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2月 25日
황사로 흐렸다.
서애 선생의 ‘징비록’을 읽고 느낀 점 몇 자 적는다. 조선은 100여 년 이상 태평성대였다. 그러니까 그간 전쟁이 없어, 그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 일본은 풍신수길이 서양에서 들여온 조총과 용맹한 장수로 이미 전국을 통일했으며 그 막강한 힘을 조선으로 돌렸다. 부산 동래성을 함락하고 서울 한성까지 오르는 데 불과 10여 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전에 조선은 일본을 살피기 위해 사신을 보낸 적도 있다. 여론이 엇갈린 상황 속에서도 서애선생의 노력으로 이루었지만,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전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무고한 백성이 도륙되었고 유능한 인재(문신과 무신, 특히 무신)가 오해와 잘못된 간언에 잃었다. 국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중국 지원병을 요청하는 일과 지원병으로 온 명나라 군사의 치밀함이 없는 싸움은 인명만 손실되었다. 특히 비 오는 날 중국 사신이 머무는 처소 앞에서도 상면하기 위해 두 손 받잡고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서애선생은 얼마나 비굴했을까! 조선을 두고 일본과 중국(명나라)과의 외교 문제와 힘없는 반도국가의 처세를 문장 곳곳 읽을 수 있음이다.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인품과 업적도 간략히 적어놓았다. 전란에 백성의 굶주린 표현을 적어놓은 부분은 특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부자(父子)가 부부(夫婦)가 서로 인육으로 보이고 처참히 죽어가는 장면, 거리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말이 죽어서 썩는 냄새로 진동하며 그나마 남은 사람은 살기 위해 솔잎가루와 쌀가루를 10:1의 비율로 물에 타서 마시는 것도 차마 읽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읽은 소감을 어제 일기로 적으려고 했으나 밤 깊어 오늘 적어놓는다.
오전 강 선생과 대화 나누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말이다. 이제는 강 선생께서 내린 커피도 얼마 못 마실 것 같다. 그러니까 창업에 관한 얘기를 듣고 또 그에 대한 노파심이면 노파심이겠지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곳을 지목하여 창업하려는 것이 아니라 분점 중 하나를 인수하여 일을 시작하려고 했다. 이유는 창업비 부담이 첫째며 각종 경비가 둘째며 기존 카페 애용하는 고객도 이유라면 들 수 있겠다. 어차피 새로 인수하게 되면 단골은 새로 바뀌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카페가 있다는 인지도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무엇이든 새로운 곳에 정착하여 새로이 만들어 가는 것은 모두 그 이상의 힘이 들어간다. 다음은 인수 시기였다. 될 수 있으면 여름 오기 전, 4월이 가장 적합한 시기가 아닐까 하며 얘기했지만, 강 선생은 그렇지 않았다. 가을이나 겨울에 일을 시작하려고 했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도 극구 반대했다. 왜냐하면, 가을 지나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이는 커피 업 하는 이상 계절경기 타는 시점이며 심적 부담까지 더욱 가중되어 일의 어려움을 스스로 좌초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름이면 나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장마 때면 손님 없기는 마찬가지만 더위는 카페를 애용하는 분께는 피할 수 없는 좋은 피난처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한 번씩 오르는 매출호조는 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에 마음을 늘 편히 할 수는 없어도 부담감을 약간 줄이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에 사기가 얼마나 중요한가! 어제 징비록을 읽었지만, 조선은 한 번 싸워보지 못하고 한성을 십여 일 만에 내어줬다. 잘 정비되었다고 하는 군사도 일본 군사를 보자 줄행랑치기 바빴다. 장사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가게 경영도 전쟁이다. 주인장이 사기 가짐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창업은 어려운 것이지만 일은 스스로 해나가는 것이라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만큼 재미가 있다. 카페 이름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디**’으로 하겠다고 했다. 이미 강 선생의 자가 건물에 임대 놓은 그 카페 이름도 실은 ‘디**’이다. 나의 처지로 보면 마이너스다. 교육과 본점장 그리고 본부 일까지 도맡아 하신 강 선생이다. 상호를 달리함으로써 생기는 손실과 실익은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네트워크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인데 겉으로 보면 동호동의 가게와 경산과는 조화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어느 한 곳이 주축이 되어야 하지만 그 과정까지는 어렵다. 상호를 바꾸는 것은 대단히 위험을 무릅쓰는 것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상호는 고객과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포장 용기에서부터 안의 내용물까지 모두 믿음을 부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진심 어린 건투를 빈다.
앞에 본점과 분점의 관계에 관한 일을 약간 언급한 게 있어 사족으로 밑에 달아놓는다.
모든 분점이 본점에 잘 따른다면 분명 일의 효력은 대단히 높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관계가 묘연해지고 서먹해진다. 또 그것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하며 나중은 분쟁까지 일어나니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그래서 분점을 내는 것도 심중히 해야 하며 돈에 앞서는 결정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상호가 같은 분점이 아니더라도 일반 개인 카페라도 얼마든지 본점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업체는 많다. 더욱이 매출이 더 나은 곳도 많으며 본점과 상호협조 하에 시장을 이끄니 얼마나 복 된 일인가! 지금 생각하면 분점의 폐단으로 생기는 고통이 분점을 냄으로써 얻는 실익보다 크기 때문에 직영점을 운운하며 여태껏 일을 해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모든 분점을 통틀어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분점은 100% 물품 애용과 본점 지시사항을 그대로 잘 따른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나는 많은 일을 했다. 기계가 노후 되면 파는 것이 아니라 임대로 드렸다. 굳이 기계를 팔아 수익을 따로 챙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판매가 오히려 나를 더 도왔기 때문에 도움을 드린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또 맞는 말인지는 나 스스로 검정한 것도 아니라서 조심스럽게 적어놓는다. 그러니까 상표효력이 발생하려면 월 매출 최소 1억은 넘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 카페리코만 보면 이미 상표효력은 발생한다고 보아도 된다. 조감도 상표는 그에 못 미치지만 나름으로는 카페리코 본점 직영점이라는 타이틀을 걸으니 그나마 국물이라도 떨어지는 게다. 이렇게 경영에 관한 나름의 이야기를 기술해 놓는 것은 후임자가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집안에 직영점이 몇 개 있다 보니 이것도 붕당이 이루어진다. 참 재미있는 현실이다. 압량은 매출이 없으니 누구도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본점과 사동은 처지가 다르다. 직원의 왕래는 없지만 일하는 관리인은 이곳저곳 상황을 얘기 안 할 수는 없어 그 말에 서로가 불편하게 했으며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생긴 것 같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정오, 서 부장과 함께 기계 설치 다녀왔다. 한학촌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 월드컵대로 연장선 삼성현대로 끝자락이다. 도로변 복숭아 밭 위에 집 한 채 예쁘게 지은 것 본다. 짓고 있는 건물 옆에는 현수막으로 임대라며 분명히 한다. 운전하며 서 부장께 한마디 했다. 참! 멋진 곳에 집을 지었다. 양지바른 대로변에 이렇게 지어놓았네! 하지만 부러울 게 하나도 없네! 모두 짐이네! 했다. 모든 것은 경제 흐름에 있지만 저만한 가치가 있기에 투자를 하며 또 입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경쟁에 어느 종목이든 피해갈 수는 없다. 진정한 투자가는 저렇게 참한 곳에 예쁘게 지은 건물에 임대로 내놓는 업자다. 그러고 보면 이천이백 년 전의 사기를 썼든 양반 사마천이 생각난다. 사마천도 화식열전에 분명히 했다. 기회를 노리는 자만이 진정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회는 때를 잘 가려서 물건을 내놓는 것이라 했다. 매일 노동으로 밥벌이하는 사람과 투자로 시기 적절히 운영하는 사람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시간과 노동을 한꺼번에 쓰는 것과 별도로 쓰는 것과 배로 쓰는 것은 차이가 있다.
본점에서 점심 먹었다. 서 부장이 찜닭을 샀다. 호! 진짜 맛있게 먹었다. 서 부장, 강 선생, 실습생 이 씨, 그리고 나 이렇게 앉아 먹었다. 커피 배송 있었다. 분점 정평, 사동, 교회, 사동 직영점은 서 부장이 다녀왔다. 병원은 함께 갔다. 점장님 만나 뵙고 인사드렸다. 커피 배송에 관해 몇 가지 부탁했다.
花
딱딱하고 반듯한 꽃을 보았다
그 속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바람길 바르자면 꽃길 봐야 해
모든 꽃은 거저 핀 꽃이 아니다
서애 류성룡 선생께서 쓰신 ‘징비록’은 반듯한 꽃이다. 그 안의 내용은 읽지 않은 사람은 전쟁의 처참한 상황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읽어도 그 상황이 눈에 선하며 치가 떨리는데 실제 상황은 오죽하랴! 서애의 경험이 고스란히 묻은 책 ‘징비록’을 두고 쓴 시다.
커피를 좋아하고 즐겨 마시면 안 좋은 것도 있다. 장이 민감해지고 화장실이 급하다. 먹은 것이 식물성으로 채웠다면 그나마 덜하다. 고기 먹은 경우는 더욱 심한 데 마치 장마철에 도랑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그 소리가 날 때마다 눈은 번쩍 뜨이기도 한다. 한 번씩 옥죄는 듯 아랫배는 곧 화산폭발 직전의 상황과 비슷하며 순간 하늘은 노랗게 된다. 화장실이 멀거나 또 가까이 있어도 곁에 사람이 있는 경우는 굳이 참아야 하는데 다리가 젓가락처럼 곤두서기도 하며 묵직한 바늘이 들어앉은 것처럼 고통이 따라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때는 주위 사람도 꽤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저기요 아직 말씀이 덜 끝났나요? 곧 마감이라서요.” 조그마한 가게, 손님 나가면 곧장 문 걸어 잠그고는 캥거루처럼 화장실로 간다. 바지를 내리는 순간까지도 끓는 냄비 뚜껑을 억지로 누르는 것 같아서 꽤 힘 쓰이는 일이다. 하얀 변기통에 앉으면 아! 화산폭발도 이런 것도 없으리라! 소리는 경운기 시동 거는 것과 같고 경마장에 수많은 경마가 한꺼번에 뛰쳐나오는 것과 같아서 보는 관중도 놀랄만하다. 하지만 그 시원함은 한 여름에 떨어지는 폭포수에 있는 것과 같아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음이다. 압량 마감 볼 때 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아까 생뚱맞게 잘 먹지 않는 점심이 문제였다. 닭이 저 스스로 놀라 일제히 뛰쳐나왔다.
하나를 보내야 진정 또 하나의 참된 맛을 본다. “징비록”이 가고 “장자”가 왔다. 장자를 읽으면 근심이 사라졌는데 강가에 핀 하얀 억새꽃이 태풍에 하나같이 쓰러져 누운 것과 같아서 책 읽는 내 자세 또한 의자 하나 당겨서 발을 젓가락처럼 뻗고 등을 쓰러진 억새꽃처럼 죽 기대어놓고 한 손에 책을 얹고 큰 돌부리에 걸린 수레 몸통처럼 바퀴만 헛돌 듯 눈만 돌리고 생각은 양떼구름처럼 많아서 흐뭇하고 절로 쓰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이다. 사동에 잠시 머물 때였다.
드라마 ‘징비록’에 이런 장면이 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에게 묻는다. “고니시 아직도 기리시탄(천주교)을 믿나”, “아닙니다. 전하께서 지우라고 명하실 때 제 마음에서 말끔히 지웠습니다.”,“ 그래 쉽지 않았을 텐데, 다행이군. 조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것도 잊지 마라”, “예”, “나가봐”, “고니시 저 녀석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어 신념은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야 차라리 힘들지만 애쓰고 있다고 했으면 믿었을 텐데.”
그랬다. 산꼭대기에서 내려 보는 것과 산 밑에서 올려다보는 것과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우리는 그래서 산 위로, 위로 자꾸 오르려고 하는 것이다. 산 위에 올라와 보면 안다. 마을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마을과 마을이 붙어 있다는 것도 보인다. |
|
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