에 죽어간 신하도 꽤 많았지만, 그는 유머 감각으로 왕의 노여움을 사기는커녕 웃음보였다. 그 유머감각은 아무래도 그의 성격 탓일 것이다. 낙천적이며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지혜롭고 익살스러워 늘 우스갯소리로 황제 무제를 즐겁게 했다. 사회, 나만 사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뚝 떨어져 혼자 사는 건 더욱 힘들다. 서로 웃으며 능글능글 성글성글 그렇게 하루 보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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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