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5月 25日
맑았다. 아파트 담벼락에도 길가에도 흔히 피어 있는 장미가 보기 좋았다.
사동, 오늘은 점장이 늦게 나왔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본부 일 때문에 나왔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인데 동생은 또 한바탕 싸웠는지 이제는 더는 못 살겠다며 이혼 도장을 콱 찍겠다고 했다. 근데 그냥 나가라는 김 서방의 무책임한 말에 어이가 없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인데 오 선생은 오후 늦도록 늦잠을 잤고 아래 저녁에 처가에 갔던 아이들은 염치없이 아침까지 해결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인데 용준이와 한학촌 배송 가기 전 백자산 곰탕 전문점에 가 곰탕 한 그릇 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인데 아주머니께서는 살코기로 하까요 잡고기로 하까요 하며 되물었는데 마! 잡고기로 넣어주소 했다. 오늘은 석가 탄신일인데 잡고기 넣은 곰탕 한 그릇 나왔고 천장에는 조성모의 ‘아시나요’ 흐르며 있었고 우리는 곰탕에 둥둥 떠 있는 소고기를 먹고 있었다. 오늘은 석가 탄신일인데 소가 나서 여물을 먹고 커서 도축장에 갈 때까지 이 음악을 들었을 거로 생각하니 도축의 칼날이 목을 앗아 갈 때도 ‘아시나요’가 흘렀고 들었다면 가슴 먹먹했지만, 점심은 먹어야 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인데 도로바닥에는 차들로 즐비했고 카페는 텅텅 비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인데 후배가 경영하는 화원 AW COFFEE 집에 다녀왔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인데 후배는 ‘선배님 홍시 주스 안 드셔 보셨죠. 이참에 한번 드셔보십시오.’ 하며 아르바이트에게 주스 두 잔을 만들어 내어드리게 했다. 오늘은 석가 탄신일인데 내온 주스가 맛도 꽤 있었지만, 더욱 볼만한 것은 왕 빨대라는 것을 물고 빨았다는 것이다. 오늘은 석가 탄신일인데 이탈리아 마피아가 생각나며 그들이 죽죽 빨며 뱉는 시가가 생각났다. 왕 빨대 잡으니까, 오늘은 석가 탄신일인데 왕 빨대 잡으니 마치 한 손 묵직한 데다가 제법 잡는 맛도 나는 것인데 당길 때마다 입안이 몽긋했다. 오늘은 석가 탄신일인데 말이다.
단지 18
우리집대문은까만철문이다.철문을열기까지는땅바닥에서무려스물한개단밟고올라서야한다.우리가아는숫자몇자쿡쿡누르면문이열리고우리가늘보는이불이며비개며밥그릇이며숟가락젓가락심지어땅바닥에흘린밥풀떼기까지반긴다.이집은며칠전에벗은옷도양말도러닝팬티까지너절하게뒹군다.앞으로입어야할옷도있으며가장가까운삶의지린내까지함께한다.등붙이고누우면이곳이천국인데눈뜨면까만철문열고나간다.다시닫으면숫자는잊어버려도잘만닫힌다.더낮은땅바닥향해스물한개단밟으며내려간다.언제들어올지모르는길을나선다.
비개=베개의 경상도 사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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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