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3月 17日
맑았다. 황사가 제법 낀 하늘이었다.
아침 8시 본점에서 더치와 드립에 관한 교육 있었다. 교육생은 커피 향 노트를 읽으신 독자였다. 경제과 학교 후배다. 대구 화원 쪽인데 기존의 가게를 인수했다고 했다. 보증금 오천에 월 130인 자리다. 가게를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임대로 보면 만만치 않은 자리다. 일일 매상이 근 사십만 원은 올라야 유지할 수 있지만, 그에 반 매출도 올리기 어렵다고 했다. 어제는 팔만 원 올렸다. 실 평수는 이십 오평쯤 된다. 오늘은 드립과 더치에 관한 메뉴를 보여드리며 기기 사용방법에 관해서 간단히 얘기했다. 교육 끝난 후, 압량 거쳐 사동 조감도에 가, 카페를 보여드렸는데 메뉴 북과 주방 그리고 영업장을 둘러보고는 한마디 한다. ‘선배님 하시는 영업을 보니까 갑자기 자신감 잃었습니다.’ 하는 거다. 누구나 작은 것부터 일은 시작합니다. 차츰 나아지는 모습으로 진행되어 나갈 겁니다. 용기 가지시오. 별것 아닙니다.
서 부장과 함께 칠성시장에 다녀왔다. 바 스푼과 쟁반이 필요했으며 제휴업체인 모 회사에 다녀왔다. 전에 샀던 거품기 부품을 사기 위해 갔지만, 정녕 그 부품은 없었는데 관련 수입상에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수입상 쪽에서 하는 말이 아주 무책임한 발언에 솔직히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수입하는 데 이삼 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순간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제빵 관련 기기라서 이삼 개월은 기기를 못 쓴다는 것인데 빵을 팔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다) 그러니 오늘 입금하면 내려 보내주겠다 한다. 부품은 거품을 이는 거품기로 스테인리스강 재질의 여러 철 가닥을 조합해 놓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반죽할 때 젖는 기구다. 중국제품으로 비용은 6만 원이다. 날씨가 점점 따뜻하다. 오늘 낮 기온이 23도까지 올라 시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에어컨을 살짝 틀며 다녔다.
B업체 납품용으로 안티구아 28K 볶았다. 주문받은 수량은 모두 70K였으나 생두가 부족해서 천상 내일 볶아 드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기로 전화로 양해 말씀드렸다. 본부에서 본점으로 가고 있었는데 커피 볶는 냄새가 자욱했다. 바람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부는가 보다. 날씨도 흐린 거는 아니지만 흐린 날씨라 연기가 하늘 위로 치솟아 오르지 못하고 낮게 퍼졌는데 동네 사람도 그 냄새를 다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혹시나 민원 들어가지 않을까 내심 고심하기도 했다. 역시나 커피 볶는 냄새는 언제 맡아도 싫지가 않다.
시러쿵 시 씨러쿵 커피 볶았네
커피 볶는 내음새 온 동네 피네
오고 가는 발길에 냄새 붙잡네
그 냄새 따라, 가는 발길 머금네
빙빙 도는 로스터 데구루루 콩
어수선한 마음에 카페로 가네
윤기 나는 볶은 콩 반들거리네
고운 빛깔 한 모금 촉촉이 젖네
커피 예찬 1
커피 한 잔은 바 위에 올려놓은 아네모네 꽃처럼 그렇게 와야 한다. 그러니까 한 송이 꽃을 들며 허공에 한 번 휘저었다가 긴 꽃 대롱쯤은 중간에 똑 분질러서 건네야 하듯 그렇게 와야 한다. 그 커피 한 잔은 여성은 클레오파트라의 입술처럼 붉은 맘을 갖게 하며 남성은 투사의 휘 젖는 깃발처럼 당차 오름을 느낄 수 있다. 그 커피 한 잔 마시면 여자들은 마치 어릴 때 고무줄놀이처럼 발랄하게 되며 공깃돌을 안전하게 손아귀에 쥐듯 포근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 커피 한 잔 마시면 남자들은 어릴 때 구슬치기 놀이처럼 한 구멍에 다른 구슬을 죄다 끌어모은 역할과 같아서 우쭐거리기도 하며 동네 딱지는 다 따 모은 보자기 하나 묶은 듯하다마는 그러니까 넉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음이다. 그 커피 한 잔의 맛은 폭 절인 레몬차 마시듯 신맛이 우러나야 하며 달빛을 보듯 몽롱함과 더불어 여인의 입술을 살짝 깨문 듯 단맛이 배여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커피 한 잔은 누구나 강한 눈빛을 갖게 하는데 이때 책을 보면 글자가 살아 움직이며 톡톡 닿는 뉴런의 신경망은 쭉 뻗은 고속도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니까 아침이면 갓 오른 태양처럼 힘차며 저녁이면 노곤한 피로를 싹 씻겨 내리듯 맑고 긴 샤워보다 더 낫다.
널브러진 흰 백지 나는 좋아라
써도써도 그 백지 썼어 좋아라
장지도 습자지도 있어 좋아라
하루 묵은 맘 탁탁 씻어 좋아라
생두 주문 넣었다. 근 육백만 원치 물량이다. 블루마운틴 두 백 포함해서 모두 여섯 백이다. 아무래도 안티구아는 모자랄 것 같다. 내일 볶으며 한 백 더 주문 넣을까 보다. 압량, 사동, 본점 모두 직접 마감했다. 모처럼 예지, 집에까지 태워다 주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있는 일이다. 사동에 있었던 일을 꼬짓꼬짓 물었더니 사전처럼 얘기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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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