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4月 11日
아주 맑았다.
그 어떤 일도 천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글을 하면 그 어떤 일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동 가는 길, 일은 무엇인가? 하며 생각한다. 배고프면 때 생각하며 먹을거리 생각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제때 찾아 먹는 음식 같은 것은 아니다. 일은 운동이며 자아개발이며 성취며 또 봉사다. 이와 같은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오래할 수 없다. 또 아무리 허접스러운 일이라도 내가 이 일을 두고 어떤 의미를 심을 것이며 어떻게 이끌 것인지 확실한 방향을 새우지 못하면 하루도 힘든 것이 이 일이다. 바다 같은 세계에 동동 떠 있는 우리 카페를 보며 있다.
인간은 참으로 고상한 동물이다.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 클래식 듣는다. 가벼운 것 같아도 절대 가볍지 않은, 호! 실은 무거운 음악이지만, 절대 무겁지 않은 게 클래식이다. 우리 인간은 예술을 한다. 이러한 예술작품은 수없는 감동을 안겨다 준다. 그렇지만, 이 인간은 얼마나 잔인무도한가! 피를 좋아하며 이 피를 보기 위해 절대 갖지 말아야 할 반인륜적 행위를 얼마나 서슴없이 행하였는가! 우리의 뇌는 감정이 있다. 슬픔, 분노, 기쁨, 욕망, 사랑, 질투, 의심, 미움이 있다. 이 감정이 낳은 결과다. 백양 선생께서 쓰신 중국사를 읽으며 국가의 출현과 무너지는 과정에 왕조의 흥망성쇠를 읽다가 느낀 것이다. 부모·자식도 친인척도 스승과 제자도 없는 피의 역사, 하지만 바르게 잡아나가기 위해 또 노력하는 인류 역사다.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며 이미 지나간 역사와 비교해서 무엇이 다르며 또 무엇이 같은가!
카페가 크다고 해서 매출이 많이 나은 것도 아니며 카페가 작다고 해서 매출이 없는 것도 아니다. 카페 평수와 대비해서 일일 매출 올릴 수 있는 한계는 있지만, 한계에 부닥칠 정도로 오르는 날은 일 년에 불과 몇 안 된다. 4월 들어와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양상이지만, 꼭 이 시장이 메뚜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사동 조감도, 본점은 저조한 매출이지만, 어제 개업했던 커피 컵과 정평은 호조였다. 개업과 초등학교에 참관수업 관계로 학부모들이 꽤 많이 왔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요 커피 문화 강좌를 열었다. 새로 오신 분 한 분 있었다. 교육에 앞서 커피를 두고 갖는 나의 철학이다. 가벼운 소개와 더불어 인사를 했다. 라떼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꽤 많은 분이 오셨다.
오후, 사동에서 책 읽으며 보냈다. 가게 앞에 메타세쿼이아 나무 세 그루에다가 크리스마스트리 대용으로 잔잔한 등을 작년 연말에 매었는데 오늘 이 등을 모두 끊어 헤쳤다. 올 연말 아니, 여유가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트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별도로 만들든가 아니면 어떤 구조물을 창안하든가 해야겠다. 나무에 매단 이 등을 하나씩 끊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이것은 나무에도 큰 고통을 안겨다 준다. 성장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카페 미관을 위해 심었지만, 도로 미관을 흩트리기 전에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어느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엊저녁에는 라면을 먹고 오늘 아침은 달걀찜 해서 먹었다. 사동 오기 전까지 꽤 기력이 없었다. 아까는 나무에 전등을 끊으면서도 다리가 후들후들 뜨는 것을 느꼈다. 기가 없다는 것을 느낀 적이 오래됐지만, 오늘 또 새삼 느꼈다. 고기를 잘 먹을 수 없는 집이다. 아내가 고기를 싫어하고 맏이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니 고기반찬이 밥상에 오른 일은 일 년에 몇 번 없다. 고기반찬까지 기대하지도 않는다. 때를 제대로 지켜가며 가족과 함께 먹는 일은 아침뿐이며 여러 반찬을 놓고 먹는 일은 꿈같은 얘기다. 어쩌면 가끔 바깥에 나와서 사 먹는 밥이 보약이라고 느낀 일도 잦다. 뷔페에서 먹은 고기반찬이 조금 과했나 보다. 오후 피로가 쌓여 집에서 쉬었다. 1주일 무겁게 걸어온 일상이 풀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온종일 노곤했다.
일은 늘 처음처럼 자세 갖추세
오시는 님도 처음 커피도 처음
그러니 첫인상은 꽤 중요하지
다루는 한잔 커피 꽉 다져 뽑세
커피 한잔 만드는 일, 대수롭지 않게 해서는 안 된다. 엉성하게 다져서 급하게 뽑는 커피는 뭔가 싱겁고 맛이 떨어진다. 한잔을 만들더라도 탬핑을 여러 번 하여 꽉꽉 다져 뽑아보아라! 커피 맛은 확연히 다르다. 일이 바쁘고 생각이 많아도 오시는 손님은 커피 한잔을 위해 구태여 들러 사간다. 그냥 지나가실 수도 있으나 커피 한잔은 위안이며 잠을 후칠 수도 있으며 기분을 상승시킬 수도 있다. 그 맛을 우리는 우려내고 있다. 고객의 기분은 우리의 카페를 달리 생각할 수 있으며 좋은 이미지를 안을 수 있다. 그러니 한 잔의 커피를 만들더라도 꽉꽉 다져서 뽑아라!
자정, 85세 고령이신 문중 어른께서 쓰신 시를 읽었다. 어쩌다가 큰 애 집에서 사셨는데 또 따로 나와 사시게 되었던 가보다. 근데, 이삿짐이 한 차 정도나 되었다고 하셨다. 그 짐을 모두 버렸다고 하셨다. 정녕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가셔야 하니 소중한 책이 두 상자나 되었는데 그 상자마저도 버렸다고 하셨다. 어른께서 주신 시를 읽고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지금껏 45년을 살았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남았나 하며 생각한다. 또 무엇을 남겨놓을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정말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 돈 많은 부자든 정점에 오른 권좌도 천하를 호령했던 일대 영웅도 모두 빈손으로 갔다. 이건 분명한 진리다. 그러니 하루가 얼마나 보배인가! |
|
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