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3月 01日
오전은 맑았다가 오후 흐렸다.
내가 앉은 자리는 철재로 만든 1인석 소파다. 근 육 년을 썼는데도 튼실하며 천 조각 하나 헤져 있지 않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래 사용했다. 내가 읽는 ‘세종대왕 실록’ 책을 얹은 책상은 만든 지 육 년이 된 탁자다. 원목이라서 빛바래지도 않고 오히려 쓰면 쓸수록 나무의 멋이 난다. 내 등 뒤에는 에스프레소 기기가 있다. 커피 생각나면 바로 일어나 뒤돌아서서 커피 갈며 포타필터에 담아서 탬포로 누르고 기계에 장착하며 한잔 뽑으면 된다. 앉아서 우측을 보면 서재인데, 족히 한 길은 충분히 넘고 두 길은 좀 못 된다. 내가 읽은 책으로 가득히 채웠다. 밑바닥에서 천정까지는 약 8m 높이라 공간이 훤히 뚫려 있어 위에서 아래를 보면 아득하고 밑에서 위로 보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어 겨울에는 조금 산산하고 여름이면 시원하다. 이렇게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약간 춥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화목 난로를 옆에 하나 둘까 싶어도 생각만 가지며 만다. 오히려 따뜻하면 책 읽는데 산만하고 졸리다. 마침 또 세종 때 정승을 지낸 여러 선비의 삶을 읽으니 공명하며 검소하며 하나같이 청빈하여 그 덕망이 하늘에 이르는데 읽으며 나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본점에 앉아 종일 책 읽었다.
오전, 강 선생과 커피 한잔 마셨다. 본점에 머무는 것도 이제 길면 한 달이다. 다음 달이면 가게를 직접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성공을 빌어드렸다. 커피 일, 새로 시작하는 것에 희망을 심어주고 복 돋웠다. 오랫동안 본점장으로 머물러 주셨는데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또 마음도 아픈 일이다. 그간 정이라면 정인데 이렇게 마음 맞추어 함께 일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본점으로 보면 더없는 덕이었다. 강 선생은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급하게 되었다. 사람을 충원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오전, 오 선생이 본점에 들리기에 이 일을 이야기했다. 본점에서 교육받아 나간 사람은 많지만 마땅한 사람 없어 고민했다. 그래서 예전 모 점에서 일한 모 씨와 어제부로 문 닫은 분점 모 점의 모 씨가 어떤지 이야기했다. 한 분은 우리 교육생이지만 한 분은 그렇지 않다. 이참에 교육에 관한 것도 서로 이야기 나누었다. 토요일 갖는 문화강좌는 성공적인 아이템으로 정착했다. 물론 시대가 그렇게 가버렸기 때문에 무료강좌로 커피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강좌를 통해 많은 사람이 커피를 제대로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식교육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은 카페가 많이 생긴 것과 커피만 전문으로 교육하는 업소가 생각보다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뒤질세라 개인 카페도 덩달아 앞 다투어 교육에 뛰어들어 시장을 더 활성화 시켰다. 그러니 커피 교육의 질적인 면을 내세워도 그만큼 관심 있는 분을 모집하는 것은 한계였다. 그러니 교육비를 낮춘다고 더 오는 것도 아니니 거저 지금 수준으로 그렇게 가자는 것이었다.
커피 창업은 주로 커피를 가르치는 교습소에서 배워 나가 이루는 경우보다 커피 업소에서 배워 나가 창업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바리스타 자격증 제도가 도입되었다지만 창업에 필수조건이 아니라서 창업자는 굳이 자격증이 없어도 커피를 뽑고 만들 수 있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다. 자격증이 필요한 이유는 이렇게 많이 차려진 커피집에 운영하시는 장께서 직원채용에 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며 더 나아가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다는 것이 그 취지다. 이러한 자격증제도가 마치 고수익을 보장하는 듯 그렇게 믿어서도 안 되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알아보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바리스타의 실제 받는 수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최저임금제보다는 낫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많다. 커피집 경영도 경제 원리에 따라야 하기에 주인장의 마음과 잘 맞춰야 하며 함께 동조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사는 동네는 경산이지만 이곳도 업소마다 일하는 사람이 많아서 기회가 되면 모두 창업하고 싶은 이가 많고 또 미래에 다만 창업의 목적으로 일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어느 곳 할 것 없이 커피집은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친구여 커피 한잔 만들어 봐요
누르고 찌든 세상 만사 떨쳐요
잔에 참된 그리움 담아 보아요
그리 짧은 하루가 일도 아녀요
친구여 커피 한잔 얘 여기 있소
튼실한 자리 앉아 세상 보아요
구수한 삶의 얘기 자 놓아 보소
부질없는 세상 사 떨쳐 버려요
친구여 커피 한잔 마시며 가요
뭐 그리 바빠 어서 서둘러 가나
가는 길 재촉하면 넘어 지느니
어깨동무 나란히 즐기며 가요
친구여 커피 한잔 함께 느껴요
얼마나 살 거라고 그냥 가나요
어차피 가는 세상 쉬었다 가요
따끈한 오른 김에 마음 녹여요
사동은 오 선생이 마감 했다. 본점은 동원이가 했다. 본점은 낮보다는 밤이 분위기 더 좋다. 약간 어두운 공간이 오히려 이 추위를 따뜻하게 감싼다. 훤히 뚫린 공간에 앉아 왼쪽 창가를 보면 밤하늘에 별이 보인다. 그 창가 아래 무심코 바라본 화분, 호! 돈 나무에 싹이 트고 있었다. 6년도 넘은 화분이다. 동원이와 커피 한 잔 마시며 있었는데, 왜 돈나무인지 물었더니 아무 말이 없다. 개업식 때 많이 쓰는 화분으로 잎이 동전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일세! 바로 앞좌석 소파 위에는 역동적인 ‘흰 소’ 그림 한 장 액자가 걸렸다. 그래서 저 그림도 물었더니 의외였다. 저 ‘흰 소’ 그린 화가 이 중섭 선생을 간략히 얘기해 주었다. 그림 또한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니 그림에 엮인 이야기도 덧붙여 해주었다. 카페에 관한 얘기도 했는데 카페 장이면 예술, 문화, 정치, 경제, 역사 등 박식하게 알아야겠지! 하며 한마디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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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