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3月 31日
오전 꽤 흐렸다. 오후 잠시 비 왔다.
본점에 커피 교육이 있어 들렀는데 낯선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년여 동안 머물렀던 강 선생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었다. 날씨까지 끄무레하다 보니 본점이 꽤 썰렁했다. 최 선생과 동원이가 나왔다. 10시 30분 교육생, 권 선생께서 오시었다. 권 선생님은 나보다는 10년 위였다. 토요 문화 강좌로 처음 만나 뵈었지만, 이렇게 정식 교육으로 다시 만나 뵐 줄은 미처 몰랐다. 연세가 좀 있으시니 교육은 천천히 진행할까 보다. 오늘은 커피와 글과 마케팅에 관해 이야기했다. 교육하며 했던 말이다. 말과 언어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강의하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친구와 아니면 타인과의 서로 나누는 말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말은 잘 사용하면 거저 본전에 가깝다. 우리가 말을 잘 사용했다 하더라도 뒤돌아서서 생각하면 또 뭔가 있는 것 같은 느낌 들 때가 있다. 그러니까 이 언어도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아예 치고 박고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수많은 말을 뱉어 가며 사는 것(실은 이렇게 사는 것도 정은 든다. 정들면 그러느니 하며 사는 것이다) 아니면 거저 용건만 간단히 하며 자주 인사만 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바쁜 생활에 일기 공부 최고네
삶 문학 사업까지 곁들어 보네
하루 지나면 잊어 꼭 적어 두세
미치지 못한 용량 덤으로 갖네
정오 좀 지나, 청도에 다녀왔다. 서 부장과 함께 갔다. 주문한 커피와 다른 부자재를 챙겨서 가는데 문자가 뜬다. ‘본부장님 물통에 물이 새요?’, 이것저것 토를 달려다가 말았다. 안 그래도 내려가는 길이라서 들러서 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물통은 온수 통을 말함인데 그간 오래 쓰면 밸브가 느슨해서 그 새로 새는 일이 잦다. 현장에 들러보니 점장께서는 작년 10월에 샀다고 했는데 밸브를 자세 들여다보니 석회가 하얗게 끼었다. 석회 낀 것으로 보아 작년에 산 것은 아니었다. 하여튼, 물 새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어 차에 공구 통 들고 와서는 스패너 끄집어낸다. 나는 스패너 두 개 들고 하나는 몸통을 잡고 하나는 툭 튀어나온 밸브를 거머잡고는 하나는 역으로 하나는 정으로 서로 비틀며 꽉 조였더니 물새지 않았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한 방울씩 새듯 이 물통도 꽤 쓴 것임은 틀림없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재작년에 산 것이었다. 아무튼, 물새지 않게 꽉 조여 놓았다만, 물통 바꾸는 것도 생각은 가져야겠다.
청도에서 밀양에 간다. 상현이가 운영하는 에르모사다. 커피 배송이었지만, 마침 서 부장과 점심도 함께 했으면 했다. 에르모사는 해를 등지며 자리하고 있어 햇빛은 볼 수 없으나 앞에 탁 트인 자연경관에 햇볕을 간접적으로 많이 볼 수 있어 좋다. 오늘은 이곳 주인장 어머님도 계셨는데 가게 앞에 골동품 상회 주인장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얼마 전에 새로 내부공사를 했다. 아주 고풍스러우면서도 18세기 유럽 왕실에 온 듯 느낌 들 정도로 분위기를 갖췄다. 상현에게 여러 물었다. 새로 공사해놓고 나서는 손님 상황은 어떤지 물었더니? 아! 확실히 다릅니다. 지난달은 총매출 이천은 훨씬 넘겼어요. 한다. 우리는 고 문짝 떼어놓은 자리에 앉아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조갯살 듬뿍 들어간 스파게티를 서 부장은 넉넉한 새우 스파게티였다. 우리는 메뉴판 보며 음식을 고르려고 했으나 상현이는 먼저 이런 음식이 있다며 추천하는데 솔직히 무엇을 고르려는 나의 번잡한 생각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러니까 조갯살 듬뿍 들어갔다고 해서 맛이 특별히 있을까마는 거기다가 매운 고추를 맛깔스럽게 곁들여서 칼칼한 것이 괜찮을 거라며 하는 거였다. 나는 어쩐지 스파게티 하면 느끼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훅 가는 거였다. 상현이는 서 부장께도 음식을 추천했는데 소고기 관련 스파게티, 기타 여러 종류를 죽 나열했지만 나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다. 서 부장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방황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어물쩍거리다가 선택한 것이 넉넉한 새우살 스파게티였다. 어쨌든, 빨리 나왔으면 하고 앉았는데 상현이는 순서대로 하나씩 접시를 내놓는다. 수프를 가져왔을 때 한 숟가락 들었지만, 몇 숟가락 채 들지는 못했다. 맛은 있었는데 말이다. 상현이는 감자를 갈았다고 했다. 거기다가 휘피와 뭐를 섞었다고 했는데 한술 뜨는데 그만 흘렸다. 그다음은 채소 샐러드가 나왔다. 소시지도 들어 있었어, 이거 한 접시만 해도 영양가는 꽤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다음은 본 마당이었는데 스파게티 가져왔다. 혹시나 해서 서 부장께 물었다. 아까 너무 뜸들임에 마음 들지 않으면 바꿔 먹으려고 했더니 그냥 먹겠다고 한다. 나는 질컥질컥 한 포크씩 말아 올렸고 조개껍데기 잡고 조갯살 후벼 파면서 하나씩 끄집어내어 먹었다. 베이컨도 간혹 있어 그런대로 맛은 괜찮았다. 다 먹고는 피자도 한 판 사서 경산으로 왔다.
정평에 들렀다. 오늘, 소파 들어낸다고 했다. 천갈이 하기 위함이다. 분점 영업으로는 어제가 마지막이었으며 새로 인수한 강 선생은 새로운 상표로 영업 시작하는 첫날이기도 하다. 가게는 텅 비웠다. 벌써 의자는 공장에서 다 싣고 간 상황이었고 군데군데 청소하느라 강 선생과 강 선생의 남편께서는 아주 초췌한 모습이었다. 조그마한 가게일 것 같아도 청소할 것이 많아 보였다. 어려운 것은 없는지 본부에서 지원할 것은 없는지 해서 들렀지만, 이모저모로 바쁜 모습만 보고는 다시 본부로 와야 했다.
대학 친구 어머님께서 세상 달리하셨다. 오늘 아침에 부고를 읽었지만, 서울서 일하는 친구들과 카톡문자 주고받음에 오후 7시 다 함께 보기로 했다. 문상 온 친구를 본다. 정말 몇 십 년 만에 본 친구도 있다. 늘 문자만 안부로 주고받다가 이렇게 보니 예전이나 별다른 모습도 아니었다. 한 친구는 살이 좀 찌기는 했지만, 그대로다. 그러니까 말이나 모습이나 전체적인 느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모두 사느라 힘든 생활을 주고받으며 얘기 나누었다. 이렇게 모여 얘기 나누는 우리는 벌써 사십 중반이 넘었다는 것이다. 하루, 아니 한해가 하루처럼 가는 세대다. 어떻게 뭘 했는지 모르게 세월만 갔다. 그나마 사업하는 내가 나은 거 아닌가 하며 생각도 든다. 자화자찬일지는 모르나 친구들 직장생활 들으니 암담했다. 인지 무엇을 도모한다 해도 경쟁사회에 어떻게 뚫을 것이며 그렇다고 직장은 마냥 안전한 것인가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대학졸업자로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이다. 받을 만큼 받는 월급이라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겪는 친구의 모습은 모두가 쉬운 일만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조감도에서 커피 한잔 했으며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친구를 동대구역까지 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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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