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4月 18日
흐렸다. 때론 비 왔는데 그렇게 많이는 오지 않았다.
돈 생각하면 사람 마음을 옹졸하게 만든다. 옛 성인도 가진 것이 넉넉해야 예가 나온다고 했다. 예를 표하자니 가진 것이 없다. 어제 만나 뵈었던 처형도 오늘 만나 뵌 어머님 병원비도 모두 돈이다. 이런 와중에 거래처에 깔린 미수는 나를 불안케 하고 각 분점과 본점의 매출은 더욱 불안케 하고 포승줄 같은 은행 대출 이자는 더더욱 불안케 한다. 어느 것 하나 끄집어 놓고 생각해도 내 마음에 비수를 생각게 하고 살기를 느끼게 한다. 사회와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그 장본인은 누구인가! 정치, 그래 정치를 관심에 둔 일은 없으나 피부로 닿는 이 경제 심리에 정치를 생각 안 할 수 없는 처지다. 가진 자의 횡포 같은 것이다. 나는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라고 했던 정치인, 말이다.
이른 아침, 아침을 먹으려니 밥솥에 밥이 없다. 어제 아침에 해놓은 프라이팬에 치즈 듬뿍 넣고 비벼 놓은 식은 밥이 꾸덕꾸덕 굳었다. 숟가락 들고 한 숟가락 먹었는데 새콤했다. 맛이 이상해서 입안에 넣은 것을 뱉었다. 사동 가는데 클래식은 제 홀로 눈물 흘린다. 35세 산 볼프강 아메데우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미세하게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는 심장에 칼을 대며 죽죽 긋는 것 같았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무한한 상상에 빠뜨리는가! 사동에 시재를 맞춰놓고 다시 본점에 가, 문화강좌 소개를 했다. 교육생 한 분 질문 있었다. 고지혈증 있는 사람도 커피가 괜찮은지 물으셨다. 선생께서는 아주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신다고 했다. 단 것보다는 드립을 추천해드렸다. 커피는 몸에 그리 나쁜 음료가 아님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즐거움과 고통은 천당과 지옥이다. 천당과 지옥은 내세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에 있다. 이는 뜨거운 물에 온전히 삶은 달걀과 전자레인지에 넣어 달구다가 빵 터진 달걀의 차이다. 그러니까 즐거움은 완벽한 문장이며 온전한 달걀이며 상처받지 않은 동심 어린 마음이다. 지옥은 껄끄럽기 그지없는 비문과 풍비박산이 난 달걀 껍데기와 사악한 도깨비로 점철된 세속적 마음이다. 천당은 깨끗한 행주로 축축한 그릇을 닦더라도 때로는 뜨거운 태양 빛에 널어 말릴 수 있는 여유며 흠 많은 구두라도 잘만 걸어 다닐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지옥은 구토와 각종 변과 온갖 구정물을 닦은 지울 수 없는 걸레와 같은 것이다. 천당은 아우토반이며 위기를 교묘히 빠져나가는 드라이브 기술이며 쫓고 쫓기며 뒤쫓는 수많은 군사를 모는 수레의 긴장이다. 지옥은 제한속도로 규정된 고속도로며 귀싸대기 후려갈겨도 꾸벅꾸벅 조는 눈꺼풀이다.
병원에 다녀왔다. 어머님 모시고 고향 땅 어느 내과에 들러 진찰받았다. 어머님은 몇 년 만에 들렀지만, 의사께서는 알아보셨다. 세상이 아주 편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예전은 병원 가려면 시내 중심가에 들려야 했는데 요즘은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읍내에 가도 개인병원이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공복에도 당 수치가 500이 훨씬 넘는다. 의사께서는 여러 가지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옆에 있었는데 당뇨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를 새삼 느낀 하루였다. 어머니는 당뇨 합병이 이미 진행 중이시라 별다른 특별한 처방 같은 것은 없다. 의사께서는 진찰하시며 바로 인슐린 주사 한 대 놓는다. 어머니는 이 주사도 맞지 않으려고 했다. 의사께서 내려준 처방 약 들고 어머님 모시고 집에 태웠다. 부모님 모두 당뇨가 있으니 나도 언젠가는 당뇨가 오겠지. 의사께서는 뱃살 줄이고 단 것을 피하라 했다.
조감도에서 음악회 개최했다. 올해 들어 가장 조용한 음악회였다. 언제나 조용했기에 그리 부담 가는 것도 아니었다. 연인이지 싶은데 두 팀과 가족인 오 선생과 두 아들, 직원도 앉아 감상했다. 단원은 ‘비올라 다모레’였다. 현악기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라고 했는데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비교해도 크기는 비슷하다. 소리는 바이올린보다는 무겁게 느꼈다. 연주자는 남자 한 분과 여자 네 분이었다. 그중 사회를 보신 분은 김천 시립악단 소속이다. 손님 중에는 압량 단골손님이었는데 부부과 함께 오시어 감상했다. 전에 압량에서 커피 만들어 드리며 사동 조감도를 소개한 적 있다. 손님께 음악회 가지니 시간 괜찮으시면 한 번 오셨으면 하고 말씀드린 적 있다. 신혼이다. 남자 분은 지난해 연말 두 번 중국에 출장 다녀온 적도 있다. 출장 가기 전 카페에 오셔 인사 주셨다.
붕정만리 인생길 먼먼 구만리
펼쳐날면 다다른 어둔 저승길
지난 자국 밟으며 걸어 넘는 길
바른 인생 뜻이면 붕새 같은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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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