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5月 12日
맑았다. 어제 자정까지만도 비가 왔었는데,
정오, 압량에 있을 때였다. 오 씨가 출근했다. 용준이가 커피를 뽑고 있었는데 오 씨가 한 잔 뽑아보라며 시켰다. 그러니까 오전에 왔던 손님이었는데 어떤 남자분이 뽑아주는 커피가 아주 맛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 씨께 물었다. 그러면 오 씨는 그간 어떻게 뽑았느냐며 했더니 거저 듬성듬성 담아서 꽉 누르니 쑥 들어갔다는 것이다. 조금 어이없었다만, 조금 넉넉하게 담아서 수북하게 오른 커피는 평탄하게 쓸고 난 다음 탬핑기로 꽉 다져야 한다며 다시 일렀다. 한 잔의 커피를 뽑더라도 꽉 다져서 뽑아야 함을 강조했다. 방금 뽑은 ‘용준이표 커피’는 아이스로 해서 직접 마셨다.
점심 먹고 봉덕동 카페 내부공사 보러 갔다. 설비업자 1명, 타일업자 1명, 문 수리공 1명 오셔 일하며 있었다. 여기 모두는 카페 주인장 이 선생께서 직접 불러 일을 하고 있었다. 현장에 들렀을 때는 현관문은 떼어낸 데다가 떼어낸 문은 산산조각 내었다. 새 문으로 교체했다. 타일 업자는 뒷벽에다가 크고 넓적한 하얀 타일을 바르고 있었으며 설비업자는 바닥을 커팅해서 상하수도배관을 놓았다. 내일 칠 할 것이며 모레 심야 작업으로 전기마감을 하겠다고 주인장 이 선생께서 다부지게 말씀 놓으신다. ‘정말 인테리어 별것 아니더라고요. 전체 한 사람에게 떼어주니 꽤 비쌌는데 개별적으로 불러서 하니 진작 이렇게 하면 될 것을 그간 괜한 고민했나 싶어요.’ 맞는 말씀이었다. 일은 이렇게 한 공정씩 떼어 하며 전체를 이룬다. 일은 역시 내가 직접 해야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후회도 없으며 일하는 맛도 누리니 이러한 맛을 누구에게 떼어준다는 것은 이왕 드는 돈 배움의 길을 저버리는 거라 안타까운 일이 된다. 참으로 잘하시는 일이라며 격려로 한 말씀 드렸다. (이러다가 인테리어만 전문으로 하는 일로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지 7 퍽
구르는 까만 동태에 굴러다니는 우유 팩 같은 것이 들어갔나 보다.
다시 경산 들어오며 터미널에 자리한 만둣집으로 가고 있었다. 전에 주문받았던 빙삭기를 가져다 드리기 위해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인데 아주 재밌었다. 그러니까 대충 부르자면 이렇다.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어떻게 하노, 시럽, 시럽, 시럽, 빼고 주세요.’ 참말로, 할 말 잃었다. 커피 전문점이 이리 유행이다 보니 노래까지 아메리카노다. 가사도 크게 와 닿는 그런 내용도 없다. 거저 아메리카노다. 그러니까 흔히 우리가 걸어 다니며 흥얼거리는 어떤 수준인 양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어떻게 하노, 어떻게 하긴 좀 사 먹고 다니자. 뭐 이렇게.
만둣집에 전에 주문했던 빙삭기 내려 드렸다. 이 집은 예전에 본점에 일했던 강 선생과의 친구 사이다. 만두 장사를 오래 했다. 만두 장사를 하게 된 것도 강 선생의 영향이 적지 않았지만, 자리를 옮겨 하는 것도 두 번째다. 이곳은 경산 시내며 터미널 옆이라 전에 있던 곳보다는 훨씬 괜찮다. 전에는 정평에서 했지만 힘들었던 거로 알고 있다. 오늘 가게 와 보니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약 세 평쯤 세평도 안 되어 보였는데 손님이 앉아 먹을 수 있는 자리는 없다. 만두도 모두 테이크아웃이다. 만둣가게 앞에는 가로수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있다. 키도 훤칠하며 굵기도 제법 굵어서 운치가 절로 난다. 만둣가게 앞에 들어내 놓은 찜통에서 만두 찌는 김이 모락모락 나며 있고 지나는 사람은 많으며 키 훤칠한 나무를 보고 있으니 이렇게 좋은 자리도 없어 보인다. 만두를 하지 말고 커피를 하면 더 낫겠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는데 테이크 아웃 카페로 하면 더 낫지 않을까!
단지 8
만둣집에는만두만있다.
김치만두고기만두야채만두주문했다.
나무젓가락도한네개달라고했다.
만두하나를밥상에놓고젓가락하나로
중앙에다가가로지르며꾹눌러
반딱자른모습을본다.
안에든소가삐져나왔다.
나무젓가락에도손에도입술에도
그소가묻었다.
커피한잔에깨끗이씻었다.
압량에 있을 때다. 코나 사장님께서 다녀가셨다. 윤 과장도 함께 왔는데 윤 과장은 혼자 오든 함께 오든 말이 적다. 그렇다고 금방 가버리는 사람은 아니다. 사장님께서는 공장에 여러 일 중 앞으로 포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공장 주위에 땅이 있으니 강릉에 ‘모 카페’처럼 공장형 카페를 하나 지을까 하는 생각이다. 실행에 옮길 단계는 아니지만, 여러 구상을 하는 건 사실이다. 그와 관련해서 자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자금을 생각하자니 은행 돈도 생각해야 하니 투자해서 기대수익을 누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다. 바깥에 돌아가는 경제사정과 커피 소비시장을 참작해서 선뜻 결정할 일은 아니다. 아무튼, 계속 증진해 나가시는 사장님 보니 아직도 젊다. 나에게도 격려로 적극적인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라는 말씀이 있었지만, 세금과 이자에 여러 수십 번 목이 날아간 패잔병처럼 멍하니 있었다. 거저 따뜻한 커피 한잔이 이상하게도 몸에 잘 맞는지 잔 비운 채로 잔에 얼룩만 짙었다.
오 선생은 자정이 지났지만 빵 굽는데 정신이 없다. 오 선생은 이제 나름의 낙을 찾았는가보다. 집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 굽는 빵의 8할은 재미다. 그러니까 판매용하고는 거리가 좀 멀다. 나는 그것을 지켜주어야 한다. 내가 글을 쓰듯이, 십 년 이상의 길은 적지 않은 세월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저녁 늦게 비가 내렸다. 일찍 손이 끊겼다. 본점 마감할 때였는데 성택군에게 한 마디 했다. ‘음 성택아 수고했네!’ 그랬더니 ‘손님이 있어야 수고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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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