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4月 20日
온종일 비 내리다가 또 그쳤다가 보슬비가, 보슬비가
사동 가는 길 베토벤 황제 이 악장 듣다. 구슬이 데구르르 구르는 피아노 음반 소리는 강렬한 섹스에 비교할 수 없으며 짜르르 흐르는 현악기 부드러운 선율은 여인의 피부에 비할 바는 더욱 아니겠다. 살짝 쥐어뜯는 바이올린 탱 거리는 소리와 어느 악동이 마치 뜨거운 동판을 뛰어다닌 듯 미친 듯한 손가락은 그야말로 카타르시스의 절정이 따로 없겠다.
사동에 도착했어도 나는 차 안에 앉아 예술가의 삶을 읽었다. 그의 외로움을 몸으로 표현해 놓은 작품 아닌가! 불후의 명작 말이다. 비가 내린다. 전선 같은 저 선율이 차창 유리 닦는구나. 섬세한 저 피아노 건반, 흰색과 까만색의 조화, 백지와 그 위 죽죽 긋는 볼펜의 질감, 넣고 빼고 자유스러움의 저 현란한 손가락의 춤, 거저 정의의 손이 따로 없겠다. 강렬한 몸동작인 것 같아도 절대 강렬하지 않은 저 부드러움, 소리는 아주 명쾌해서 여인의 그 어떤 숨소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거저 꾀꼬리 같은, 지금은 비가 오누나. 비 오면 한 닷새 왔으면 좋지 했던 소월아! 이제는 닷새는 왔지 않았는가 말이다.
베토벤은 악보 하나로 대 통일을 했다. 바이올린과 북 북과 피아노와 그리고 남 피리와 색소폰과도 같은 저들을 하나로 묶었다. 절대 왕정 시대가 가고 자본주의가 도래했다. 어느 시간이 흘러도 통일된 제국을 우리는 듣고 있다. 베토벤의 추종자는 시대 불문하고 저들을 지휘할 것이다. 암울한 현실을 타파하고 미래를 여는 꿈 하나, 그 열쇠를 쥐며 상상나라에 가 닿도록 수만 승의 수레에 거꾸로 매단 콩나물을 잔뜩 싣고 오는 것이다. 우리는 저들을 믿고 흰 구름 쪽 하늘가 넘어 붉은 태양에 오로지 미친 듯 뛰어들면 되는 것이다. 뭐 어렵고 두렵단 말인가! 가자 오늘도 하루 대 통일하자.
사동 직원과 조회했다. 건의사항은 있는지 또 보고할 사항이 있으면 듣고자 잠시 직원과 상면했다. 문제는 식사다. 이 문제는 예전 본점에서도 의논한 바 있었다. 전에는 따로 식대가 나갔다. 그런데도 본점경비로 식사하는 일이 잦아 아예 식대 비 없이 그날 비용으로 처리하자며 논한 적 있다. 사동은 본점과 다르게 종일 일하는 경우도 많아서 한 끼만의 문제가 아니라 두 끼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였다. 직원 모두 있는 상황에서 의논을 가져야 하는데 점장과 박 실장이 빠진 가운데 성급히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본점(사동) 경비로 하자며 얘기했다. 직원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실은 카페에 손님 많이 찾기라도 하면 밥 먹는 시간마저 내기 어려울 때도 있다. 결정은 내일 이야기하기로 했다.
청도에 다녀왔다. 빗길이다. 안개 덮인 듯 비구름에 쌓인 산 보며 내달렸다. 역대 왕들과 역대 성현들과 역대 쿠데타의 주모자와 민란 봉기군의 대장이 보인다. 쿠데타도 성공하면 역에서 정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적 사관에 의한 주체와 객체의 문제다. 세계 변화에 대한 소외감을 없애고 일치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진정한 경영자의 몫이다. 그러니까 이는 우리의 일의 시작과 결말에 대하여 모순적 사항이 있으면 서로 파헤치며 들여다보아야 하지 이를 숨기고 은폐해서는 안 된다. 이로써 진정한 발전을 꾀할 수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겠다.
점장께서 주문한 커피를 내렸다. 청도는 한 번씩 와도 재미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돈 버는 일은 아니지만, 그나마 카페리코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내는 몇 안 되는 카페 중 하나다. 점장도 그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합당한 노력으로 보답하신다. 작년이었다. 동호점 문 닫을 때 이야기다. 점장께서는 하루 매상이 93,500원이 올라야 한 달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본인의 인건비 제외한 금액이다. 그러니까 한 달 임대료와 전기세 포함한 각종 세금 그리고 재료비가 나온다는 거다. 하지만 실지로 매출은 그에 반 정도 올렸다. 원인은 주위에 카페가 너무 많고(카페베네 포함해서 무려 십여 개가 들어와 장사하고 있었다) 주차할 수 있는 그런 위치도 아니거니와 커피는 더욱 주식이 아니라 음료였다. 가게를 인수하고 몇 달 운영한 점장의 얼굴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만큼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 어떤 위로의 말을 해도 최선의 방안은 아니었다. 본점도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죽겠다는 것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거론할 필요도 없거니와 주제넘은 일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 가게가 팔렸다. 물론 권리금과 기기대금 일절 포기하고 점포 보증금만 빼 가져 갈 수 있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그리고 한 며칠 뒤 점장 얼굴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각종 꽃에 비유할 바가 아니었다. 그만큼 사람을 억압한 것이 영업이다.
오늘, 백천점 간판 내렸다. 의자와 탁자, 기계와 잡다한 부자재와 숟가락과 숟가락 통까지 본부로 옮겼다. 그야말로 본부는 한마디로 쓰레기통이 되었다. 백천점은 전 주인 1년 현 4년, 만 오 년의 영업을 끝으로 고객께 고별인사를 했다. 문 닫기 며칠 전에는 커피 행사 가격으로 2,000원 했다. 백천점장 ‘아! 본부장님 요 며칠 이천 원 행사했는데요. 하루 백 명 오던데요.’ 정상가격으로 판매할 때는 하루 십만 원이 넘지 않은 곳이 2,000원 행사하니 이십 만원 매출로 매일 찍었다는 것이다. 사장님 그간 많이 힘드셨죠. 염치없는 말이지만, 카페리코 하시며 괜찮으셨는지요? 백천 사장은 싱긋이 웃으며 진지하게 한마디 했다. ‘처음 일이 년은 괜찮았습니다. 그때는 세가 80만 원이었죠. 그러고 재작년부터 세가 100만 원 넘고부터는 힘들데요. 올해는 150이고요. 거기다가 주위에 카페가 너무 들어왔습니다. 지금껏 적자 감수하며 영업했어요. 이제는 아무 미련 없어요. 속 후련합니다.’ 이곳 후임으로 뭐가 들어옵니까? ‘맘스터친가 하는 브랜드라고 하데요.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네에
기계를 서 부장과 함께 빼느라 용쓰고 있었다. 건물주께서 오셨다. 칠순 안 되어 보였는데 이 동네 사람은 아닌 듯하다. 아주 멋쟁이셨다. 정장에 머릿기름에 말씀도 아주 정중하셨다. 사모님께서도 오셨는데 그릇과 잔 모다 놓은 어느 상자를 들여다보며 괜찮은 잔 있는지 있으면 가져가시려고 이것저것 만지셨다. ‘모두 본부 들어갈 물건이니 만지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지켜보았다. 그러니 한 참 후에 괜찮은 잔 있었던가 보다. ‘이것 제 가지면 안돼까요’하는 거다. 옆에 어렵게, 어렵게 세 맞추며 살았던 세입자 있었고 에어컨 떼러 오신 사장 있었고 서 부장과 나는 기계 들고 있었다. 분점 사장께서는 웃으시며 네 하세요. 하며 한마디 건넸고 건물주 사장께서는 옆구리 쿡쿡 찌르며 있었다. 그러니까 그 사모님은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마냥 잘 닦아서 고급 백에다가 슬그머니 넣는 것이었다. 세 깎아달라고 해도 아주 야멸차게 딱 잘라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장사 안되면 나가세요. 다른 업종도 서로 달라고 하는 자리입니다. 얼마 전 점장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 그러고 오늘 문 닫았다.
저녁에 코나 사장 오셨다. 이 일로 저녁을 못 먹었다. 마침 분점에서 가져온 물건을 다 내리고 압량 가려는 순간이었다. 가져오신 커피를 모두 내리고 압량에 가서 커피 한잔 하자고 했다. 언제나 안 보면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만나기라도 하면 어찌나 말씀이 많으신지 한마디 뱉으면 열 마디는 그냥 족히 하시는 분이다. 그러다가 일이 있어 그만했으면 싶어도 줄곧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오늘도 똑같은 문제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거시냐다. 커피를 잘 볶으시면서도 말이다. 아들 이야기, 공장 이야기, 직원 이야기, 이제는 촌사람도 커피를 많이 마신다는 것과 건강 그리고 전에 못 받았던 돈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결국, 내용증명 띄워 받아냈다. 그러는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며 무엇으로 이 많은 빚을 갚아야 하는가 말이다.
가네 이제 후련히 잊으며 가네
더는 카페 못하지 아니야 안해
껌처럼 진득하게 한 사년 했어
단물 씹물 쓴물도 어의 다 봤네
사동에서 점장과 오랫동안 대화 나눴다. 마치고 집에서 라면을 먹었다. 달걀은 아주 고급 식품이다. 언제나 달걀을 안 믿은 적이 없다. 달걀껍데기는 구석기 시대에도 신석기 시대에도 저 이스터 섬에도 중요한 단백질이라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었기에 나는 오늘도 믿고 두 개 깨뜨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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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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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