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3月 08日
대체로 맑았다.
오전, 최 사장님과 커피 한잔했다. 최 사장은 강 선생의 남편분이다. 골목골목마다 생기는 카페 출현을 아주 멋지게 표현해 주셨다. 그러니까 인생의 즐거운 놀이마당이라 하셨다. 베이비붐 세대가 특별히 놀 수 있는 장소도 없거니와 마냥 놀기에도 어정쩡한 나이이기도 해서 돈벌이로 보는 게 아니라 나의 소일거리 정도로 본다. 오십 대는 그럴 만한 나이다. 언제 뵈어도 늘 긍정적인 마음이시라 좋아 보였다.
어제는 경산에 ‘카페벙커’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여러 가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커피를 받치는 받침대와 사이드 메뉴로 나온 와플이지 싶다. 쟁반 위에 그려놓은 그림이 마치 정물화 한 점을 본 것 같았다고 했다. 실지로 사진도 몇 칼럼 찍었는데 만들어 나온 그 메뉴가 먹음직스러울 뿐 아니라 접시의 가장자리에 그려놓은 그림은 인상적이었다. 파릇한 이파리 한 점과 꽃송이가 볼만했다. 내부 공간미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서 앙증맞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 그 사진을 다시 보고 싶어서 강 선생께 부탁했지만 보내 주지 않았다.
장 사장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신랑은 우렁찼으며 신부는 다소곳했다. 사회자가 신랑에게 한 질문이 세 개 있었는데 모두 일반적인 답변을 한 장 사장은 목소리가 제법 컸다. 양가 어른께 인사 올리는 예가 있었는데 신부는 눈물 흘리기도 했다. 식이 다 끝났는데도 한동안 앉아 있었다. 행사, 제일 마지막에 직장동료나 친구와 함께 찍는 사진이 있었는데 혹여나 해서 기다렸다.
장 사장은 고향 친구도 아니며 그렇다고 학교친구도 아니다. 거저 사회에 나와 함께 일하다가 알 게 되었는데 친해졌다. 그러니까 오늘 결혼식에는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혼자 점심을 먹었는데 호텔요리의 진가를 보기에는 너무 쓸쓸했다. 분위기가 약간 어두컴컴했으며 음악까지 고요해서 더욱 외롭기만 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객실은 아주 넓었는데 많은 식탁에 비하면 몇몇 앉아 있는 분은 적었다. 물론 예식 끝나고 들어가 이미 많은 사람이 빠져나가겠지만, 주위 사람을 인식할 이유는 없었다.
호텔 승강기 타며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 신혼여행으로 하와이 간다고 했다. 장 사장께 문자로 인사했다. ‘장 사장 부럽소. 제공해주신 고기와 국수 잘 먹고 가오.’, 그러니 한참 뒤에 경산 들어올 때였는데 답변이 왔다. ‘본부장님 고맙습니다. 갔다 와서 식사함해요.’
여기서 가까운 대구 류 카페에 다녀왔다.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조감도 배 선생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은 곳이다. 한 번 가보시라는 말씀도 있었고 일부러 나오기에는 또 마땅히 시간 내기에 그래서 이참에 가게 되었다. 예식장에서 대구 달구벌 도로만 넘어가면 류 카페다. 배 선생께서 일러준 대로 가기는 했지만, 카페를 찾지 못했다. 천상, 지나는 몇몇 젊은 사람에게 류 카페 아느냐고 물었더니 죄다 모른다. 할 수 없이 휴대전화기 검색해서 주소를 네비에 입력하여 찾았는데 아까 지나는 사람에게 물었던 곳에서 불과 몇 보 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커피 집이 유명하다고 해도 커피 인에게는 통하는 말이며 일반인은 관심거리가 되지는 못한다. 나의 카페도 마찬가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체적인 집의 외관은 아담하고 고풍스럽다. 색감은 검정색이 많아 어두웠으며 들어가는 문은 무거웠다. 압량 조감도 문이 무겁다고 평을 많이 받았지만 압량 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밀고 들어간 기분은 훨씬 무거웠다. 그럴 만도 한 게 문 크기가 제법 크다. 테두리는 철재로 짜 맞춘 것이며 그 안은 두꺼운 유리다. 들어가 바(bar) 앞 좌석에 빈자리가 보여 거기다가 가져간 책을 놓고 계산대로 갔다.
무엇을 고르겠다고 해서 메뉴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집 가격이 어떠하며 어떤 메뉴가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섰지만, 막상 한눈에 잘 들여다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마시고 싶은 케냐를 찾는 것도 꽤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모두 영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찾다가 그만, 드립 하느냐고 물었더니 네 하며 대답했다. 케냐로 주문했다. 바에 앉아 사장님께서 직접 추출한 모습을 보며 있었다. 이곳은 드립할 수 있는 공간이 아주 멋지게 만들었는데 여러 잔 한꺼번에 할 수 있도록 드립셋트기구를 만들었으며 밑에다가 바로 물을 버릴 수 있도록 해서 편하다. 그 바의 수평도 물을 바로 버린다고 해서 움푹 들어간 것도 아니다. 모두 수평이다. ‘주문하신 커피 케냐 나왔습니다.’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커피를 한잔 맛보았다. 아! 역시, 커피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뜨거운 그 첫맛은 석류 여러 알을 발겨서 한입에 물컹하게 넣은 기분이었고 점점 식어 들어갈 때 맛은 석류 씨앗을 씹는 기분과 같았다. 그러니까 약간 떨떠름했는데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산뜻하면서 마치 갓 양치질한 듯했다.
사장님께 물었다. 물론 그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일종의 인사였다. 커피 하신 지 오래 하셨습니까? 팔 년 가까이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말문이 터여서 줄곧 말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이 건물을 사서 개축했으며 앞집도 아마 사들인 것 같았다. 집 구조는 1·2층이지만 위층은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다고 했다. 대충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지만, 나보다는 칠팔 년 정도 차이다. 사장께서 말씀이 있고 내소개도 약간 했는데 카페리코와 카페 조감도는 모르신 것 같았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 김에 직접 지은 책 한 권을 사인해서 선물로 드렸다. 언제 경산 오실 일 있으면 카페 조감도 잊지 마시고 찾아주십사 인사했다.
류가 경영하는 카페는 웅장한 멋은 없지만 웅장했으며 갓 개업한 카페지만 한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였다. 그 느낌을 받게 된 원인은 바닥은 시멘트 마감이며 모든 기둥은 철재 빔으로 각을 잘 맞춰 올려 세웠는데 역시 누가 보아도 기술자가 한 것임이 틀림없을 정도로 한 치 오차 없이 반듯했기 때문이다. 의자는 모두 중요부분은 철재며 앉은 자리와 등받이는 소파와 나무로 적당히 섞어, 보기에도 불편하지 않을 뿐 아니라 튼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방은 가게와 비교하면 그리 넓은 평수는 아니다만 있을 것은 다 갖추었고 계산대가 주방을 바라보면 우측 끝에 벽면에 부착해서 놓았기에 약간은 솔다는 느낌이었다.
류 사장께 물었다. 로스팅을 직접 하시느냐고 물었는데 로스팅 실을 안내해 주었다. 네덜란드 지센 제품이었는데 용량은 6K다. 동생이 운영하는 기계는 독일 프로밧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시내에 있다. 이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투자비에 관해서도 이야기 들었다. 꽤 많은 돈이 들어간 것만은 틀림없었지만, 이 집의 경영과 사장의 커피 뽑는 기술로 보아서는 그 많은 빚이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서비스로 케냐 드립 한잔 더 되는지 조심스럽게 여쭈었는데 쾌히 해주셨다. 나갈 때, 문 앞까지 나오시어 인사 주셨다.
압량에 머물 때였는데 오늘은 밤손님이 아주 띄엄띄엄 오셨다.
바른 집 바른 커피 한잔 마시면
오는 맛 가는 느낌 하늘과 같네
비싼 커피 기어코 아깝지 않네
손맛과 기술까지 덤으로 보네
그러니 카페 가면 바에 앉아라
사람 사는 사회라 숨길 게 없어
이웃 만드니 더는 외롭지 않네
같은 일 서로 나눠 다 함께 좋네
아래, 칼에 깊숙이 베였던 손가락에서 구린내가 났다. 대일 밴드를 갈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피가 응고되었다가 몇 번 물에 담가, 씻겨나가기도 했지만, 피가 곰삭고 있었나 보다. 무심코 턱 받치다가 냄새 나기에 더 갖다 돼 맡았다. 콤콤하다. 그리 나쁘지 않아서 이제는 자주 갖다 되어 맡는 버릇이 생겼다. 호! 역시 콤콤하다.
사동에 머물 때였다. 정문 사장님 오셨다. 어제 대구 모 카페에서 강의 들은 얘기를 해주셨다. 커피에 관한 얘기였지만 커피가 아니었고 바리스타라는 주제가 있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서 오히려 젊은 사람은 강의를 듣고는 다시 오지 않았으며 나 많은 사람은 앉아 듣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강의가 도를 터득하는 길 같다며 한 말씀 해 주셨다. 어쩌다가 도에 관한 말이 나와서 그것과 비유를 놓아 요즘 문학에 대해 말씀드리며 내 의지를 말했는데 이렇다. 그러니까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경험의 질을 높이는 것 같아요. 우리가 시를 짓거나 감상하는 것은 마치 바다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문학의 역사, 100년을 볼까요. 그러니까 김소월이나 김영랑이 살다간 시대는 해변이었습니다. 지금의 문학은 저 깊은 바다입니다. 깊은 바닷속에 있는 분이 요즘 문학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듯합니다. 그러니까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며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저 또한 작품이라고 보면 우스운 얘기지만 책을 써보니 이런 생각 들더군요. 진정한 나를 발견한 것이 인문이며 나를 찾는 것이 삶의 참된 여행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자아의 표현이다. 커피 한잔을 놓고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어떤 맛이 나는지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한 잔의 커피에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값진 경험의 소산이며 삶을 받치는 힘이며 솔직담백한 문학이라 그것은 곧 내가 하는 일의 장인으로 가는 길이라 진정한 도(道)가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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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