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3月 13日
흐렸다.
Note
하얀 종이 펼치면 티 없는 맑음
덮으면 까만 우주 아련한 불빛
꼭지 하나 두 꼭지 비누 한 방울
뚝뚝 따며 마시며 스미는 하루
아침 미용실 다녀왔다. 머리 깎았다. 본부에서 보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이곳 미용실과 세탁소다. 미용실보다 세탁소에 더 자주 간다. 그러니까 미용실은 한 달에 한 번 가고 세탁소는 한 달에 두세 번은 가는 것 같다. 미용실 아주머니는 나보다는 한 살이나 두 살쯤 많아 보인다. 이 집에는 아이가 둘 있는데 모두 대학생이다. 오늘은 절에 다녀온 이야기와 아이 이야기를 한다. 대학생 둘 공부시키려니 애가 쓰이는가 보다. 요즘 아이들은 대학 졸업해도 취업하기 어려워 부모도 걱정이며 아이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중압감에 시달린다. 나는 아이의 교육에 관해서 한마디 했다. 대학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다. 대학이라는 사회는 이상만 심는 것 같아서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 깎고 가려다가 탁자 위 신문이 보였는데 영남학파 퇴계선생과 남명선생에 관한 기사가 있어 이것만 좀 보고 가겠다며 잠시 앉았다. 그러니까 아주머니께서는 믹스커피 한 잔 주신다. 원두커피 드시다가 이것 드시겠어요? 한다. 괜찮습니다. 믹스도 꽤 좋아합니다. 요즘 드라마 ‘징비록’에도 관심이 가서 잠시 읽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은 퇴계의 제자다. 정치에 크게 관심 가는 것은 아니지만 두 선생의 함자가 보여 읽었다.
오후, 대구, 병원, 옥곡, 진량, 청도에 커피 배송 있었다. 모두 서 부장이 다녀왔다. 도자기 이 씨 가게에도 다녀왔다. 제빙기와 하부 냉장고 주문 있었는데 하부 냉장고가 도착하지 않아 제빙기만 설치했다. 압량에 머물 때 전화가 왔다. 제빙기 가격과 하부 냉장고 가격이 인터넷과 비교하니 몇만 원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당황스러워서 말이 헛 나가고 말았는데 이랬다. 그러니까 인터넷은 아무래도 모터가 하나 덜 붙었을 거예요 했더니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했다. 그래도 얼음이 나오느냐고 다시 물었는데 당장 얼음 나오는 데는 지장이 없으나 나중에는 문제가 많아요. 했다. 이 씨가 원하는 가격과 다시 절충해서 맞춰 드렸다.
압량에 머물 때 강 선생께서 오시었는데 그간 본점에 일하면서 관심과 배려가 적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문제는 오 선생과 나와의 대화 부족으로 생긴 일이다. 다음 달이면 창업으로 나서는데 오 선생의 관심과 배려가 적다는 이유를 들어, 오 선생께 문자를 넣었더니 전화가 왔다. 무슨 말이냐고 하기에 조금 더 신경 써 달라는 말을 했는데 오히려 내가 문제라며 한마디 일축한다. 잠시 머리가 지근거렸다. 본점의 일이 이제는 너무 걱정되었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지나는 차만 계속 바라보며 있었다.
압량 마감하고 본점에 머물렀다. 성택 군이 드립 한잔 해주었는데 얼떨결에 마시다가 그만 입천장 데고 말았다. 화들짝 놀랬는데 그 순간 터키의 속담*이 지나갔다. 커피는 바늘처럼 뜨거웠으며 떡국처럼 부드러웠고 입술처럼 달콤했다.
문
경첩 풀린 문 겨우 붙어 있었네
찍 찌그덕 문 여니 또 흔들리네
세상 다 그대론데 문 흔들리네
이미 지운 문 열어 볼 수 없었네
각주]
*터키 속담
커피는 지옥처럼 검어야 하고, 죽음처럼 진하며,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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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