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4月 07日
사동 가는 길, 베토벤 운명 듣다. 라디오 음악이다. 어느 특정한 곡을 듣고 싶어 듣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들려오는 음악도 꽤 괜찮다. 예술가는 진정 멋있는 삶을 살았다. 얼마나 북받쳐 오는 전율인가! 가슴이 북처럼 울리는 아침이었다. 눈물 팍 쏟는다. 누구나 빚을 갚고 싶어 하지 빚이 더 쌓이며 가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저 여린 잎사귀 틔우고 꽃샘추위 견뎌야 하며 못 견디게 아픈 바람을 이겨야 하고 적당한 것이 없는, 이 세상 삶을 살아야 하는 저 나무가 슬픈 아침, 도화 꽃은 뭣이 좋아 저리 피웠노!
염소 탕
사각쟁반은 생강 있고 마늘 있고 정구지 있고 김치와 깍두기 있고 절인 고추 있었네. 바로 뚝배기와 밥 한 공기 왔네. 사각쟁반은 생강 있지만, 생강은 없네. 생강은 아까도 전화 왔네. 본부장님 어디 계세요? 아 네 잠깐 외근 나왔습니다. 어디세요. 저도 바깥에 있어요. 저녁에 커피 한잔 할까요. 네 늘 변함없는 사회 친구네. 일 많으면 연락 없고 연락 오면 일없다고 보면 되네. 어느새 커피 꽤 관심이었다네. 그러니까 커피 볶고 갈고 뽑는 일 아니라 커피와 더불어 맺는 일 말일세. 사각쟁반은 마늘 있지만, 마늘은 없네. 정말 매운 것은 따로 있네. 바쁘기 그지없어 늘 관심 밖이라네. 낮이고 밤이고 이 마늘 없으면 감칠맛 나는 카페 이룰 수 없네. 마늘은 톡톡 뛰며 생각하며 다지며 다독이며 부대끼며 가는 이 삶이 천국이네. 사각쟁반은 김치와 깍두기 있네만, 김치와 깍두기는 없네. 김치는 키 부쩍 컸다네. 깍두기 똥똥하네. 아침마다 전쟁 따로 없네. 저녁은 폴폴 쉰내 풍기며 집에 있네. 사각쟁반은 정구지 있네. 하지만 정구지는 없네. 여러 해 있었다만, 상큼한 커피 늘 마실 수 있어 좋았다네. 수혈 같은 사각쟁반은 모두 다 있네. 뚝배기에다가 밥 한 공기 탁 털어 넣어서 꾹꾹 한 숟가락 떴네. 갖은 별 모다 한 젓가락씩 집으며 뜨는 사각 쟁반은 나 살아 있어 좋다네.
포항에서 전화 왔다. 기계 다음 주 주중에 바꿔달라고 했다. 포항은 예전 옥산 직영점 운영할 때 교육받은 분이다. 중견 건설업체 명퇴하시고 바른 일 찾으시다가 커피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이후 근 칠 년의 커피 생활을 함께했다. 커피는 한 번도 외도를 한 적 없다. 언제 한 번 포항에 내려갔을 때였다. 사장님께서 커피에 관해 한 말씀 주신다. ‘카페리코 커피 말고는 맛이 없어 다른 커피집 들러 보아도 우리 커피만 한 커피는 없더라!’
사모님은 대구분이신데 꽤 부유한 집안이다. 지금 포항에 소재한 카페도 사모님 본가의 건물이다. 처음 교육받으실 때는 사모님께서 받으셨지만, 몸이 꽤 여렸다. 포타필터 잡는 것도 힘없어 보였다. 커피 일은 대체로 쉬운 일이라 여길 수 있지만, 주방은 노동이라 힘든 일에 속한다. 카페 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카페 운영은 사장님께서 하시어 그간 잘 이끌어 오셨다. 아들 하나 있다. 지금은 학교 졸업하고 아버님과 함께 카페 일 보지만, 오늘 전화 주신 거로 보아 사장님께서는 이제 일을 그만두시려고 하시는 듯했다. 아들에게 모두 맡길 의향이다.
꽁뜨 2
그러니까 엊저녁이었다. 자정을 훨씬 넘겼을 때였는데 커피 한잔 마셨다. 정말이지 커피 맛이 이제는 몸에 짝 들러붙는 듯했다. 마치 쫄바지 아니 몸에 꽉 낀 어떤 옷을 입는 듯했는데 그리 편할 수 없더란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몸에 딱 붙는 것만큼 그와 같은 감옥도 없어 남성으로서 갖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자유를 주었다. 그러니까 커피와 혼연일체다.
‘아, 이제 더는 커피 잔 들 수 없구나’ 죽음을 앞둔 루소의 마지막 말이었다. 물론 루소뿐이겠는가! 하루 50잔 이상을 마셨던 계몽주의 선구자 볼테르와 하루 40잔 이상 마신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거의 커피 폐인이라 볼 수 있음이다. 웃긴 일이지만, 볼테르는 그 많은 커피를 마셔도 장수했다는 거다. 그는 84세까지 살았다. 발자크는 한마디로 커피광이었다만, 어느 유부녀에게 폭 빠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과로와 카페인 중독은 안 그래도 짧은 인생, 더욱 단축했다.
나는 하루 사십 잔이고 오십 잔이고 마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습관을 지녔는데 하루 십여 잔은 족히 마신다. 루소와 볼테르만치는 아니더라도 커피는 꽤 좋아해서 내 손에서 떨어진 날이 없다. 하루 오십 잔이면 저들과 같이 이름 하나는 남길 수 있으려나! 하!하!하! 아서라! 그냥 이대로 마 살다가자꾸나!
나는 내가 머무는 곳은 모두 에스프레소 기계가 있고 서재가 있다. 정말이지 책 한 권 사다 볼 수 있는 능력만 갖추어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여기며 하루 산다. 그리고 커피 이야기하며 사는 것이 꿈이라 지금은 꿈꾸는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 셈이다. 에스프레소는 쉽게 뽑을 수 있으며 드립은 그날그날 직접 뽑거나 아니면 어느 곳에나 여러 직원 있어 한 잔 부탁하면 맛있는 커피는 언제나 마실 수 있음이다.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악보 종이, 담뱃갑과 함께 커피 추출기부터 찾았다고 한다. 특히 아무도 자신의 커피를 끓이지 못하게 하면서 그 누구도 자신만큼 커피를 잘 끓이지 못한다고 자만하기도 했다. 뭐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다. 라면을 끓여도 누가 끓여준다면 맛은 더 있고 커피도 에스프레소든 드립이든 내려주는 이 있으면 얼마나 편한가 말이다. 한날은 닭볶음탕 한 적 있는데 요리하다가 그만 질려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때론 한잔의 커피를 만들며 명상을 즐길 수 있는데 날이 좀 찌뿌둥한 날은 특히 더하다. 커피는 가리지 않는다. 하루에 갖는 감정이 여럿이라 조금 진하게 마실 수 있을 때가 있고 조금 연하게 마실 때가 있는데 가볍게 부탁하면 된다. 저기요! 조금 연하게 한 잔 부탁해요. 아니면 직접 내려 마시거나 뽑거나 하면 될 일이다.
프랑스 실존주의 사상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카페를 사무실처럼 이용한 코피스(Coffee+Office)족이었다. 카페를 집필실로 삼았던 그는 파리 생제르맹에 위치한 카페 되마고를 10년 넘게 드나들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찾아와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반려자와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한 채 진을 쳤으니 카페 주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참 웃긴 놈 아닌가! 코피스도 이런 코피스도 없으며 그러니까 아주 부르주아 코피스라 할 만한 데 본점은 일 층과 이 층 탁 트인 공간에서 압량은 비좁은 감옥 같은 서재와 컴퓨터 속에서 사동은 너른 무대를 끼며 앉아 오며 가며 하시는 손님 보며 책 읽는 이 필자를 한번 생각해 보라! 장 폴 사르트르는 프롤레타리아였다면 이 시대에 사는 필자는 부르주아다.
시인 피칸다는 ‘천 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 마스카트 포도주보다 달콤하다’며 커피를 예찬했다. 이 명언을 가사로 쓴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커피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 유명한 ‘커피 칸타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 곡의 내용은 커피를 끊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와 이를 거부하는 딸 간의 실랑이다. 커피의 효능 중에서도 머리를 깨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는데 만날 써도 일기뿐이고 거저 쓰며 버리며 하는 일상의 얘기뿐이니 어느 작품도 작품이라 볼 수 없는 이 필자는 참으로 시대의 불운아라 할 만하다. 종횡무진 뛰어다니다가 하루 위안꺼리라고 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자위하는 이 손가락의 현란한 춤만 보는 것이 낙이니 말이다.
커피 예찬 9
당케 당케 굿 땐 쎄리 빤쯔 닐니리야
닐니리야 니나노 쎈 쎄리 굿 땐 빤쯔
커피 예찬 10
올드 팝송은 잔잔한 추억 몽땅 끌며 지나간다.
가슴속 쑥 둘러 뺀 쪽지와 휴지와 지폐와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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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