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4月 10日
아주 맑았다. 벚꽃 잎이 눈송이처럼 날린 평화로운 날이었다.
아침 교육할 때였다. 교육생 권 선생께서 한 말씀 주신 것이 자꾸 생각난다. 이 나이 대도록 어데 갈 때 있다는 것이 아주 행복합니다. 아침에 이렇게 본부장님의 교육을 듣고 있으니 요즘 얼마나 행복한지요. 커피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와 문학을 곁들어 들으니 삶이 아주 톡톡 튀는 것 같고 하루가 얼마나 즐거운지요. 선생의 말씀에 나는 솔직히 알고 모르는 것 차이는 아주 얇은 종이 한 장도 아니라며 너무 띄우시는 것 같다며 한 말씀 드렸다.
오늘은 취미에 관한 말이 나왔다. 선생께서는 골프 하신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취미라며 한 말씀 주셨다. 하기야 나는 독서가 취미이자 쓰는 것이 반 직업이 되었으니 또 이것이 나의 즐거움이다. 돈이 안 들어가는 것 같아도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은 자제할 수 없는지라 이것도 만만치 않은 소비성 취미다. 그러니까 독서는 돈이 얼마 들어가겠는가! 책값이 비싸도 어느 정도는 투자성이라 아깝지 않은 것이 책이다. 하지만 읽으니 쓰고 싶은 충동감은 어쩔 수 없어 또 쓰다 보니 더 나은 문장과 묘사력을 보고 싶은 것이 쓰는 자의 욕구라 매번 책을 내게 된다. 하지만 나는 책을 내면서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조문도 하면 석사가의라 했다. 그와 같다.
요즘 일 많고 어데 제대로 외식 한번 가지 않아 미안해서 오 선생께 문자 보냈다. 점심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한참 후에 답변이 왔다. 'ㅇ'라며 문자가 왔다. 엑스(X)가 아니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사 표시다. 그러고 한참 후에 가자며 얘기한다. 소고기 국밥집에 다녀왔다. 국밥 한 그릇 하면서 여러 가지 얘기 나눈다. 직원 상황을 얘기하며 점마다 매출과 경비를 간단히 얘기한다. 인원과 경비만 보더라도 근 매출에 가까우니 경영은 참으로 어렵다. 이 업(業)을 이끄는 우리는 대단한 사람임은 틀림없다. 직원 많으니 하나같이 위험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러니 하루라도 쉬는 날이 없으며 더불어 불안한 마음과 긴장을 푼 적도 없다. 그러느니 하며 이끌어 가지만, 큰 사건이 안 터지길 바랄 뿐이며 세무나 특별한 경비가 크게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오 선생은 태종비 원경왕후 민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커피를 처음 할 때는 곁에서 일을 도울 수 없었다. 신혼 때는 애를 돌보아야 해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카페를 하고 차츰 일을 도왔는데 본격적으로 한 것은 10년 가까이했다. 오 선생은 따로 교육받은 적 없다. 서울서 또 여기서 가까운 지인을 통해 배운 나로서는 레스피 한 장 건네며 스팀 하는 방법만 일렀지 따로 이른 것은 없었다. 오 선생은 스스로 인터넷과 책을 통해 어느새 라떼 아트 기술을 익혔으며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쓰리디 라떼까지 모양을 갖추었다. 아마 미대 출신이라 기본기 두루 갖춘 것이 큰 덕일지도 모르겠다. 커피 업계 유명한 모 선생께서 보시고는 많이 놀라워할 정도였다. 협회가 만들어지고 나서는 처음은 바리스타 수험 심사관으로 몇 번 나가기도 했으며 협회에 중요 일이 있으면 여러 번 참석했다. 공식적으로 쓰리디 라떼 기술은 전국 삼 위 수준이다. 그러니 하트나 로제타나 다른 어떤 기술은 말해서 뭐하겠는가! 쌓은 기술과 교육능력은 핵심이 되니 카페에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오 선생은 아침부터 자정까지 카페에서 일을 제일 많이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꼼꼼해서 주방에 그릇이 몇 개 나가고 몇 개 들어오는지 포함해서 주방관련 잡다한 물품은 각종 상사를 통해 직접 사다 나르며 관리한다. 그뿐 아니라 교육은 얼마나 빡세게 하는지 교육생은 하나같이 학을 뗀다. 하지만 이렇게 교육받은 사람은 어느 집 어느 곳에서나 일을 제대로 할 뿐 아니라 창업하여 일할 때도 바르게 하니 어느 집이든 고객께 사랑 안 받는 곳이 없다. 또한, 콩 볶는 기술도 꽤 갈고 닦아 도에 이르렀으니 가까운 곳은 물론이거니와 멀리는 제주도까지 커피가 나가며 오래는 10년 가까이 거래한 집도 한두 집이 아니라 여러 집에 이른다. 하지만 집안은 영 거론할 수 없으며 거론해서도 안 되겠다. 그러니까 카페가 하루 중 온몸 담그고 있어 집은 잠시 머무는 것에 불과하니 서로 도우며 살 게 되었다. 아무튼, 점심 한 그릇 같이했다.
날 맑고 주말에 가까워서 여러 군데 주문 있었다. 옥곡, 진량, 가나안농장, 청도, 조감도 사동, 영천, 본점, 병원에 커피 주문 있었다. 그중 옥곡과 청도, 가나안농장에 직접 다녀왔다. 나머지는 서 부장이 수고했다.
커피 배송 다니며 들어오는 길에 개업 집에 잠시 들렀다. 정평, 교회건물 이 층에 세를 얻은 이 씨가 경영하는 커피 집이다. 그간 틈틈이 직접 내부공사를 했다. 여자로서 혼자 하기에 버거울 거라 여겼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내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단했다. 처음에 이 집에 들렀을 때는 커피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집이었다. 한마디로 커피 집 모양새가 나오겠나 하며 보았던 집인데 약 두 달여 동안 직접 하나씩 작업해 나갔다. 오늘 들어 와 보니 아주 새로웠는데 요약하자면 빈티지다. 바닥은 거저 콘크리트 미장에 코팅제 바른 것이며 주방은 여러 조언으로 그나마 모양새 갖추었고 의자와 탁자도 직접 문지르며 닦으며 그 겉에다가 상호 써넣기까지 했다. 아주 싼 건축 자재라도 카페에 오면 고상하게 보기 마련인데 그러니까 벽돌과 나무의 조화쯤으로 보면 좋겠다. 블록 여덟 장을 한쪽에 두 줄씩 넉 단 쌓고 다른 쪽에도 똑같이 두 줄씩 넉 단 쌓아 그 위 원목 판자때기 얹었다. 그러니 아주 멋진 도자기 전시용 탁자가 되었다. 그 위는 직접 구운 각종 도자기를 전시했다. 가게는 다소 넓어서 탁자는 여러 개 갖출 수 있었으며 측면과 창 쪽은 철재로 가느다란 진열장을 만들어 공간미를 자아냈는데 그저 볼만했다. 개업식이라 앉은 사람은 많이 없었으나 띄엄띄엄 오시고 가시는 손님은 많았다. 오후 4시쯤 급히 들러 인사했지만, 그때까지 우유 10병 소비했다고 하니 제법 많은 손님이 다녀간 것만은 틀림없었다. 꽃값으로 신사임당 한 장 고이 담아드리며 대박 나시라 한 마디 적었다. 나올 때 밥공기 할 만한 그릇 두 개 샀다. 그릇은 꼭 일본식 탁주 사발 같고 안은 매끄러워서 밥이나 국 담아 먹기 좋을 것 같아 샀다. 실지로 집에는 설거지 못 해 개수대에 한두 끼 정도 그릇 쌓으면 그릇 모자라기도 해서 있었으면 싶었다. 또 개업식이니 거저 꽃값만 내고 나오는 것도 염치라 이 씨의 일이 가마 돌리는 일이니 그릇쯤 하나 사서 가면 생색도 이것만한 것은 없지 싶어서다.
저녁, 라면 끓였다. 아까 사가져 왔던 사발에다가 조금씩 담아서 먹었다. 사발은 생각보다 작았는데 밥공기는 딱 맞겠다.
꽃잎 눈송이처럼 부러 날리네
마음 얹은 저 꽃잎 일러 가볍네
하루 이와 같다면 얼마나 좋아
봄은 가시나처럼 흔들며 가네
푸르게 잎 돋아라 하늘만 보자
뜨거운 태양 보며 나를 당기자
한 잎씩 쌓은 지면 보기 좋아라
잎 줄기 뿌리 다져 온전히 서자
저녁에 아이들 데리러 가, 갓길 주차했을 때인데 내 차를 긁고 지나는 차가 있었다.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아주 당황했다. 차 문 열고 나가니 신형 아반떼가 십 보쯤 지나서 섰다. 천천히 걸어가니 차주가 내린다. 아가씨다. 면허증으로 보아 청주 사람으로 올해 스물다섯쯤 됐다. 연락처 남겼다. 본부에 왔을 때 문자가 왔다. “아깐 많이 놀라셨죠. 정말 죄송합니다. 하시는 대로 금액하고 계좌번호 보내주시면 이른 시일에 변상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네에 몸은 이상 없으니 너무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차가 긁혔으니 정비소에 일단 들러보겠습니다. 주말이라 주말 쉬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일단 내일 오후 들러보고 안되면 다음 주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네 전화해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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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