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녹화 중
딱 걸렸다
경비실 곁 백목련
봉긋, 열여섯 말 못할 비밀을 밀어 올리려다가,
녹색 울타리에 기대 서있던 넝쿨장미
슬쩍 담을 넘으려다가,
104호 발코니 밑에 사글세 살던 암고양이
새끼 세 마리 앞세우고 야반도주 하려다가,
딱!
광각렌즈를 끼워도 어쩔 수 없는 사각지대
엉켜 떨어질 줄 모르는 단골손님, 일분일초가 아쉽다
강심제로 버티는 가로등 붙잡고 하소연하는
703호 아저씨를 끝으로 인적이 끊긴 밤은 심심하다
단지 내로 통하는 모든 길도 심심하다
시계바늘도
심심해, 심심해, 되새김하다 깜빡했더니 새벽 네 시
빗속을 뚫고 오느라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새날, 눈꺼풀 없는 조리개에 달라붙는다
수만 마리 혀 없는 짐승의 아우성, 우레가 친다
날선 빗발에 보도가 잘게 토막 쳐진다
깍두기처럼 썰어진 보도블록, 곳곳에 찢어진 어둠이 고인다
3, 4호 라인에서 나온 골프우산이
팅팅 불은 어둠의 잔해를 밟고 새벽길을 나선다
검은 우산과 잘린 발목만 보았다
비오는 날이 공치는 날
다섯 시면 어김없이 연장가방 들고 나오던
305호 영감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굳은살 박인 목수의 손은 쉬어도
단지 내 CCTV 녹화중이다
각질 같은 겨울을 X표로 하나씩 뭉개버린,
양수 터진 봄이 산통(産痛)을 겪고 있다
어금니 앙다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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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을 동인 [동인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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