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2月 26日
耦
아궁이 군불 놓듯 자욱한 하늘
맑은 날 수일 안 돼 흐렸습니다
쓰레기 더미 위에 서 있는 듯해
마냥 어리고 천해 아쉽습니다
사동 가는 길, 황사 때문인지 하늘이 연기 자욱하게 낀 것처럼 흐렸다. 라디오 아침 방송, 클래식 들으며 갔는데 가슴 속 깊이 우울함이 밀려왔다. 자전거 타며 새벽 찬바람 길 가르던 옛 기억이 꿈틀거렸는데 오늘처럼 하찮은 것도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이 뭔가! 하며 느꼈다. 영화 ‘미스트’ 같은 세상이다. 한 치 앞을 못 보며 헤매는 것이 인생이다. 우울함은 저 황사뿐만 아니라 어디서 발원하는지 계속 뿜어져 나오는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흐리다는 것은 내 마음이 깨끗지 못해 일어나는 것이니 얼마나 어리고 천하며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나는 누구를 믿고 누구를 위하며 무엇을 하며 무엇을 이루려는 것인가!
실습생 이 씨께서 김밥과 피자를 샀다. 본점 주방에서 서 부장, 강 선생, 이 씨, 그리고 나까지 앉아 먹었다. 김밥이 특히나 맛있었는데 역시 젊은 친구는 피자에 손 자주 간다. 실습생 이 씨께서는 애인이 산 거라며 누차 강조를 했는데 사실인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거저 재밌으라고 한 얘기일 것 같다. 사십 대가 되면 된장 같은 말 한마디가 진담이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서도 진담인 그러니까 능구렁이가 된다. 그러면 죄다 애인이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며 또 있기나 한 것인지 그러면서도 상대를 파악해 들어간다. 굳이 사람을 사귀거나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일종의 관심으로 재미다. 하여튼, 점심 잘 먹었다. 이 씨의 말마따나, 사는 게 별 게 있나!
교회에 다녀왔다. 지난번 설치했던 기계가 정수기 연결과 전기공급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오후 두 시가 조금 지났다. 어제 연락을 받고 오늘 두 시에 가기로 해놓고는 그만 깜빡 잊고 있었다. 다시 연락 와서 가 보게 되었는데 이미 목사께서 기계에 전기를 넣어 두고 있었다. 열을 넣는 단계까지는 스위치를 올려놓지 못해 내가, 마저 올렸다. 한 십여 분 지나니 추출도 스팀도 모두 정상이었다. 에스프레소 추출과 라떼 만드는 것을 시험 삼아 두어 잔 뽑았다. 스팀 피처가 없었는데 여기 사다 놓은 스테인리스강 재질 계량컵으로 우유를 담아 벨벳밀크를 만들고 한 잔 멋지게 그렸더니 보는 이가 꽤 놀라워했다. 그러니까 피처가 아니라 계량컵이었으니까,
인근에 버섯농장 사장님께서 본부에 오셨다. 에스프레소 기기 청소용 막힘 망 필요했다. 막힘 망은 포타필터에 끼워진 샤워 망을 들어내고 그것을 끼워 기계에 장착한 다음 추출버튼을 눌러 청소하는 데 사용한다. 막힘 망 안에다가 청소 약품을 넣고 청소하면 더 깔끔하게 할 수 있다. 기계 설치할 때 보통 들어가는데 여기는 그간 분실했음이 틀림없다. 다시 사러 온 것이었다. 사장님께서는 커피를 다룰 수 있는 직원을 구해달라며 부탁 말씀을 하셨는데 본점에 가셔 바(bar)에 앉아 커피 한잔 드시며 앞에 일하시는 분께 부탁해보시라고 했다. 그러니까 본점에는 늘 실습생이 많아서 조건이 맞으면 일할 수 있는 분도 만나지 싶어 가보시라 했다.
서 부장과 함께 차량등록사업소에 들렀다가 사동 직영점에 가 커피 한잔 마시고 왔다.
커피
커피 뽑았다고 치자 주우욱, 그러면 커피 뽑지 않았을 때가 있으며 커피 아직 뽑지 않았을 때 우리는 완벽한 커피라 할 것인가 아니면 커피 아직 뽑지 않았을 때 커피 뽑지 않을 때를 커피라 할 것인지 커피 뽑지 않았을 때를 커피라 할 것인지 커피 뽑았다고 했을 때 커피를 진짜 커피라 할 것인지 자 그러면 커피 뽑지 않았다고 치자 그러면 커피 볶았을 때가 있으며 커피 이미 볶았을 때를 우리는 완벽한 커피라 할 것인가 아니면 커피 이미 볶았을 때 커피 볶을 때를 커피라 할 것인지 커피 볶았을 때 커피라 할 것인지 그러니까 커피 볶았다고 치자 그러면 커피 볶지 않았을 때가 있으며 커피 아직 볶지 않았을 때를 우리는 완벽한 커피라 할 것인가 아니면 커피 이미 볶지 않았을 때 커피 볶지 않을 때를 커피라 할 것인지 커피는 이래나 저래나 커피다. 아니 아니다. 커피는 뽑았다거나 커피 뽑지 않았다거나 그러니까 커피 볶았다거나 커피 볶지 않았거나 어느 것이든 커피는 아니다.
음악
탄력적인 음악을 보았다 그러니까 음악은
그 순간 탄력적이었다
You're my love, You're my life
음악은 새 나가지 않았다
스피커만 톡톡 튀었는데 나는 울고 싶었다
You're my love, You're my life
남인◯ 정철◌ 북인◯ 류성룡◌
포롤 It's my life 통통 튀는 볼륨
찌그러진 어깨 맞지 않은 균형을
구태여 맞추었다 그러니까 울퉁불퉁 사동이었다
밥솥에 밥이 없다. 국수 삶는다. 초고추장 없다. 김치 종종 쓴다. 고추장 한 숟가락 넣는다. 참기름 한 숟가락 넣는다. 썩썩 비빈다. 한 젓가락 곧게 말아 올린다. 국수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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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